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석유 기조 아래 첨단산업 집중 투자
인프라·ICT·콘텐츠 등 협력수요 기대
고소득 기반 안정적 소비시장 ‘강점’
보호무역 강화…호혜적 관계 구축해야

지금까지 중국은 생산 기지로든, 소비 시장으로든 세계 최대의 시장으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입지에 변화가 생기는 모습이다. 콘텐츠 분야의 경우 소위 ‘한한령’과 중국 정부의 규제로 인해 시장의 문이 굳게 닫힌 지 오래다. 여기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따른 생산인력 이탈과 경제성장 둔화, 미국과의 분쟁 등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IT업계를 중심으로 ‘탈중국’ 기조가 관측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 개발도상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불안정한 거시경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잠재력이 있는 시장으로 평가되는 만큼, 이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아랍 국가들은 오일머니를 앞세워 해외 기업들에게 손짓하는 형국이다. 

<투데이신문>은 최근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진출을 꾀하거나 실제로 발을 내딛고 있는 글로벌 3개 권역(동남아, 인도, 중동)을 분석, 기업들의 현지 안착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아라비아 반도 국가 지도 ⓒ게티이미지뱅크
아라비아 반도 국가 지도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변동휘 기자】 아랍 지역의 전통적인 핵심 산업은 역시 석유였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필수적인 자원인 만큼, 아랍 국가들은 이를 무기로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국제유가와 경제가 강하게 연동된다는 리스크로 작용하기도 했다. 

최근 아랍 주요 국가들은 ‘산업 대전환’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오일머니’를 앞세워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인프라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한편, 국가 경제 기반을 석유에서 ICT(정보통신 기술) 등 디지털 산업으로 옮겨오겠다는 장기적 목표를 설정하고, 해외기업 유치 등 국가 주도로 이를 실행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이들은 한국 기업들에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건설 등 인프라와 ICT, 콘텐츠 등 자국 수요가 높은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도 아랍 시장은 높은 소득과 젊은 인구 등 안정적인 소비시장이 형성돼 있는 국가라 진출 매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이처럼 한국과 중동 지역은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어,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다양한 협력 의제들이 논의되고 있으며, 보호무역 정책에 따른 규제 등 일부 진입장벽들이 있지만 보다 세심한 비즈니스를 통해 극복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주도 국가개혁 가속

MENA(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주요 비즈니스 거점 국가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이 거론된다. 지정학적 측면은 물론 비즈니스 환경 측면에서도 최적의 지점이라는 평가다.

이 같은 환경이 조성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정책’이 꼽힌다. 세 국가 모두 정부 주도 하에 중장기적 국가 발전 계획을 수립 및 추진해 나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의 경우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은 이후 ‘비전 2030’을 선포, 석유 산업 의존도를 낮추고 국가 기반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한 신산업 전략으로 총 1조리얄(약 347조76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발굴할 예정이며, 기존에 발표된 초거대 도시건설 프로젝트 ‘네옴시티’를 비롯해 홍해 연안 복합 관광단지 조성 등 대규모 인프라 구축 계획도 수립했다.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공식 오찬을 갖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공식 오찬을 갖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카타르도 ‘국가비전 2030’을 통해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모색 중이다. 인적자원, 사회, 경제, 환경 등 4개의 중점 추진 분야와 방향성을 제시한 가운데, 5년 단위로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해 세부 전략을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지난 2018년부터 2차 국가발전전략을 진행해온 상태다. UAE도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해외 투자유치를 확대하기 위한 투자제도 개편 및 스타트업 집중 육성에도 나서고 있다.

특히 ICT와 콘텐츠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다. 전자정부 등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스마트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사우디의 경우 ‘비전 2030’의 주요 추진 분야로 ICT가 거론됐으며, 네옴시티 역시 스마트 시티로 건립되는 가운데 네이버 등 우리나라 기술 기업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UAE는 가상화폐, 메타버스 등 디지털 경제 분야에서 해외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으며, 우주와 AI, 메타버스 등 첨단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사우디 국부펀드(PIF)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일렉트로닉 아츠(EA), 테이크투 인터랙티브 등 글로벌 유명 게임사에 투자를 진행한 바 있으며, 넥슨과 엔씨소프트 등 국내 게임사들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기업에도 이들의 자금이 들어와 있다. 전체 인구 중 절반이 30대 이하인 젊은 국가이고 인터넷 보급률도 높지만, 종교와 자연환경 요인으로 놀이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던 점을 보완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게임과 e스포츠가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이며, 빈 살만 왕세자 역시 게임 애호가로 잘 알려져 있다는 점도 투자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한류’에 꽂힌 젊은 소비자들

국내 기업 입장에서도 이 국가들은 가능하면 잡고 싶은 ‘큰손’ 고객들이다. 특히 IT 및 콘텐츠 분야에서는 2010년대 후부터 중동 시장에 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소득수준이 높고 젊은 인구가 많아 관련 소비 자체가 확대되는 추세라는 점에서다. 

