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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라비아로

백수연

후두둑. 자동차 앞 유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빗방울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사이드미러도 흐릿했다. 안개와 폭우로 사방은 온통 뿌옇기만 했다. 원망스럽게 올려다본 하늘은 캄캄한 잿빛이었다. 그 순간, 강한 충격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듯 몸이 붕 떴다가 몇 번인가를 구른 것 같았다. 그게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장면이다. 힘겹게 눈을 떴다. 병실의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햇빛을 좀 보고 싶었다. 따사로운 햇볕이 그리웠다. 시선이 자꾸만 창가를 향했지만, 유리창을 덮은 블라인드는 종일 내려져 있었다. 중환자실이 원래 그런 건지 이곳 간호사들이 햇빛을 싫어하는 건지 며칠째 창밖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블라인드를 잠시만 올려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했는데 간호사들의 인수인계가 시작되었다.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베드 세 개마다 데스크가 하나씩 있었고, 데스크마다 간호사가 둘씩 앉았다. 중환자실에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주의를 끄는 건 오로지 간호사들의 말소리뿐이었다. 간호사들은 인수인계를 하면서 동시에 문답식으로 테스트도 했다. 선임 간호사들은 신규간호사들에게 의료용어의 뜻이나 증상에 따른 처방 약 같은 것을 물었다. 신규 간호사들은 종종 대답을 못했다. 그럴 때면 기다렸다는 듯 폭언이 쏟아졌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든지, 그 따위로 하니까 무시당한다든지 그런 말들이었다. 사실, 그 정도 말은 심한 축에도 들지 못했는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이 들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신규간호사가 모르는 것을 질문하면 질문 같은 건 하지 말고 그냥 ‘네’만 하라고도 했고, 배우는 게 너무 느리다며 등 같은 곳을 찰싹 때리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그런 것들을 엿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피할 도리가 없었다. 눈은 감아 버릴 수 있는데 귀는 왜 닫을 수가 없는 것인지를 한탄했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면 습관처럼 만지작거리던 편백나무 지압기가 문득 떠올랐다. 이럴 때 그거라도 손에 쥐고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조금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아주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쇠를 긁는 것 같은 음성이었다.

“찾아내! 못 찾으면 퇴근 못할 줄 알아.”

대답 대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까지 내 담당 간호사였던 단발머리 간호사가 울음을 터트린 것 같았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다시 소리쳤다.

“뭘 잘했다고 울어? 우는 소리도 꼭 돼지 같네!”

단발머리 간호사는 짧은 머리에 덩치가 약간 큰 편이었다. 선임 간호사들은 타박을 놓을 때 종종 그녀의 체격과 연관을 지어 빈정거리곤 했다. 예를 들면, 눈치가 없는 게 둔해서 그렇다느니, 뚱뚱해서 둔하다느니 그런 말들을 했다. 사실, 단발머리 간호사가 제일 뚱뚱한 것도 아니었는데 유독 그녀에게만 심한 말이 던져졌다.

흐느끼는 소리가 멈추지 않자 내 침대 앞 데스크에 앉아 있던 어린 간호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십 대 초중반의 앳된 얼굴을 한 어린 간호사는 이브닝 타임에 나를 담당할 간호사였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 침대 아래쪽과 캐비닛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가위가 사라졌나 봐요. 환자분, 혹시 보셨나요?”

가위라고 하니 별 생각 없이 지켜본 장면이 떠올랐다. 새벽이 오기 전, 깊은 밤중이었다. 응급 수술을 마친 환자 한 명이 내 옆에 비어 있던 병상으로 배정되어 왔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였다. 상태가 위중했는지 할아버지의 환자 감시 모니터에서는 쉴 새 없이 뚜뚜- 하는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잠들어가는 영혼까지 흔들어 깨울 작정인 것처럼 시끄러운 모니터 경고음은 아침까지도 이어졌다. 나는 밤새 울려대는 그 소리 때문에 조금도 잘 수가 없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담당 간호사를 불러서 저 사람의 모니터를 제발 삼십 분만이라도 꺼줄 수는 없냐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참기 힘들 만큼 스트레스가 쌓였을 무렵, 갑자기 숨이 가빴고 식은땀이 흘렀다. 또다시 요란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침대 옆에 놓인 내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맥박수가 치솟고 있었다. 단발머리 간호사가 놀란 표정으로 달려와 내 귀에 체온계를 꽂았다. 그녀는 40도라고 중얼거리며 급히 해열제를 주입했다. 그러고는 아이스 팩을 가져와서 등에 깔았다. 냉기가 심장에 닿자 겨우 경고음이 멈췄다.

