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격리 연평균 1조원 예산 소요” 농경연 보고서 파문
윤 대통령 “재정 낭비 심각”…민주당 “재량권 남용 방지해야”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25일 서울시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쌀값 폭락에 대한 근본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25일 서울시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쌀값 폭락에 대한 근본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정부여당과 야당간 대립이 갈수록 격화되는 가운데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뜨거운 이슈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하 농경연)은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쌀 시장격리에 연평균 1조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정부여당이 이번 개정안을 반대하는 핵심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농경연 보고서가 내놓은 분석을 짚어보며 쌀을 포함해 보다 안정적인 농사를 지으려면 어떤 논의가 필요한지 살펴봤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왜 쟁점이 됐나

양곡관리법은 양곡의 효율적인 수급관리 등을 통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국민경제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동법 제16조 3항과 4항을 보면 정부는 양곡의 출하 및 가격조절을 위해 필요하면 양곡을 매입할 수 있다. 매입 물량은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거나 가격 급등락이 예상될 경우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 이상 또는 이하를 매입할 수 있다. 이들 조항은 지난 2020년 1월 개정 혹은 신설됐다.

보다 구체적으로 농림축산식품부 고시인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초과생산량이 생산량 또는 예상생산량의 3% 이상인 경우 ▲단경기(7~9월) 또는 수확기(10~12월) 가격이 평년가격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 수급 상황을 감안해 ‘매입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정부의 재량권이 꼬리처럼 붙었지만 대체로 농업계에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명시된만큼 이를 ‘자동시장격리’로 이해했다. 

농민들이 2020년에 개정된 양곡관리법을 ‘자동시장격리’로 받아들이게 된 데엔 곡절이 있다. 쌀농업 안정의 근간이었던 ‘쌀 목표가격제’(쌀소득보전직불제)가 폐지되며 그 대안으로 양곡관리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쌀 목표가격제’란 국회에서 5년마다 쌀 목표가격을 책정해 해당연도의 쌀값이 목표가격의 85% 수준에 미치지 않으면 쌀농가들에게 변동직불금을 지급해 소득을 보전하는 제도다. 국회는 지난 2019년 12월 종전 80㎏ 기준 18만8000원(2013~2017년)이던 쌀 목표가격을 80㎏ 기준 21만4000원으로 인상한 바 있다. 만약 쌀 목표가격제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올해까지 적용됐을 터다.

농민들은 목표가격이 사라지면 쌀농업 기반이 불안해진다고 우려했으나 2019년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은 “폭락하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변동직불제 같은 사후적인 정책수단이 아닌 선제적인 수급조절 장치로 쌀값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체계적인 시장격리제도를 도입해 양곡시장 불안을 최소화하고 예측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의 우려는 지난해 현실로 다가왔다. 통계청은 지난해 11월 15일 2021년 쌀 생산량이 388만톤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예상 수요량인 357만~362만톤을 27~31만톤 가량 초과한 수치다. 전체 생산량이 388만톤인데 초과생산(예상)량이 30만톤 내외이니 농식품부 고시가 정한 ‘초과생산량이 생산량 또는 예상생산량의 3% 이상인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자동시장격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8일에야 20만톤을 우선 시장격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초과생산량 중 남은 잔여량은 추후 시장 상황과 민간 재고 등을 검토해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미뤘다. 미뤘던 시장격리는 지난 4월(12만6000톤) 결정됐으나 떨어지는 쌀값을 잡기엔 늦어버린 조치였다. 

자동시장격리, 쌀 초과생산량 더 늘릴 것

농식품부에 의하면 지난달 15일 산지쌀값은 20㎏ 기준 4만725원으로 지난해 동기(5만4228원) 대비 24.9%나 하락했다. 이는 1977년 관련 통계를 조사한 이후 지난해 동기 대비로는 가장 큰 폭의 하락세다.이에 윤석열정부는 지난 7월 쌀 10만톤을 시장격리한데 이어 지난달 수확기 역대 최대 물량인 45만톤을 시장격리하겠다고 발표했다.

