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넷플릭스 드라마 ‘택배기사’ 속 ‘류석’역 배우 송승헌

악당 캐릭터가 흥망 좌우하는 디스토피아 장르물에 과감히 도전
연기 욕심 드러낸 송승헌, “<인간중독> 이후 배역 가리지 않아“
가을동화 요약본 보고 눈물 흘렸다는 송승헌, 순수한 인간미 보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택배기사‘에서 ‘류석‘역을 맡은 송승헌 배우. [사진제공=딜라이트]<br>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택배기사‘에서 ‘류석‘역을 맡은 송승헌 배우. [사진제공=딜라이트]

【투데이신문 이주영 기자】 그 시절 드라마 <가을동화>를 보지 않아도 다 안다는 이름, 송승헌(47) 배우를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맑은 햇빛이 드는 창 아래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세월이 흘러도 때묻지 않는 순수함이 느껴졌다.

혜성 충돌 이후 사막화된 한국을 배경으로 산소를 통제하는 ‘천명그룹’과 이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택배기사’에서 ‘류석’을 연기한 송승헌과 함께 그의 27년 연기 인생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장르물 중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 혹은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 악당 캐릭터의 비중이 커진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처럼 세계가 멸망한 이후 어지러운 잔해 속에서 다른 생존자를 착취하는 악당의 압제를 주인공이 뒤엎는다거나, <블레이드 러너>처럼 불가침 한 이권을 잡은 사회 지도층이 구성원의 삶 전반을 통제하는 부조리한 질서를 주인공이 타파하는 전개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악역의 힘과 독단성, 악질적인 면이 부각될수록 주인공의 반격도 통쾌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대립하는 두 인물은 비슷한 지분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택배기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류석에 대한 묘사가 중요하다. 송승헌은 기획 단계에서 조의석 감독에게 “대본이 어떻게 나오든 괜찮으니 어떤 역할이든 맡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조 감독은 송승헌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악역을 맡기면서 그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했다.

드라마 상에서 생략됐지만 처음 각색된 시나리오에는 류석에 대한 인물 설정이 자세히 기술돼 있었다. 송승헌은 “류석의 아버지인 류 회장과 ‘5-8’의 정신적 지주인 ‘뚝딱할배’는 원래 친구였다. 두 사람은 행성 충돌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황폐화된 세상에 류석이 태어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재성을 지닌 아버지조차 막지 못한 종말을 유년 시절부터 겪어온 류석이 느꼈을 무력감과 패배감을 추측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류석에 대한 연민이 있다고 고백한 송승헌은 “치명적인 병에 걸린 류석이 살고 싶다는 욕망에 혈액을 투석하고 치료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모습에서 애처로움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린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고민하는 송승헌의 모습에서 연기에 대한 진중한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택배기사‘에서 ‘류석‘역을 맡은 송승헌 배우. [사진제공=딜라이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택배기사‘에서 ‘류석‘역을 맡은 송승헌 배우. [사진제공=딜라이트]

송승헌이 배우로 처음 활동하던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미디어 속 악역과 배우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악역을 맡은 배우를 길거리에서 만나면 사람들이 욕을 하거나 충고를 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라 말하며, “덕분에 악역이나 입체적인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부담이 적어졌다”라고 말했다.

특히나 그는 2014년 작 <인간중독> 촬영 때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에 임했다고 전했다. 배우로서의 성장에 대해 그는 “어릴 때는 ‘악역을 굳이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이 배우로서의 자신을 가두는 틀이었다고 깨달은 이후로 정의로운 역할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라고 답했다.

송승헌은 촬영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해 동료 배우에게 농담도 건네고, 셀카도 자주 찍자고 요청한다고 한다. 자신의 심리적 변화에 대해 “이제 현장이 재밌다. 연기가 편안해지니 자연스레 촬영 현장도 즐길 줄 알게 된 것 같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베테랑 배우의 연륜이 묻어나왔다.

실제 성격이 어떤지 묻자 “류석 보다는 <미스 와이프> 속 허당에 팔불출 캐릭터인 ‘성환’과 비슷하다. 얼마 전 유튜브로 ‘가을동화’ 요약 편집본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라며 자신의 작업물을 향한 순수한 애정을 드러냈다. 울었다는 사실에 쑥쓰러움을 표하는 그에게서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송승헌은 차기작 <히든 페이스>에서 내밀한 심리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연기에 대해 원숙한 신념을 쌓는 그의 성장을 보니 차기작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도전적인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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