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 엄마로 구성된 극단의 네 번째 연극 ‘장기자랑’
연극 ‘장기자랑’ 준비 과정 꾸밈없이 담은 유쾌한 다큐멘터리
연극 치료로 슬픔을 승화시키며 예술의 필요성 일깨워 주기도

연극 '장기자랑'의 한 장면. [사진제공=영화사진진]
연극 '장기자랑'의 한 장면. [사진제공=영화사진진]

【투데이신문 이주영 기자】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예술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도, 본업인 마냥 몰입하는 사람도 예술의 존재 이유에 대해선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재미나 감동, 아름다움을 그 이유를 들기에는 때때로 예술은 우리를 소외시키고 절망케 하며 그래서 아프게 한다. 이해되지 않는 작품 앞에서 갸우뚱거리다가 이내 시선을 돌리게 하고, 천재성에 가려진 대다수 범인의 창작을 볼품없게 만들며, 다채로운 감상을 주는 탓에 현실의 잿빛은 짙어지도록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그 모든 명암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인류를 아우르며 질긴 명줄을 이어나가고 있다. 오늘도 우리 곁에서 영화와 연극으로, 그림과 음악으로, 몸짓과 눈빛으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그 숨결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소외와 절망을, 아픔을 경험해야 한다. 그러한 고통이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술의 명암은 삶의 명암과 닮아있다. 그렇게 예술은 현재를 비추는 창이 되어 우리 인생을 관찰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지금껏 존재했던 이유다.

연극 '장기자랑'이 끝나고 관객과 마주앉은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단원들. [사진제공=영화사진진]
연극 '장기자랑'이 끝나고 관객과 마주앉은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단원들. [사진제공=영화사진진]

영화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엄마들이 동명의 연극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기존에 세월호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유가족을 슬픔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된 모습으로 다뤘다. 물론 그러한 감정이 참사 이후 그들 삶 전반을 지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9년의 시간은 그들의 고통을 다른 모양으로 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2015년 10월, 코미디 연극을 연출했던 김태현 감독은 세월호 피해자 엄마들을 위한 연극 수업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심리 치유를 위한 희곡 읽기 모임으로 시작된 수업은 김 감독의 끈질긴 설득 끝에 엄마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결성으로 이어졌다. ‘그와 그녀의 옷장’,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장기자랑’, ‘기억여행’까지 총 네 작품으로 200회 이상의 전국 공연을 마친 노란리본 극단은 오는 4월 다섯 번째 작품 ‘연속,극’을 연극제에 올리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전형적인 유가족 이미지를 벗어던진 <장기자랑> 속 엄마들은 중요한 배역을 맡기 위해 경쟁심을 내비치기도 하고, 연극의 재미를 알아가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애통함을 마음 한구석에 지닌 채 여러 관계와 상황을 맞닥뜨리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 피해자의 어두운 단면만을 주목했다는 생각에 차츰 머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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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사진제공=영화사진진]

살림살이만 하던 평범한 주부였다는 일곱 엄마는 참사 이후 더 깊고 넓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격렬한 분노, 살아갈 의지를 상실한 공허감, 일상에서 문득문득 차오르는 침울함,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과 나누는 연대감, 불의와 싸울 용기, 좌절 속에 피어오르는 연민, 먼저 보낸 자식과 닮은 배역을 연기하며 느끼는 특별한 그리움... 그렇게 그들은 연극배우로서 전국 각지를 누비게 됐다.

어둠이 빛을 있게 하고, 결핍이 충만을 만들고, 상처가 치유를 불러온다. <장기자랑> 속 엄마들은 삶의 좌절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삶의 고통은 문이다. 그 문을 열고 나가면 그곳엔 더 큰 슬픔도, 이제껏 알지 못했던 기쁨도 있다. 너무나 아팠고 힘들었고 그래서 나은 미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더 넓어진 세상이 있다. 아파야 한 뼘 더 크듯 그들의 성장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담은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은 현대에 와서 예술이 갖는 의의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성대한 내용의 연극도 아니고 엄청난 실력의 배우들도 아닌 어딘가 생활감이 묻어나는 이들이지만 무대 위에서 그들의 고양된 표정과 힘 있는 대사를 들으면 예술작품에서 전해지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이처럼 친근한 엄마들이 보여주는 변화가 예술이 줄 수 있는 가장 신비로운 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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