나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손으로 쓸어 내렸다. 얼굴이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땀을 닦아내다가 콧줄을 고정해 놓은 반창고를 잘못 건드렸다. 바로 웩하고 구역질이 났다. 단발머리 간호사는 자기 앞주머니에 들어 있던 의료용 가위를 꺼낸 다음 새 반창고를 잘라서 콧줄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 순간, 또 모니터 경고음이 울렸다. 건너편 병상이었다. 단발머리 간호사는 캐비닛 위에 반창고와 가위를 놓아두고 건너편 병상의 할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시끄러운 석션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기도가 막혔잖아! 석션 미리 하랬지?”

“했는데도 금방 다시 차오른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간호사의 풀죽은 대답에 여기저기서 야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석션 하나를 제대로 못해?”

“잘한다, 잘해.”

“야야. 환자 하나 말아 먹기 전에 딴 일 알아봐.”

잠시 뒤, 경고음이 멈추면서 석션 소리도 멈췄다. 그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단발머리 간호사의 나지막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비아냥거리는 말을 내뱉으며 지나갔다. 쟤는 또 정강이를 차였네, 또 맞을 짓을 했나 보네. 쯧쯧.

곧이어 날카로운 목소리가 단발머리 간호사를 향해 명령을 했다.

“너는 밥 먹을 자격도 없어! 나 밥 먹는 동안 내 환자들까지 전부 목욕시켜 놔.”

단발머리 간호사는 울먹이며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마침 내 담당 레지던트가 드레싱 카트를 끌고 들어왔고, 중환자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어디 불편한 곳 있어요?”

레지던트는 수술 부위를 덮은 거즈를 열며 나에게 의례적인 질문을 했다. 조금 전 일어난 일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서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고, 수술 부위는 욱신욱신했으며, 허리는 끊어질 듯 뻐근했다. 양쪽 옆구리에 꽂힌 고무 튜브는 복강 내에 고이는 시뻘건 체액을 뽑아내고 있었는데, 그것들의 무게 때문에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었다. 어쨌든 적절한 대답을 찾기 위해 당연히 불편한 곳과 이상하게 불편한 곳을 구별해 보려고 애썼다. 아무래도 수술 부위의 상처가 심상치 않았다. 수술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더 욱신거렸다. 그 말을 꺼내려는데, 레지던트의 휴대폰으로 중요해 보이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귀와 어깨에 전화기를 끼운 자세로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메모할 게 생겼는지 오른손으로는 종이에 뭔가를 받아 적었고, 왼손으로는 뻘건 소독약을 상처에 쓱쓱 발랐다. 그는 새 거즈로 상처를 다시 덮을 때까지 통화를 계속했다. 나는 그가 전화기나 의료용 기구 같은 것을 내 배 위에 떨어드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소독이 끝나는 동시에 전화를 마쳤고, 벌여 놓은 물품을 서둘러 카트에 담았다. 그러면서 캐비닛에 올려놓은 자기 볼펜과 함께 단발머리 간호사가 반창고를 자르고 잠시 놓아둔 가위까지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그러고는 인사도 없이 바삐 나갔다.

“환자분, 가위 보셨어요?”

어린 간호사가 거듭 물었다. 어느새 옆으로 와 있던 단발머리 간호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침대 밑을 뒤지고 있었다. 가위는 레지던트가 가져갔다는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대가 콧줄에 눌려 바람 새는 소리만 쉭쉭거릴 뿐이었다. 다시 목소리를 내보려고 배에 힘을 주었더니 이번엔 수술 부위가 움찔하며 아팠다. 말 한마디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몸 상태에 짜증이 났다. 이런 상태에서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은 아무래도 주제 넘는 일인 것 같았다. 나는 모르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가로젓고는 눈을 감았다.

단발머리 간호사의 시무룩한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이미 내 손을 떠나버린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애초부터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나는 다만 환자였고, 내 몸의 치료와 회복에 집중하면 되는 거였다. 어린 간호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 본 것부터가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다.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을 맞던 머리가 터지게 싸우던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들의 일이니까.