지난해 IMF 기준 사우디의 1인당 명목 GDP는 2만7941달러로 한국(3만3592달러)보다 다소 낮은 수치를 보였으나, UAE는 4만7793달러, 카타르는 8만2887달러를 기록했다. 카타르의 경우 한국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특히 사우디는 전체 인구(3500만명)의 50%가 30대 이하 젊은 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문화개방 정책으로 게임과 음악, 드라마, 영화, 공연 등 해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8년 35년만에 상업영화관이 개장했으며, 외국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복장 규정도 완화됐다. 

UAE의 경우 특정 세대로 대표되지 않는 다양화된 사회로, 고소득층 전문직과 저소득층 서비스업 종사자들로 분화돼 있어 소비 패턴도 프리미엄부터 중저가까지 폭넓게 분포돼 있다. 카타르도 인구의 90%가 외국인이며, 주로 저임금 국가 출신이라 자국민과의 소득 격차가 높아 다변화된 소비 패턴을 보인다. 

지난해 11월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지난해 11월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이들 국가 모두 한류 문화에 우호적이라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한류에 대한 관심 확대가 우리 기업들의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사우디의 경우 1970년대 각종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에 대해 근면성실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었으며, 국내 기업들이 활발히 진출함에 따라 선진국 수준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또한 지난 2019년 슈퍼주니어와 방탄소년단이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등 한류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UAE의 경우 지난 2008년 한국과 문화협력 협정을 체결한 이후로 대학 간 교류 확대, 한류 공연예술 소개 등 다양한 노력들이 이어져왔다. 2019년 모모랜드의 단독 공연과 한류 박람회, 한국음악의 밤 등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됐으며, 지난해 두바이 엑스포에서는 ‘한국의 날’이 공식 행사로 진행돼 한국 전통무용과 태권도 공연, K-POP 아티스트 6팀의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 홍보가 이뤄졌다. 카타르에서도 10~30대들이 SNS 채널을 통해 한국 드라마와 K-POP, 뷰티 등 다양한 한류 문화를 접하고 있으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카타르 영화관에서 상업용으로 공식 상영됐다. 

K-게임도 많이 소비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2 해외 시장의 한국 게임 이용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동 지역의 1인당 평균 국산 게임 이용시간은 주중 2시간 39분, 주말 3시간 38분으로 타 지역 대비 높은 수준을 보였다. 지출금액 역시 47.9달러로 50.7달러를 기록한 동아시아에 이어 2번째로 높았으며, 특히 카타르는 1인당 월평균 76.21달러를 국산 게임에 지출, 조사 지역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중동 지역 지출 2위인 UAE(68.98달러)도 중국(60.77달러)과 미국(55.51달러)보다 높았다. 

넘어야 할 과제는 ‘제도’

최근 중동 주요국들은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해 각종 유인가를 제공하는 등 비즈니스 환경 개선에 한창이다. 사우디의 경우 투자 절차를 완화하고 대형 프로젝트를 재개하는 등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며, 빈 살만 왕세자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을 방문하며 이를 주도하고 있다. UAE는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 확대를 통해 비석유 분야 교역을 늘리고 있으며, 카타르도 외국인 투자법 개정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 소유 한계를 최대 100%까지 높이는 한편 경제자유구역을 조성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화 정책으로 대표되는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사우디의 경우 자국민 의무 고용비율을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하고 있으며, 자국 내 산업기반 보호를 위해 수입관세 인상과 반덤핑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UAE도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일부 품목에 대해 수입 규제 등 비관세 장벽을 강화하고 있으며, 제조업 강화를 위해 자국 진출법인에 대해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자국산 우대정책을 펼치고 있다. 

카타르의 경우 개정된 외국인 투자법에서 금융 등 일부 분야는 제외됐으며, 49% 이상의 지분을 희망할 시 정부의 심사와 승인을 거쳐야 한다. 또한 유한책임회사는 카타르인 스폰서가 반드시 필요하며,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은 49%로 제한돼 분쟁 상황 시 주도권을 갖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중동 국가들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국내 기업들의 성공적인 현지 진출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부터 상호 호혜적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왼쪽)이 UAE 국방부를 방문해 UAE 모하메드 아흐메드 알 보와르디 국방특임장관과 한-UAE 국방협력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장면. [사진 제공=뉴시스]
중동 국가들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국내 기업들의 성공적인 현지 진출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부터 상호 호혜적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왼쪽)이 UAE 국방부를 방문해 UAE 모하메드 아흐메드 알 보와르디 국방특임장관과 한-UAE 국방협력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장면. [사진 제공=뉴시스]

때문에 각국 정부의 산업 정책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기술 및 인적교류 등 고부가가치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각국 정부의 산업 혁신 프로젝트 수주 등을 통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우디의 경우 ‘비전 2030’ 협력사업을 통한 진출을 추진하고, 협업을 통한 대기업·중소기업 동반 진출을 추진하는 것이 주요 전략으로 거론된다. UAE는 국가발전 혁신 전략에 대응해 에너지, ICT, 제조업 등에서 수요를 찾는 한편, 젊은 소비층의 수요에 부응하는 유망 소비재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카타르 역시 정부 발주 프로젝트 및 기자재 공급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며, 구매력 높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고급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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