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사용설명서’, ‘상의원’ 연출한 이원석 감독 신작 개봉
이선균&이하늬&공명, 호화급 출연진이 선보이는 코믹 연기
가스라이팅에 맞서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고군분투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전개는 장점이자 단점... 호불호 갈려

영화 <킬링 로맨스> 속 자신의 자화상 앞에 선 '조나단(이선균 분)'의 모습.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킬링 로맨스> 속 자신의 자화상 앞에 선 '조나단(이선균 분)'의 모습.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투데이신문 이주영 기자】 죽이고 싶은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존 나(John Na)', 내 남편이다.

청량음료 ‘랄라텐’ 광고로 단숨에 스타가 된 배우 ‘여래(이하늬 분)’는 SF 영화 한 편으로 발연기 타이틀을 얻고 커리어가 수직 하강하는 위기를 맞는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남태평양 ‘콸라’섬으로 간 그는 그곳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사업가 ‘조나단 나(이선균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7년의 공백을 뒤로하고 조나단과 한국으로 돌아온 여래. 하지만 왠지 그의 무거운 표정이 심상치 않다.

<킬링 로맨스>는 자신의 사업을 위해 아내의 명성과 자존감을 착취하는 조나단에 맞서 싸우는 여래와 그의 팬 군단을 다룬 영화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만든 웨스 앤더슨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통통 튀는 색감과 영상미, 과장된 표정과 몸짓, 적재적소에 프레임 안으로 끼어드는 키치한 문구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인물 간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영화 &lt;킬링 로맨스&gt; 속 '여래(이하늬 분)'의 모습.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br>
영화 <킬링 로맨스> 속 '여래(이하늬 분)'의 모습.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매력 넘치는 캐릭터 설정 역시 영화 전체의 독특한 이미지와 부합된다. 멋들어진 가짜 콧수염을 붙이고 화려한 패턴의 옷을 즐겨 입는 조나단이 자신의 자화상 앞에서 뻐기는 모습은 그의 고약한 심성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영화에 드러난 아내를 향한 폭력은 여래를 구석에 몰아넣고 귤을 조준해 던지는 장면뿐이지만, 관객은 앞의 개연성으로 인해 그 밖의 폭력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한없이 자극적으로 그려질 수 있는 가정 폭력을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재치 있게 묘사하는 연출에서 이 영화가 그 어떤 관객도 해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뚝심이 엿보인다.

여래의 첫 번째 조력자이자 그의 집 맞은편에 사는 ‘범우(공명 분)’가 뿜어내는 긍정적인 인간성은 영화의 주제의식을 관통한다. 서울대 집안에서 태어나 4수생이라는 최하층 신분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도 여래를 향한 열정적인 팬심은 잃지 않는 의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죽일 수는 없다며 온몸을 던져 조나단을 살려내는 도덕성, 동료와 힘을 합쳐 불의에 맞서 싸우는 연대의식과 용기는 더벅머리조차 가릴 수 없는 순수한 인간성을 표상하는 듯하다.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는 권선징악 결말도 이 영화에서는 문제 되지 않는다. B급 코드와 병맛 유머로 무장한 장르에서 보여줄 수 있는 ‘무엇이든 가능한 상상력’만 있다면 피가 낭자하는 잔혹한 처단 없이도 악당을 무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lt;킬링 로맨스&gt; 주인공 '여래(이하늬 분)'를 응원하는 팬덤 '여래 바래'와 '범우(공명 분)'의 모습.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킬링 로맨스> 주인공 '여래(이하늬 분)'를 응원하는 팬덤 '여래 바래'와 '범우(공명 분)'의 모습.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팬덤 문화, 산처럼 쌓인 귤, 찜질방 열가마와 같은 한국스러운 요소는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다만 무작정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 양상과 만나 정제되지 않았다는 감상을 남긴다.

또한 ‘가스라이팅‘, ‘주체적 삶‘과 같은 묵직한 주제의식을 지니고도 끝없이 얕아지기만 하는 깊이는 이 영화가 유머 속 진중함을 갖춘 젠틀한 사람이 아닌 마냥 돋보이고 싶어하는 철없는 아이의 모습을 닮았다는 인상을 준다. 독특한 이미지가 균형 잡힌 이야기 흐름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와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가스라이팅 하는 남편으로부터 주체적 삶을 획득하려는 여래와 그를 응원하는 팬덤 ‘여래 바래’가 펼치는 달콤살벌한 맞대결을 다룬 영화 <킬링 로맨스>는 오는 1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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