그때, 민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내가 발제를 하지 않은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예상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면서까지 그 기사를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긴 했지만 누구나처럼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다. 갚아야 할 대출금이 쌓여 있었고, 아직 유치원도 가지 못한 어린 딸아이가 있었고, 노후를 책임져야 할 부모님이 계셨다. 생각해 보면 조문객 하나 없는 그 썰렁한 빈소에도 차라리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곳에 가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곳에 누워 있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민재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놀라서 조문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늦은 오후였다. 무거운 안개가 내려앉은 자동차 전용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안개를 뚫고 하얗게 쏟아지던 빗줄기에 차선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 폭우에서 운전한 적은 처음이었다. 빗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현기증이 났다. 쾅!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가드레일에 들이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가 빙글 돌며 옆 차선으로 튕겨 나갔을 때 또다시 충격이 가해졌다. 달려오던 차가 브레이크를 밟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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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모자나이트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하여 라돈 침대, 라돈 베게의 유해성이 이슈로 떠오르던 무렵이었다. 해당 업체들은 발암 물질이라고 문제가 된, 매트리스의 원료인 모자나이트를 폐기 처분했다. 그런데 약 3톤가량의 모자나이트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사라진 모자나이트가 어디로 향했는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민재는 유아용품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민재는 회사의 문서 파쇄기 옆에서 우연히 세 장짜리 수기문서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모자나이트 재사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폐기처분할 모자나이트를 수유 쿠션으로 만드는 계획이었다. 그걸 본 이후, 민재는 더 이상 영업을 할 수가 없었다. 민재가 주로 영업을 하는 곳은 산후조리원이었다. 출산한 산모들을 상대로 그걸 판다는 건,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평소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민재의 실적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이상하게 생각한 영업부장은 민재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민재는 수기문서의 발견에 대해 털어 놓았다. 영업부장 역시 그 말을 듣고 매우 놀란 것 같았다. 자기도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알아보겠다며 민재를 다독였다.

얼마 후, 회사에는 민재를 둘러싼 이상한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다. 민재가 정신분열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애는 원래 불면증으로 정신과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누가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언제 미행이라도 했는지 병원에 들어가는 뒷모습이 사진에 찍혀 있었고 회사 사람들은 그것을 몰래 돌려보았다. 동료들은 그때부터 민재를 슬슬 피했다. 같이 점심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은근슬쩍 따돌림을 받던 민재에게 영업부장은 유일한 의지처가 되었다. 아무도 민재를 상대하지 않을 때에도 영업부장만큼은 변함없이 그 애를 챙겨주었다. 가끔 점심을 사주기도 하고, 결혼 준비에 보태라며 꽤 큰 돈을 축의금으로 미리 내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버텨가던 어느 날, 민재는 탕비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정신분열증이라는 루머를 퍼트린 장본인이 다름 아닌 영업부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였다. 민재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영업부장에게 따졌다. 영업부장은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모자나이트와 관련한 수기문서 이야기를 꺼냈다. 오히려 그는 되물었다. 굴러다니던 종이 몇 장을 핑계로 영업사원이 영업을 못 한다면 과대망상이 맞지 않느냐고. 정신분열증의 증상이 과대망상이라는 설명도 태연하게 덧붙였다.

그 이후로 영업부장의 태도는 돌변했다. 종종 민재를 사람 없는 장소로 데려가 폭언을 퍼부었고, 툭하면 손찌검이었다. 민재가 나를 찾은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 애는 회사를 상대로 싸울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이 일로 시작된 심각한 우울증 증상 때문에 파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애는 자기편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민재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그러면서 이 기사는 무조건 내일 나가는 거라고도 말해 두었다. 그 애가 보관하고 있던 수기문서에는 모자나이트 폐기물의 재사용에 관하여 꽤 구체적인 계획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 이만하면 특종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약간은 신나기까지 한 마음으로 발제를 앞두고 있었다. 믹스커피가 당겨서 건물 옥상에 있는 자판기로 갔다. 자판기 옆에는 편집국장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마침 할 말이 있었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끄고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그는 사근사근한 태도로 내게 부탁이 있다고 말했다. 친척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새로 출시된 상품에 대한 광고 기사를 하나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 회사는 친환경 소재의 유아용품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여자 연예인들을 모델로 TV 광고까지 꾸준히 해온 덕에 육아를 모르는 사람들도 들으면 바로 알 만큼 인지도가 높았다. 요즘 신문광고에도 공을 들이는 모양인지 우리 신문사와 새로 광고 계약까지 마쳤다고 했다. 민재가 다니는 회사였다.

