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상사를 둔 종신 계약 비서 이야기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청불 스플래터 영화
청년세대에 유행하는 ‘조용한 사직’ 떠올라
결말부 교훈은 훈훈하지만 다소 뻔하기도 해

영화 <렌필드> 스틸컷.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렌필드> 스틸컷.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투데이신문 이주영 기자】한낮의 텁텁한 기온에 겉옷을 슬며시 벗어야 할 계절이 오면 영화관에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가 있다. 바로 팔뚝의 잔털을 쭈뼛쭈뼛 세우는 괴물들이다. 그중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유명한 괴물은 드라큘라 백작일 것이다. 우아한 몸짓, 창백한 피부, 매혹적인 눈빛과 고귀한 신분은 드라큘라와 마주한 누구라도 일순 빠져버리게 한다. 이러한 매력 뒤에 은밀하게 감춰진 정체와 잔혹한 살해 수법은 그가 속한 세계를 관음 하는 관객까지도 유혹해 내고 만다.

드라큘라 백작은 일반 뱀파이어와 다르게 시초부터 높은 신분인지라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하인을 거느렸다고 여겨진다. 외모도, 능력도, 불멸의 신체까지도 완벽한 그에게 자신과 동등한 존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렌필드>는 드라큘라의 안하무인 한 속성을 극대화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자신의 우월함에 취해 비서를 가스라이팅 하는 악덕 상사의 이미지를 부여한 것이다.

영화 &lt;렌필드&gt; 스틸컷.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br>
영화 <렌필드> 스틸컷.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속 ‘렌필드(니콜라스 홀트 분)’는 상사 ‘드라큘라(니콜라스 케이지 분)’에게 종신 고용돼 하루 종일, 말 그대로 풀타임(full-time) 근무를 뛰고 원치 않는 업무까지 떠맡는다. 게다가 상관은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여서 렌필드의 자존감을 착취하는 일도 꺼리지 않는다. 끝없는 감정노동과 업무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모습은 마치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열풍이 불었던 현재 청년 세대의 속내를 보여주는 듯하다.

실제로 퇴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시간에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고 그 이상의 근무와 열정은 거부하는 노동 방식을 뜻하는 이 신조어는 회사가 더 이상 개인의 자아실현과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청년 세대의 비관적 인식을 드러낸다. 렌필드의 입장도 비슷하다. 적당히 나쁜 놈을 골라 바치는 방식으로 나름의 조용한 사직을 실천하려 하지만, 순결하지 않다고 역정을 내는 상관의 반응에 ‘이렇게 헌신해서는 헌신짝 밖에 더 되랴’라는 생각으로 맹렬히 맞서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영화 &lt;렌필드&gt; 스틸컷.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br>
영화 <렌필드> 스틸컷.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영화가 소구하는 사회적 배경은 차치하고서도 <렌필드>의 매력은 분명하다. 스플래터 무비로써 얌전빼지 않고 화끈한 액션을 선보이고, ‘벌레를 먹어 슈퍼 파워를 얻는다’는 설정으로 괴상함을 더한다. 또한 난무하는 피와 살점 속에서도 B급 유머를 이어가며 공포 액션 코미디 영화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의 깨달음 한 번으로 거창한 메시지까지 전달하려는 욕심은 <렌필드>에서도 여전했다. 보스 앞에만 서면 작아지던 비서가 자신의 원래 힘(아마도 자존감이 아닐까)을 되찾으면서 불멸의 육체를 가진 드라큘라를 압도하는 승리를 거둔다는 결말은 교훈까지 챙기려는 장르 영화의 경직성을 그대로 답습한다.

무수히 변주된 드라큘라 이미지에 새로움을 더하는 영화 <렌필드>는 오는 19일 개봉한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