1년새 쌀값이 25%나 하락했다는 것은 정부의 양곡시장 안정화가 실패했음을 뜻한다. 야당이 된 민주당은 ‘자동시장격리’를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해당 개정안의 내용을 보면 시장격리와 관련해 기존 법안의 ‘할 수 있다’는 부분을 ‘해야 한다’라는 의무로 대체했다. 또, 농식품부 고시에 있던 시장격리 발동조건을 아예 법령으로 못 박았다.

민주당은 정부의 재량권 남용을 방지하려면 자동시장격리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시적 과잉은 자동시장격리로 대응하고 구조적 과잉은 양곡관리법에 포함돼 있는 쌀 생산조정제로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쌀 생산조정제는 논에 벼 대신 타작물을 재배하면 해당 농가에 직불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다만 민주당이 내세우는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과 윤석열정부의 전략작물직불제로 구체적인 내용은 구분돼 있다.

품목의 범위와 예산 규모 등 구체적인 각론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생산조정제에 관해서는 여야간 입장차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관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담긴 ‘자동시장격리’다. 

[이미지제공=농림축산식품부]
[이미지제공=농림축산식품부]

자동시장격리에 대한 정부여당의 입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서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농민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법으로 매입을 의무화하면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과잉공급 물량은 결국 폐기해야 한다”라며 “농업재정 낭비가 심각해지는데 오히려 그 돈으로 농촌개발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여당은 농경연이 지난달 30일 내놓은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 분석’ 보고서를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해당 보고서는 “베이스라인 전망(정부의 정책 개입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의 중장기 전망)을 실시했는데 이에 따르면 벼 재배면적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나 쌀 소비 감소 추세가 더욱 커 초과생산량은 연평균 약 20만1000톤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농경연은 벼 재배면적인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1.3%씩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나 1인당 소비량은 매년 1.8%씩 감소해 과잉 공급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농경연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도입되면 벼 재배면적 감소폭이 축소돼 과잉공급 규모가 점차 확대될 것이라 내다봤다. 이 보고서는 벼 재배면적 감소폭이 연평균 1.3% 감소에서 0.5% 감소에 그쳐 초과생산량 규모가 연평균 46만8000톤으로 크게 늘어난다고 예측했다. 나아가 “2026년산부터 초과생산량 규모가 48만톤을 상회해 격리 시행 시 소요비용이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며 “2030년산에 이르면 격리 규모도 64만1000톤까지 늘어나고 격리 소요 비용도 1조4000억원을 상회한다”고 전망했다.

쌀 생산조정제 영향 외면·기후변화도 적용 안 해

민주당은 이와 같은 농경연의 전망에 대해 쌀 생산조정제 시행에 따른 영향 분석이 빠져 제대로 된 영향분석결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시작된 쌀값 폭락이 정부의 재량권 남용으로 시장격리가 늦은 데 원인이 있음을 외면해 원인분석도 잘못됐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지난해 12월과 올해 4월 2차례에 걸쳐 쌀 37만톤을 시장격리했을 때 소요된 재정규모는 약 7900억원 정도다. 전문가들은 쌀 10만톤을 시장격리하면 대략 2000억원 내외가 투입된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당의 구상대로 쌀 생산조정제로 쌀 수급이 안정화된다면 시장격리에 투입되는 예산은 미미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은 쌀 생산조정제에 연간 약 1500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하고 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이호중 농림축산식품 전문위원은 “과거 쌀생산조정제를 시행했던 이명박 정부시기(2011~2013년) 문재인정부시기(2018~2020년)에 쌀생산량과 소비량이 거의 일치해 시장격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난해 수확기에 예상한 초과생산량은 27만톤이었다. 그러나 수확기에 매입하지 않고 시기를 놓쳐 올 상반기까지 총 37만톤을 매입했는데도 쌀값 폭락을 막지 못했다”라며 “이번 쌀값 폭락에서 보듯 수확기에 초과생산 예상량을 일시에 매입해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주는 것이 오히려 재정 부담 감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미지제공=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이미지제공=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한편, 이 전문위원은 “유럽이나 일본을 보면 수급관리에 정부가 나섰다가 실패도 했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면서 “수급관리가 실패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 대책없이 손을 놓을 수는 없다. 급한 불부터 끄고 다양한 방안을 동원해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처리한다고 모든 문제가 끝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농산물최저가격 보장을, 또다른 사람은 미국식의 소득안정직불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라며 “모든 제안을 열어놓고 농업의 지속성 유지와 농가경영안정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격리물량에 대한 대책과 생산조정제로 재배면적이 늘어날 타작물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이 전문위원은 “해외식량원조와 전통부와의 연계 등 다양한 가공식재료에 시장격리물량이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라며 “문재인정부 시기 생산조정제 물량은 당초 목표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농민들의 생산조정제 참여를 늘리려면 대상품목의 기술지원, 판로 확보 등을 종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벌어지는 여야정쟁을 쌀 생산안정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기회로 삼자는 제안이다.