밤이 깊어갈수록 수술부위가 더 아팠다. 열이 다시 오르면서 상처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두껍게 동여맨 복대라도 풀면 좀 나을까 싶었다. 아까 레지던트가 왔을 때 물었어야 했는데, 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쩔 수 없이 데스크에 앉아 있는 어린 간호사를 불렀다. 나는 어린 간호사에게 통증을 호소하며 꽉 조여 있는 복대를 좀 풀어도 되는지 물었다. 그녀는 의사에게 물어보겠다고 대답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의사는 답을 주지 않았다. 두세 시간은 흐른 것 같았다. 나는 결국 어린 간호사를 다시 불렀다. 그리고 의사가 왜 답을 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린 간호사는 대답을 못하고는 우물쭈물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임 간호사가 내게 왔다. 결점 하나 없이 곱게 화장한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그 예쁜 간호사는 어린 간호사의 대변인이라도 되듯 말했다.

“환자분! 의사한테 질문을 하려면 여러 개를 모아서 한꺼번에 해야 해요. 지금 이 문제 하나를 가지고 의사에게 노티(notify)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조금 기다리세요!”

목소리가 익숙하다 했더니, 쇠를 긁는 것 같은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가위가 사라졌을 때 단발머리 간호사를 독하게 몰아세우던 그 사람이 분명했다. 나는 예쁜 간호사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세상의 귀찮은 일들은 모두 짊어진 것만 같은 짜증이 묻어 있었다. 나는 이내 생각을 가다듬고 말했다.

“통증이 심하다고 말했는데도 일을 그렇게 하시면 됩니까? 아침 회진까지 기다릴 수가 없으니 당직 의사에게라도 지금 물어봐 주세요.”

그러자 예쁜 간호사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잠시 마주친 그녀의 눈빛에 나는 놀랐다. 섬뜩하리만치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보자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그녀에게 그런 눈빛을 받아야 할 만큼 뭔가 잘못을 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이곳에 누워 있는 환자라는 이유로 그런 눈빛을 받아도 괜찮을 만큼 하찮게 된 것일까. 나도 모르게 예쁜 간호사를 다시 불렀다.

“그리고 간호사님…….”

돌아선 그녀가 다시 나를 향했다. 나는 콧줄이 성대를 누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또렷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간호사들끼리의 일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교육을 빙자한 괴롭힘이 도를 지나친 것은 아닌가요?”

어느새 주위에 간호사들이 모여들었고, 예쁜 간호사는 여전히 대답 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어린 간호사를 끌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생각지 못하게 일이 커져 버린 것 같았다. 뭐 하러 그런 말을 내뱉었는지 나 스스로도 어리둥절했다. 하필이면 간호사들의 손에 생사가 달린 이 상황에 그녀들을 자극하는 한심한 일을 벌이고 말았다. 후회가 되어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어린 간호사가 내게로 왔다. 당직 의사에게 노티한 결과, 누워 있을 때는 복대를 풀어도 된다는 답을 받았다고 전했다. 어린 간호사의 달라진 것 없는 태도에 나는 괜한 걱정을 했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놓았다. 나는 복대를 열고 상처를 식혔다. 통증이 훨씬 줄어든 것 같았다. 어린 간호사는 조금 편안해진 나를 힐끔 곁눈질했다. 그리고는 옆에 서 있던 다른 간호사에게 귀엣말을 했다.

“선임들이 그러는데, 이 환자는 이제부터 배려해 주지 말래요.”

귀엣말이라고 하기 에는 목소리가 너무 컸다. 마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 것만 같았다. ‘이 환자’는 분명히 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배려해 주지 말라니. 대체 무슨 소리일까.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생각할수록 불길했고, 기분이 더러웠다.

엑스레이 촬영이 끝나고, 몸무게를 측정하기 위해 간호사들이 저울을 들고 병상을 돌기 시작했다. 몸무게를 재고 나면 밤새 더러워진 환자복도 갈아입히곤 했다. 내 차례가 되자 남자 간호사 두 명이 침대로 들어와 커튼을 쳤다. 예쁜 간호사와 담당 간호사도 뒤따라 들어왔다. 남자 간호사들이 나를 저울에 달고 나자, 예쁜 간호사는 그들에게 내 옷을 갈아입히라고 지시했다. 옆에는 여자인 담당 간호사가 있었음에도 굳이 남자 간호사들을 지정한 것이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생각지 못하게 알몸이 되어버렸다. 나도 나지만, 앳돼 보이는 한 남자 간호사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당황스러운 손놀림으로 자꾸만 실수를 했다.

