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경기민요 전승자 문화재청·무형문화재위원회 규탄 집회

무형문화재 인정 조사서 묵계월·이은주 유파 제외
형평성 논란 불거져…거리로 나온 경기민요 명창들
‘용역 보고서 작성’ 김영운 위원장 적법성 문제도
“유파별로 특징 달라…문화재청, 계보 인정해야”

ⓒ투데이신문
22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앞에서 경기민요의 유파(계보)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재청과 무형문화재위원회를 규탄하는 집회 모습.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기민요 명창들이 공연 무대가 아닌 길거리에 나섰다. 바로 자신들이 오랜 기간 동안 불러온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인 ‘국악’의 대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경기민요 묵계월 유파의 김영임 명창, 이은주 유파의 김장순 명창과 경기민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22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앞에서 경기민요의 유파(계보)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재청과 무형문화재위원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이날 이들은 ‘경기민요 지정을 보류하라’, ‘유파를 부정하는 문화재청을 규탄한다’ 등의 피켓을 든 채 거리로 나섰다.

전승자와 비대위는 “유파를 부정하고 후계전승의 계보마저 사라지는 무원칙한 문화재 정책의 희생양으로 묵계월, 이은주라는 국보급 명창이 역사 속으로 생매장당하는 치욕스러운 결정에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경기민요 유파 부정은 국악 역사에 대한 부정”이라며 “또 묵계월, 이은주 유파의 국보급 명창을 역사 속에 생매장하는 문화 재앙이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무대가 아닌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은 지난달 문화재청이 ‘2021~2023년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조사’ 결과에서 비롯됐다.

22일 집회에 참여한&nbsp;경기민요 전승자 김영임(묵계월 유파) 명창이 문화재청의 보유자 인정 조사에 대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nbsp;ⓒ투데이신문<br>
22일 집회에 참여한 경기민요 전승자 김영임(묵계월 유파) 명창이 문화재청의 보유자 인정 조사에 대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비대위에 따르면 문화재 관리국은 지난 1975년 경기민요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묵계월(이경옥), 이은주(이윤란), 안비취(안복식)를 초대 경기민요 보유자로 인정했다. 그 후 안비취 유파는 유산가·제비가·소춘향가·십장가를, 묵계월 유파는 적벽가·선유가·출인가·방물가를, 이은주 유파는 집장가·평양가·형장가·달거리를 각각 전승하며 경기민요 12잡가 중 4곡씩 나눠 보유자로 인정해 왔다.

하지만 이번 인정조사에서 김장순(이은주 유파)과 김영임(묵계월 유파) 명창이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최종 후보에서 제외한 채 안비취 유파의 김혜란·이호연 명창만을 인정 예고했다.

이에 경기민요 전승자들은 형평성을 지적하며 “1975년 묵계월·이은주·안비취가 경기민요 보유자로 인정된 것은 이들의 소리 속이 다르다는 점을 중시했기 때문이다”며 “문화재청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한 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대를 이어 전승되던 경기민요의 대가 끊길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이어 “문화재위원회에서 지정심의가 의결되면 경기민요는 안비취 유파로 통일되고 묵계월·이은주 유파는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수천여명의 경기민요 전승자와 수만여명의 일반 전승자의 운명이 달렸다”고 말했다.

22일 집회에 참여한&nbsp;경기민요 전승자 김장순(이은주 유파) 명창이 문화재청의 보유자 인정 조사에 대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nbsp;ⓒ투데이신문
22일 집회에 참여한 경기민요 전승자 김장순(이은주 유파) 명창이 문화재청의 보유자 인정 조사에 대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또한 이들은 제4대 무형문화재위원장인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이 심사위원으로서 적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009년 사단법인 한국국악학회 명의로 ‘중요무형문화재 개인종목 음악분야 전승활성화 학술연구용역 결과보고서’를 작성했는데, 해당 보고서는 이번 문화재청의 조사에 관련 연구용역 보고서로 사용됐다.

이에 이들은 관련 법률을 근거로 김 위원장이 심의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5조 3항 ‘위원이 해당 안건에 증언, 진술, 자문, 연구, 용역, 또는 감정을 한 경우’에 따라 이번 심의와 의결에서 김 위원장이 제척 돼야 하는데, 되려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인정예고에 관여했다는 것이 전승자와 비대위 측의 설명이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작성한 용역보고서에는 묵계월 이은주의 전승계보도 바꿔 기재하는 것은 물론 이은주 보유자의 스승 이름도 잘못 기재하고 있다”며 “더불어 경로가 다른 김장순 전승교육사의 사승 경로를 기재하지 않는 등 많은 오류를 가진 보고서”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는 곧 현 무형문화재위원회 김영운 위원장과 최헌 위원은 본 용역보고서를 집필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회피나 기피 절차 없이 무형문화재법 시행령 5조를 위반하며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 심의에 참여해 결정을 주도해 심의를 의결했다”며 “이는 크나큰 절차적 하자로, 본 심의는 당연 무효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문화재청은 경기민요 관련자 등이 제출한 1만1000개 이상의 탄원서와 수많은 이의제기를 받고도 이날 무형문화재 위원회 회의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문화재청과 무형문화재위원회에 △경기민요 보유자 지정 보류 △무형문화재 관련 법률 재정비 △전승자들에 대한 보호조치 등을 촉구하고 있다.  

경기민요 전승자 김장순(이은주 유파) 명창과의 일문일답

Q. 최근 경기민요 보유자 선정 과정에서의 불공정성에 대해 규탄하는 집회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심경이 어떤가.

고통의 나락에 떨어져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대를 이어온 스승과 주변 관계자들이 부정당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허망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처참한 기분이다.

Q. 오늘(22일) 2시에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인정 심의가 진행되는데,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추후 행보는 무엇인가.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다. 이와 함께 최근 계속 서울 도심에서 집회 등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이를 더 계획하고 진행해 문화재청이 얼마나 엉터리행정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알릴 방침이다.

Q. 보유자로 인정된 안비취 유파 측과 대화는 해봤나.

대화해 본 적 없다. 안비취 유파 측은 이미 인정이 됐으니까 우리에게 별 다른 대화를 요청하지 않는 상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Q. 문화재청이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경기민요 관계자들에 대한 의견수렴 등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나.

약 1년 반쯤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을 위해 서류 제출을 요구한 적은 있다. 그 이후 잠잠하더니 이같은 결과를 통보했다. 현재 문화재청 측은 유파를 통합했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관련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다. 엄연히 유파 간의 소리, 장단, 시김새 등이 다 다르다. 이런 소중한 문화재를 통합한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국가의 손실이다.

Q. 마지막으로 이번 사연을 잘 모르는 국민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경기민요를 전승받고 명창을 길러내는 데에는 몇십 년이 걸리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지정은 문화재의 맥을 끊는 행위나 다름없다. 문화재청이라는 곳은 없던 문화재도 발굴해서 잘 발전시키고 전승시키도록 돕는 기관이다. 그들의 본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깊은 역사가 있는 문화재의 맥과 대를 끊는 등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이를 많은 국민들이 알고 정상으로 돌릴 수 있게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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