▲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br>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지난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닥쳤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파생상품 손실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굴지의 글로벌 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위기에 빠졌던 것이다.

당시 전 세계가 금융 위기 여파를 맞았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환율 변동의 위험성에 대비하려는 이른바 환헤지 상품에 가입했던 중소기업들이 오히려 큰 손실에 노출되는 모순에 직면했다. 이른바 키코(KIKO:Knock-In Knock-Out) 사태다.

기업들은 국제 거래에서 그 대가를 외화로 주고받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환율 변동에 따른 환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잘 팔고도 환율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 같은 관리업무를 대기업 같으면 전문성을 갖춘 내부 부서에 맡기는 등으로 대비하지만 중소기업으로서는 언감생심이었다. 때문에, 환율 변동에 따른 환위험을 회피하는 상품이라면, 중소기업에게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융상품이 고객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경우처럼 여겨지는 구간에 손실 가능성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선물환거래(약속한 시점에 일정액의 외국환을 일정한 환율로 매매하기로 미리 약속)의 개념 위에 차곡차곡 조건을 붙여가며 구성된 키코 상품의 내부구조를 중소기업들이 얼마나 이해를 하고 가입했느냐를 생각해 보면 지금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가입 당시 거론됐던 달콤한 조건, 즉 사실상 기업이 현물시장에서 환율 상승의 이익을 얻게 되는 경우만 존재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환율이 하락해 Knock-Out 조건이 성취되는 경우는 물론, 반대로 Knock-In 조건이 성취되는 경우에도 가입 기업은 손실을 입게 돼 있었다.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는 바로 이 뒷부분의 위험을 충족하면서 많은 중소기업들을 나락으로 빠뜨렸다. 2007년 900원대이던 환율은 2008년 11월 1500원대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은행마다 조금씩 다른 조건과 판매상황을 보였기 때문에 이 사태는 2013년 대법원까지 가는 지루한 공방전을 겪었다.

대법원은 결국 △환율 변동의 확률적 분포를 활용해 쌍방의 기대이익을 대등하게 한 키코 자체는 불공정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달리 계약 또는 법령 등에 따라 가격구성요소의 고지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은행이 장외파생상품 구조 내에 포함된 옵션의 이론 등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구조에 기반해 판결했다.

복잡하고 위험한 구조의 상품을 만들었고 그 내용을 세세히 고지하지 아니했다고 해 고객에 대한 기망행위가 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은행이 기업의 경영상황에 비춰볼 때 과대한 위험에 노촐되는 계약임에도 이를 적극 권유했다든지, 투기적 성격을 지닌 키코 계약을 단순히 헤지거래라고만 설명했다면  설명의무 위반 더 나아가 적합성의 원칙을 위반해 배상 책임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지금 봐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계약 구조지만 이를 새삼 다시 되새겨볼 이유가 있다.

최근 불거진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를 보면 키코 당시의 아수라장에서 우리나라 금융권이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 해당 ELS가 손실을 입을 가능성은 가입 당시만 해도 크게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상품에는 결국 고객은 물론 금융기관의 이익을 위한 부분이 존재하고, 이익이 있으면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누가 홍콩 증시가 그렇게 하락을 할 줄 알았겠느냐고 가입을 독려한 은행권에서는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패권 다툼 등 글로벌 경제에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그에 따른 상황 급변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정말 전혀 몰랐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H지수가 상투를 잡은 시기에 해당 상품에 가입한 많은 고객들은 대거 재산상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도 기막한 키코의 구조를 둘러싼 지루한 다툼 끝에 나온 대볍원 판결처럼 그런 구조는 감수하고 가입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작동할 것이다. 하지만 매번 겪으면서도 설명의무 위반 등을 눈감고 상품 유치 실적에만 매달리는 금융기관의 무책임은 분명 지적받아야 마땅한 대목이다. 이번 ELS 상황에 대한 점검에서도 이런 부분을 최대한 밝혀내 주길 바란다. 그래야 매번 그때 키코, 그때 ELS가 있었는데 아무 문제 없었다는 식으로 면죄부 기억만 남지 않을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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