어제까지는 분명 이렇지 않았다. 여자 간호사들이 커튼을 쳐서 침대를 모두 가리고는 환자복을 갈아입혀 주었다. 그러는 동안 남자 간호사들은 커튼 바깥에서 기다렸다가 남자 환자나 의식이 없는 여자 환자에게 투입이 되곤 했다. 나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었고, 의식은 멀쩡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내 환복을 여자 간호사들끼리 담당한 것이 배려였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 배려가 사라진 지금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과거에 존재했던 배려에 대해 고마워해야 할지, 현재의 상황에 분노를 느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생각에 잠겨 있는 나에게 예쁜 간호사가 다가왔다.

“환자분! 복대를 이렇게 풀고 계시면 어떻게 해요? 단단히 조이셔야죠.”

예쁜 간호사는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복대를 갑작스럽게 힘껏 조였다. 그 바람에 나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의사가 풀어도 된다고 했잖아요!”

“아, 의사가 그랬나요?”

예쁜 간호사는 깜짝 놀라는 척하며 되물었다. 그러고는 너무도 태연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은 기가 막히게도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따뜻한 온기라고는 조금도 남은 것 같지 않은 짙은 잿빛이었다. 내 몸은 그 차가운 눈동자 아래에서 마치 물에 젖은 인형처럼 누워 있었다. 이런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 몸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내 몸을 잠시라도 떠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로 땀에 절어서 축축한 침대 시트를 떠나 하늘을 향해 조금 올라가 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힘겹지가 않아서 계속 그렇게 올라가 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뒤를 돌아서 살며시 눈을 떴다. 완전히 살아있지도 그렇다고 죽어 있지도 않은 내가 있었다. 그게 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그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미 많은 일들이 잘못되어 버렸고, 어쩌면 앞으로도 더 많이 잘못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까지 받아들여야만 했다. 지나간 일이 내 의지가 아니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일 역시 나의 뜻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들을 당연히 지킬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어온 순간들을 되짚어 보았다. 안타깝고도 어딘지 애처롭기도 한 그런 날들이었다.

다시 침대로 내려와 멍하니 천장을 보았다. 격자무늬의 하얀 천장은 중간 중간에 우툴두툴한 돌기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돌기를 가만히 바라보니 까맣게 잊고 있던 자그마한 물건이 문득 떠올랐다. 손끝에 만져지던 지압기의 매끄러운 돌기는 언제나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편백나무 지압기. 언제 어디서나 애착 인형처럼 쥐고 다니던 물건이었다. 나는 그게 필요했다. 이곳에서도 그걸 갖고 있었어야 했다.

아침 회진과 면회는 동시에 이루어졌다. 보호자의 면회 시간은 하루에 한 번, 삼십 분이 전부였다. 남편은 내게 딸아이의 안부를 전했고, 담당 교수에게는 내 상태를 물었다. 담당 교수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가 다른 환자에게 넘어가자 나는 수척해진 남편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여보, 화장대 서랍에 있는 손 지압기 말이야. 그거 새거 하나 뜯어서 갖다 줘.”

“그건 왜?”

“가지고 있어야 마음 편해서 그래.”

“여기 가져와도 될까?”

“그냥 지압기인데 뭐.”

남편은 더 이상은 묻지 않았고, 곧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침대 옆에 가만히 서 있다가 면회 시간이 종료되어 중환자실을 나갔다.

오후가 되자, 내 침대 앞 데스크에는 단발머리 간호사가 앉았다. 단발머리 간호사는 어제의 일 따위는 모두 잊어버린 듯 쾌활한 표정으로 일을 시작했다. 먼저 나에게 다가와 살가운 인사와 함께 편백나무 손 지압기를 건넸다. 남편이 그새 맡기고 간 모양이었다. 그녀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내 침대 시트와 수액 줄을 정리하고는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옆 병상의 할아버지에게로 건너갔다. 대답 없는 할아버지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자세를 바꿔 주었다. 마지막으로 건너편 병상의 할머니에게로 넘어갔다. 그녀는 누워 있는 할머니의 침대를 일으켜 세우며 할머니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오늘 중환자실을 떠나 일반 병실로 이동한다고 했다.

나는 바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을 지켜보며 손 지압기를 만지작거렸다. 지압기의 돌기가 손끝에 닿으니 이곳에 오기 전으로 되돌아 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과 의사들처럼 온전히 사람 구실을 했을 때, 늘 쥐고 있던 물건이었다. 당연했던 일상이 지금은 뭐 하나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며칠째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것을 떠올렸다. 쇄골 옆에 뚫린 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는 우윳빛 영양제가 식음의 전부였다. 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가글이라도 해야 살 것 같았다. 테이블에 놓인 냉수를 입에 머금었다가 빈 종이컵에 다시 뱉어냈다. 손에 힘이 없었던 탓에 종이컵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가글한 물이 수술 부위를 덮은 거즈에 쏟아졌다. 단발머리 간호사는 재빨리 달려와 오염된 물에 젖어버린 거즈를 떼어냈다.