전국쌀생산자협회 엄청나 정책위원장은 “만약 쌀 목표가격제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올해 변동직불금이 지급됐을 것이다. 변동직불금 규모는 어림잡아 1조8000억원 정도”라면서 “정부가 보유하는 시장격리물량은 팔때는 최고가 낙찰을 받을 수 있다. 당장은 방출하지 못하지만 쌀 목표가격보다 시장격리에 투입되는 재정규모가 더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동시장격리 약속을 못 지키겠다면 다시 쌀 목표가격제로 원상복귀하는 것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엄 정책위원장은 “2019~2020년에는 쌀 생산량이 감소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농사는 기후에 따라 생산량 변동이 심해 농경연처럼 단순 생산면적만으로 수확량을 예측하는 것은 기후위기의 시대에 맞지 않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쌀이 공급과잉이라지만 쌀 자급률은 92%수준이다. TRQ(저율할당관세) 물량으로 매년 40만8000톤의 쌀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 쌀 수입물량은 전체 소비량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쌀 소비량은 줄어드는데 TRQ 물량은 줄지 않는 게 진짜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쌀 시장격리에 연 1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리라는 전망은 쌀 생산조정제의 영향, 기후에 따라 달라지는 쌀 생산량 변동 등을 감안하면 현재로서는 판단이 어려운 사안이다. 이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초과생산량이 늘어나 농업재정 낭비가 심각해진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에 대해 판단 유보로 결정을 내린다.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지난 19일 소관 상임위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했다. 만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에서도 국민의힘이 계속 반대한다면 60일이 지난 뒤 다시 농해수위로 넘어오게 된다. 농해수위에서 의석수 5분의3 의결로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하면 본회의 부의까지 또 최장 30일이 걸릴 전망이다.

매년 수확기(9월 25일 기준) 쌀값은 오르기도 또 내리기도 했다. 통계청 산지쌀값조사 결과에서 지난 10년을 보면 2013년 80㎏ 기준 17만5279원이던 쌀값은 2016년 12만9807원까지 내려갔다. 2017년부터 회복하기 시작한 쌀값은 2020년 21만6484원까지 올랐으나 지난달 16만원대로 주저앉았다.

그동안 벼 재배면적은 꾸준히 내려갔다. 통계청 벼 재배면적 조사 결과를 보면 벼 재배면적은 2013년 83만2625㏊였으나 2015년 80만㏊대가 깨졌고(79만9344㏊) 2020년 72만6432㏊까지 급감했다. 그 이후 2021년 73만2477㏊, 올해는 72만7158㏊로 횡보하는 모습이다. 농경연조차 자동시장격리가 이뤄져도 벼 재배면적이 연평균 0.5%씩 감소하리라 예측했다.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큰 식량위기를 겪지 않은 이유는 주곡이 밀이 아닌 쌀이었기 때문이다. 쌀 생산기반 그 자체가 식량안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의는 여야간 정치적 승패를 떠나 우리나라 식량주권의 향방이 걸린 문제인만큼 진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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