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총 7명 사망
피의자 A씨 재개발 투자금 관련 4건 소송 패소
잇따른 패소에 울분폭발…불만→방화 가능성
변협 “진정한 법치…성숙한 시민의식 자리잡아야”

지난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해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구조 및 희생자 수습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지난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해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구조 및 희생자 수습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7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피의자 A씨가 수억원의 신천시장 재개발 투자금 관련 4건의 소송에서 원하는 소송 결과를 얻지 못하자 앙심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재개발 투자금 관련 잇따른 패소…‘불만’이 ‘방화’로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가 투자와 관련한 법적 분쟁은 모두 4건(항소심 제외)으로 파악됐다. A씨는 지난 2013년 대구 수성구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신축하려는 시행사와 투자 약정을 마치고 모두 6억8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는 일부 돌려받은 돈을 뺀 잔여 투자금 5억3000여만원과 지연 손해금을 달라며, 시행사(법인)와 대표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시행사(법인)만 A씨에게 투자금과 지연 손해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고, 시행사 대표 B씨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이에 A씨는 항소했지만 기각돼 해당 판결은 확정됐다.

이후 B씨가 대표이사인 시행사는 A씨에게 돈을 주지 않았고, A씨는 해당 시행사의 주상복합아파트 신축사업과 관련해 수탁자 겸 공동시행자였던 투자신탁사를 상대로 지난 2020년 추심금 청구 소송을 냈다.

이 소송에서 A씨는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이 재판의 항소심 선고가 범행 직전인 9일 오전에 있었고, 피고(신탁사)측 법률 대리를 맡았던 변호사 사무실도 불이 난 건물에 있다.

A씨는 투자금을 계속해 돌려받지 못하자 지난해 B씨만을 상대로 약정금 반환 소송을 냈지만 이번에도 A씨는 패소했다. 이 소송에서 B씨의 변호를 불이 난 사무실에 소속된 C 변호사가 맡았다.

패소한 A씨는 항소했다. 변론기일은 오는 16일 대구고법에서 예정돼 있었다.

A씨는 여러 건의 민사 소송 외에 형사 사건에도 연루됐다. 그는 2017년 대구·경북지역 부동산 정보 공유 대화방에 자신이 투자했던 사업의 시행사 대표이사를 비방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8일 이 소송의 재판부는 A씨에 대해 “피고인이 비방을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허위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한 것이 인정된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경찰은 A씨 본인에게 불리한 재판 결과가 잇따르자 그에 대한 불만이 방화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전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법률사무소 방화참사 희생자에 대한 발인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지난 12일 오전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법률사무소 방화참사 희생자에 대한 발인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변협 “진정한 법치 실현…시민의식 자리잡아야”

이번 화재가 재판에서 패소한 용의자의 보복으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면서 법조계에선 ‘보복 테러’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변호사 단체는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에 입을 모았다.

방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참사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진정한 법치 실현을 위한 성숙한 시민의식을 호소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변협은 성명에서 “재판 패소에 앙심을 품은 50대 남성이 소송 상대방 측 변호사 사무실에 방화해 동료 변호사와 다수의 무고한 직원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다수의 중상자 발생 등 엄청난 인명 피해를 야기한 참사가 발생해 법조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며 “방화사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의뢰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를 향한 부당한 감정적 적대행위와 물리적 공격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리잡기를 강력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변협은 “법치주의는 사적 보복이 횡행할 수 있는 야만을 극복하고, 누구나 자신의 기본권과 법익을 보호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제도적 대안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변호사들은 법치주의에 터잡은 사법제도를 확립하고 운영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한 축으로서, 사회 각 분야에서 묵묵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소송 결과에 앙심과 원한을 품은 나머지, 자신의 역할과 직무에 충실하여 최선을 다한 상대방 변호사를 겨냥한 무자비한 테러가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에서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러한 범죄는 단순히 변호사 개인을 향한 범죄를 넘어 사법체계와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자 야만행위”라고 강조했다.

변협은 “변호사들이 국민을 위해 헌신하며 맡은 바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번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사건과 같은 사태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이번 사태가 누구나 자신의 정당한 기본권과 권익을 올바로 보호받는 선진적 법치 제도하에서 법률가들의 사회적 역할과 기여에 대한 평가가 바로 서고, 이를 뒷받침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끝으로 “변협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모든 물리력으로부터 변호사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즉각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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