“상처 소독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중얼거리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담당 레지던트가 드레싱 카트를 끌고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의사가 왔는데도 단발머리 간호사는 데스크로 돌아가지 않고 내 옆에 서 있었다. 레지던트는 짜증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가서 일 보세요.”

그런데도 단발머리 간호사는 가지 않고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어제부터 환자분이 말하시는데요. 수술 부위가 자꾸 욱신거린다고…….”

“가서 일 보라고 했잖아요! 할 일 없어요?”

레지던트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화를 냈다. 그러자 어디선가 예쁜 간호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뭐해? 빨리 와서 여기 침대 시트 좀 갈아봐.”

그러자 단발머리 간호사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옆 병상으로 건너가 대변으로 오염된 침대 시트를 갈았고, 레지던트는 평소처럼 빠른 손놀림으로 소독약을 발랐다. 나는 단발머리 간호사가 하려던 말이 뭐였을까 궁금해서 레지던트에게 물었다.

“상처가 왜 이렇게 아프죠?”

“수술하면 원래 아파요.”

그는 간단히 대답하고는 중환자실을 빠져나갔다. 레지던트가 사라지자 예쁜 간호사가 내 침대 앞 데스크로 왔다. 잔뜩 화난 표정의 예쁜 간호사가 다가오자 단발머리 간호사는 주눅이 들었다. 지켜보는 내 심장도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침대를 더듬어서 굴러다니던 손 지압기를 찾았다. 오랜 습관대로 손가락으로 꽉 눌러서 쥐었다.

예쁜 간호사는 익숙한 버릇처럼 단발머리 간호사의 가슴을 손끝으로 탁 밀었다.

“돼지 년! 의사가 가라는데도 왜 옆에 서서 깝치고 있어? 걔 좋아하냐?”

“환자분이 자꾸 상처가 욱신거리신다고 하셔서 자세히 봤는데 염증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소독약만 발라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염증? 네가 의사야? 나대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하세요. 너 때문에 창피해 죽겠다. 네가 안 그만두면 내가 그만둬야겠지? 안 그래?”

숨 막히는 적막이 흘렀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모니터 경고음만이 겨우 그 침묵을 깼다.

ⓒ게티이미지뱅크<br>
ⓒ게티이미지뱅크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내가 그만두겠다고. 민재는 유서에 그렇게 썼다.

나와의 인터뷰에서도 민재는 그만둔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는데, 나는 그 의미가 세상을 등진다는 의미일 줄은 몰랐다. 자신을 못살게 구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취직한다는 의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애가 느꼈을 괴로움의 깊이를 그 정도로 밖에 헤아리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내 양심의 편의를 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 날, 발제를 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민재가 다니는 유아용품 회사의 경영자가 편집국장의 친척이라는 사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편집국장과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광고성 기사까지 부탁받은 마당에 자칫 회사를 망하게 할 수도 있는 기사를 발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무래도 망설여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기사는 꼭 내려고 했다. 내가 못하면 다른 신문사에 있는 친구에게 넘기기라도 하려고 했다. 어쩌다 보니 그게 그날이 아니었을 뿐이다. 민재가 그렇게 갑자기 죽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그 애에게 차마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내일 아침은 아니지만 빠른 시일 내에 꼭 기사를 내겠다고 약속한 뒤 전화를 끊었을 때, 동시에 그 애는 세상이 자기를 완전히 등졌다고 생각해 버릴 줄은 몰랐다. 자기를 도와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줄은 몰랐다. 나는 그런 게 늘 하는 일이었지만 그 애한테는 자신의 온 존재가 걸린 일이었다.

