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최강 한파, 난방 어려운 쪽방촌 직격탄
전기난로 켜자 건물 일대 정전…열악한 환경
건물 외벽 금 가있어…쪽방촌 안전대책 시급
쪽방촌 거주 환경 지적…올해도 제자리걸음

최씨가 커피를 끓이기 위해 공공 화장실에서 물을 받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에이, 왜 또 전기가 나가고 XX이야”

최영호(가명·51)씨가 살고 있는 자그마한 방 한 칸에선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추위를 참다못한 최씨는 눈앞에 놓인 자그마한 전기난로를 틀었다. 그 순간, 건물 전체의 전기가 끊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방에선 짜증 섞인 고성이 흘러나왔다. 영호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닥만 응시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위치한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최씨는 언제 끊길지 모르는 전기와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냉기를 홀로 맞서고 있었다. 실제 기자가 영호씨와 대화를 나누는 1시간 동안, 총 5번의 정전이 찾아왔다. 전기난로를 켤 때 한 번,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커피포트에 불을 올렸을 때 한 번. 그 밖에 다양한 이유로 정전은 수시로 찾아왔다. 최씨는 익숙하다는 듯 멋쩍게 웃어보였다.

최씨가 사용하는 전기히터. 작동과 동시에 얼마 안가 건물 일대가 정전됐다. ⓒ투데이신문
최씨가 사용하는 전기히터. 작동과 동시에 얼마 안가 건물 일대가 정전됐다. ⓒ투데이신문

최씨가 사는 한 평 남짓한 공간에는 쌓여있는 박스와 전기장판, 이불 여러 장이 전부였다. 난방은 포기한 지 오래다. 몸이 불편한 탓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최씨는 24만원의 월세조차 버겁다.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기 위해 난방을 틀자하니, 난방비를 감당 할 여력이 안된다. 결국 최씨가 선택한 방법은 두꺼운 이불 여러 겹과 패딩, 그리고 아주 작은 전기 난로가 전부다. 이는 쪽방촌 주민들이 수년간 겨울을 지낸 방법이다.

최씨는 “여름과 겨울, 전기가 나가는 것은 일상이다”라며 “원래는 일식집에서 열심히 일을 하던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이후로는 일 도 못해 이렇게 난방비 조차 내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정녕 관심은 있는 것인지 묻고싶다”며 “수 십명이 살고 있는 이 쪽방촌 건물에 금이 서서히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관심조차 없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 지금 무엇이 있느냐고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쪽방촌 건물 내부에 위치한 벽. 금이 가고 구멍이 나있다. ⓒ투데이신문
쪽방촌 건물 내부에 위치한 벽. 금이 가고 구멍이 나있다. ⓒ투데이신문

무너져가는 벽, 그 뒤에 살고 있는 사람

‘건물에 금이 가고 있다’는 최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쪽방촌 주민들이 한 데 모여사는 건물에는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무너져가는 벽 바로 뒤에는 박영현(가명·67)씨가 살고 있었다. 박씨는 건물에 금이 간 지 꽤 됐다고 말했다. 쪽방촌에 방문하는 그 누구도 이를 신경써주지 않으니, 박씨는 몸에 남겨진 흉터처럼 무너져 가는 벽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박씨의 방 역시 최씨와 마찬가지로 열악했다. 화장실 바로 옆에 위치한 박씨의 방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추운 겨울, 혹시나 동파될 까봐 수도를 열어둔게 화근이다. 박씨는 신경을 계속해서 건드는 이 물소리 조차 이제 무덤덤하다고 한다. 수년간을 이 곳에서 살아왔기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적응을 한 것이다.

이 곳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박씨를 괴롭히는 것은 무너져가는 벽도, 24시간 흘러내리는 물소리도 아니었다. 언제 이 곳에서 나가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이었다. 얼마전부터 쪽방촌 입주민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철거 소식이 화근이다. 그 소식을 접한 이후로 박씨는 언제 내쫓겨날지 모른다는 걱정에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서 지새운다고 한다.

'우리도 집다운 집에서 살고싶다'  ⓒ투데이신문
'우리도 집다운 집에서 살고싶다'  ⓒ투데이신문

박씨는 “곧 이 건물이 철거될 거라는 소문이 입주민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며 “그래서 이 건물을 이렇게 방치해두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혹여나 이 건물이 철거된다면, 미리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며 “이곳에서 지금 10년째 살고 있는데, 혹여나 철거라도 된다면 우리도 대비를 세워야 할 것 아닌가. 그러니 부디 정부나, 관련 사회단체에서 철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거동이 불편한 강씨가 방안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거동이 불편한 강씨가 방안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홀로 남은 쪽방촌 독거노인, 고독사가 두렵다

골다공증으로 움직임이 불편한 강찬호(가명·72)씨는 이곳에 함께 사는 이웃이 전부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탓에 이웃과 의사소통이 수월하지는 않지만, 대다수의 시간을 홀로 이 방안에서 보내기는 탓에 큰 무리는 없다. 이미 수십년을 이 곳에서 살아왔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인 그는 가장 개선됐으면 하는 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크게 바라는게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다만 그가 두려운 것은 바로 ‘고독사’다. 주위 사람들과 큰 왕래가 없는 탓에 혹여나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대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강씨는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기 위해 행동 하나하나 조심한다. 좁은 그의 잠자리 머리맡에는 항상 약이 놓여져 있다. 이가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예방책이다.

실제 쪽방촌 주민들의 고독사 문제는 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 6월 서울시가 발표한 ‘주거취약지역 중장년 이상 1인 가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쪽방이나 고시원·여관 등에 혼자 사는 50대 이상 6만677명 중 3만6265명(59.8%)이 고독사 위험군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서울시내 주거취약지역에 사는 중장년 이상 1인 가구원 총 14만4398명 중 설문에 응한 6만677명(42%)에 대한 조사 결과다.

강씨 역시 고독사의 위험군에 속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정부의 관리를 받는다고 느끼지는 못한다고 전했다.

강씨는 “이 곳에 살면서 크게 주위의 도움을 받고있진 않다”며 “여름, 겨울만 되면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크게 필요한 것이 없다.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답했다.

다만 강씨는 “최근 이 곳이 철거된 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이곳이 철거가 확실히 되는 것인지, 만약 철거가 된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디로 옮겨지는지, 또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듣고 싶다. 이 대답이 내가 필요한 것”이라고 호소했다.

쪽방촌 복도 전경 ⓒ투데이신문
쪽방촌 복도 전경 ⓒ투데이신문

올겨울 최강한파가 서울에 상륙했다. 14일 서울 아침 기온이 하루 새 5~15도나 하락해 영하 15도에서 영하 1도 사이를 머물렀다. 칼바람이 온몸을 할퀴는 날씨 탓에 아늑해야할 방안에서도 쪽방촌 주민들의 1평 남짓한 공간에서는 뼈가 시린 듯한 냉기가 맴돌았다. 웃옷을 겹겹이 껴입어도 속수무책. 이들은 이런 겨울을 좁디좁은 이 곳에서 단 하루도 아닌, 수 십년을 보내왔다.

쪽방촌 주민들의 겨울나기는 매년 겨울 마치 하나의 연례행사처럼 보도가 쏟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열악한 쪽방촌 주민들의 열악한 삶은 늘 그렇듯 지속된다. 어김없이 추운 겨울이 또 다시 쪽방촌 주민들의 삶 속에 찾아왔다. 이는 쪽방촌 주민이 전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라는 말의 속뜻을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알아차려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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