한참 조용하던 옆 병상의 모니터에서 삐- 소리가 울렸다. 뚜뚜 하는 다른 경고음과는 뭔가 달랐다. 할아버지의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담당 간호사가 뛰어올라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다른 간호사들은 약물을 투여했다. 코드블루가 방송되자 달려온 의사들도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미동도 없이 누워 있던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모여드는 사람들에 가려져 더 이상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위급하게 돌아가던 분위기는 어느새 숙연함으로 바뀌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할아버지의 침대는 할아버지를 싣고 중환자실을 떠났다. 죽음이라는 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가 버렸다. 어제도 있었던 일인 것 같고, 오늘도 그랬고, 어쩌면 내일도 또 있을 일이라는 듯이. 이곳에서 죽음이란 정말 흔한 해프닝이었고, 그 일이 여기 누워 있는 어느 누구에게 일어나도, 그게 하필이면 나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바보 같은 눈물이 터졌다. 콧줄이 흔들리면서 목구멍을 눌렀다. 구역질이 났다. 단발머리 간호사가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나는 마치 독백처럼 죽는 게 두렵다고 중얼거렸다. 단발머리 간호사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이 모든 일들이 언젠가는 지나갈 거라고. 정말 힘겨운 고비는 이미 지나간 거라고.

나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러자 단발머리 간호사의 앞가슴에 푸른 색실로 수놓인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봄이었다. 이 봄. 나는 봄 간호사에게 남편을 좀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도착했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남편은 놀란 표정이었다. 나는 남편의 귓가에 몇 마디를 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환자실을 나갔다.

회진 시간이 아닌데도 담당 교수가 나타나자 식사 준비로 부산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담당 교수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다. 그의 뒤로 레지던트와 수간호사, 그리고 남편이 보였다. 레지던트는 언제나처럼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평소보다 잔뜩 긴장한 듯 보였다. 수간호사의 표정은 굳다 못해 거의 인상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 침대 주위로 모여들자 데스크에 앉아 있던 봄 간호사도 놀라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담당 교수는 내게 꼭 해야 할 말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침대를 더듬어 편백나무 손 지압기를 찾아 쥐었다. 오톨도톨한 돌기에 손끝을 비볐다. 다른 것들보다 조금 더 튀어나온 돌기가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를 꾹 눌렀다. 딸깍 소리가 났다. 손 지압기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돼지 년! 의사가 가라는데도 왜 옆에 서서 깝치고 있어? 걔 좋아하냐?

환자분이 자꾸 상처가 욱신거리신다고 하셔서 자세히 봤는데 염증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소독약만 발라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뭐? 염증? 네가 의사야? 나대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하세요. 너 때문에 창피해 죽겠다. 네가 안 그만두면 내가 그만둬야겠지? 안 그래?

수간호사는 커다래진 눈으로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간호사실로 들어가 예쁜 간호사를 데리고 나왔다. 예쁜 간호사가 나타나자 나는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다시 눌렀다. 예쁜 간호사는 씩씩거리며 외쳤다.

“환자분! 중환자실에 기계 가지고 들어오면 안 되는 거 모르세요? 당장 끄세요!”

나는 당장 녹음기를 껐다. 그러고는 내가 이 공간에 들어 온 뒤로 보고 듣고, 직접 겪은 것 몇 개를 사실 중심으로 말했다. 담당 교수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수술 부위에 덮인 거즈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여기 시퍼렇게 곪았잖아. 어쩐지…….”

담당 교수는 레지던트에게 상처 부위의 고름을 빼내라고 지시했다. 기계를 붙여서 고름을 빼내는 데만 하루 이틀은 걸릴 모양이었다. 레지던트는 시뻘게진 얼굴로 기계를 가져와서는 지시대로 했다. 이번에는 꼼꼼하고 정성스러운 손길이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내 침대는 일반병실로 향했다. 열도 거의 내렸고 상처는 잘 아물었다. 담당 교수가 말하기를, 염증이 며칠만 더 방치됐더라면 패혈증도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꼼꼼하게 살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퇴원하기 전날, 봄 간호사가 병실로 찾아왔다. 그녀는 나를 보고 쑥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그리고 예쁜 간호사로부터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 그러고도 예쁜 간호사는 지방의 분원으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봄 간호사는 예쁜 간호사를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예쁜 간호사 역시 신규였을 때 재가 되도록 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내 생각에도 어쩐지 그랬을 것 같았다. 창조주도 아닌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예쁜 간호사는 아마도 너무 많이 타버려서 하얗게 재만 남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녀는 툭 건드려졌으니 허물어져 버릴 일만 남은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때로는 허물어지는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재가 되어버린 자신의 몸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피닉스가 떠올랐다. 활활 타버린 잿더미에서 작은 벌레로 생겨나고 점차 자라다가 마침내는 날개가 돋아나 자신의 고향인 아라비아로 날아간다는 전설의 새 말이다. 아마도 그렇게 찾아간 아라비아는 향기로운 꽃이 피고, 투명한 물이 흐르고, 따뜻한 바람이 감싸는 곳일 것만 같았다. 봄 간호사는 마지막 인사처럼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고마운 건 오히려 나였다. 봄 간호사에게 고맙고 또 미안했다. 나는 그녀에게 손 지압기를 건넸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명함도 한 장 건넸다.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였다. 사실, 내가 그녀를 위해 뭘 했다기보다는 그녀의 일과 내 일을 구별할 수가 없어졌다는 게 더 맞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노트북에 잠들어 있는 몇 개의 파일들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두 발로 걸어가서 병실의 블라인드를 걷었다. 유리창 너머에서 햇살이 비쳐왔다. 내내 우중충했던 하늘에 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 당선 소감 / 백수연(여. 1986년생. 서울길원초등학교 교사)

△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백수연
△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백수연

2016년 겨울,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있던 무렵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영화 <라라랜드>를 보러 극장에 갔습니다. 배우를 꿈꾸는 주인공 미아가 실패와 좌절을 거치고 결국 꿈을 이루는 이야기였습니다. 미아가 마지막 오디션을 보는 장면이 기억이 납니다. 탈락이 익숙해진 미아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Audition(The Fools Who Dreams)을 부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꿈만 꾸는 바보가 되더라도, 꿈을 꾸는 게 낫다고. 그 꿈이 결코 나를 망치지는 않을 거라고. 늘 꿈꿔왔지만 미뤄두었던 소설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건, 저 자신을 다시 쓰는 일이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마주하고 좌절하기를 수도 없이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소설을 계속 쓰는 게 맞는 건지도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들려온 당선 소식은 저에게 소설을 계속 써도 된다는 첫 응답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부족한 제 글에서 가능성을 봐 주시고, 또 소중한 기회를 주신 김선주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플롯이 뭔지도 모르던 제게 이야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신 최민우 선생님, 강영숙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 수업을 들었던 동료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부모님과 어머님, 아버님의 배려 덕분에 제가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바쁜 와중에 내 소설까지 리뷰해주는 언니 고마워. 그리고 하느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 남편 정지헌 씨와 딸 정다인 모두 사랑합니다.

■ 심사평 / 김선주(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

직장인들을 위한 신춘문예가 벌써 7회를 맞이했다. 그동안 많은 직장인들이 응모를 해서 기쁨과 함께 보람이 있었다. 이번 응모작도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뿌듯했다. 예심을 거쳐서 본심에 올라온 작품이 10편이었다. 심사기준은 신선한 주제, 치밀한 구성, 정확한 문장, 격조 놓은 묘사, 문학적인 형상화에 중점을 두었다. 심사숙고 끝에 3편의 작품을 뽑아서 거듭 세심하게 읽었다.

「다시 아라비아로」는 직장의 비리를 알게 된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여 피해자가 되는 현실을 주제로 엮은 작품이다. 회사에서 폐기된 방사선 물질이 재사용된 것을 알게 된 여자가 온갖 핍박을 받다가 기자에게 회사의 부정을 고발한다. 하지만 제보를 받은 기자도 상부의 은근한 제재로 기사를 실지 못한다. 공동체인 회사의 갑질은 한 개인에게 언제나 교묘하고 잔인하다. 온몸을 재가 되도록 태우고 나서야 다시 소생하여 고향인 아라비아로 날아간다는 피닉스의 전설에 비유해서 기자로서의 의지를 다짐하는 끝부분이 돋보인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솜씨가 노련하고 구성이 뛰어나다.

「탬버린을 치다가」는 아파트 관리소장이 재계약을 앞두고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과 동 대표들을 접대하는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치며 회한에 가득 찬 지난날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포유류인 고래가 땅을 버리고 바다로 간 까닭은 땅의 속박을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소망이었고,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희망으로 몸부림치는 직장인의 고뇌를 담담하게 그렸다.

「별이 지는 거리」는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함께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38상 여인의 심리상태를 차분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마침내 결혼을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속삭이듯 들려주고 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녀를 상담해주던 선생님의 사랑 가득 찬 삶을 스쳐 지나가듯이 묘사하면서 강한 모티브를 준 것이 인상적이지만, 좀 더 압축해서 빈틈없는 구성으로 작품을 형상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세 작품 중에서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백수인의 「다시 아라비아로」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뜨거운 박수로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훌륭한 소설가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문학이란 우리의 정신세계를 깨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인도의 지도자인 간디는 꿈을 이루려고 노력할 때만 꿈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직장인들이여! 작가라는 값진 열매를 맺기 위해 꿈을 키우며 성실한 준비와 꾸준한 노력으로 목표를 이루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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