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치기 정치에 멍드는 여성·젊은 세대
실업급여 공청회에서 ‘시럽급여’ 용어 나와
당정, 실업급여 하한액 축소 내지 폐지로
민심과 당심의 괴리, 좁히는 노력 필요해 보여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제8차 회의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제8차 회의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한정욱 기자】 국민의힘에서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로 규정한 것을 두고 파장이 장기화되는 분위기다. 취지는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개혁하겠다는 것이지만 ‘여성·젊은 세대’를 갈라치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지난 대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걸어 여성과 이대남을 갈라치기 해서 나름 쏠쏠한 재미를 봤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번은 사안이 다르다는 평가다. 그야말로 젊은 세대 그리고 여성층에서 단단히 ‘화’가 났다.

지난 12일 국민의힘에서 주최한 국회 공청회에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산하 고용센터에서 일하는 공무원의 발언은 장탄식을 나오게 만들었다. “퇴직하면 퇴사처리가 되기 전에 실업급여 신청하러 센터를 방문합니다. 웃으면서. 웃으면서 방문을 하세요. 어두운 얼굴로 오시는 분은 드무세요. 그런 분들은 장기간 근무하고, 갑자기 실업을 당해서 저희 고용보험이 생긴 목적에 맞는 그런 남자분들 같은 경우, 정말 장기적으로 갑자기. 그런 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시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옵니다. 그리고 실업급여 받는 도중 해외여행 가요”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이 나올 때만 해도 정치권 안팎에서는 ‘일개 공무원’의 발언이라면서 애써 침착한 척했다. 하지만 곧바로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시럽급여(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라고 표현했다. 급기야 이날 저녁 산학연 포럼 초청 강연에서 해당 공무원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여성’이라는 단어를 뺐다. 그러면서 ‘명품 선글라스를 끼고 해외여행을 다녀온다고 한다’는 발언을 했다. 가뜩이나 해당 공무원의 발언에 상당한 분노를 느끼고 있던 여성과 젊은 세대에 박 의장의 발언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실제로 온라인에서는 가장 핫한 이슈가 됐다. 실업급여를 꺼낸 것에 대해 여당 내부에서도 실책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준석 전 대표는 실업급여를 받아서 소고기를 사먹든, 명품을 사든 그건 개인의 자유라면서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당정의 결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실업급여 하한액을 조정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에서는 최저임금 80%를 보장하고 있다. 실업급여는 평균임금의 60%로 산출된다. 하지만 평균임금의 60%로 산출한 금액이 최저임금의 80%로 계산되는 실업급여 하한선에 미치지 못하면 ’최저구직급여액‘(실업급여 하한액)이 지급된다. 이런 이유로 실업급여가 구직자의 취업 의욕을 꺾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는 현재 실업급여 하한액(지난해 기준 월 184만7천40원)이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 소득(월 179만9천800원)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작년 실업급여 수급자 약 163만명 중 28% 가량인 약 45만명은 실업급여가 세후 소득보다 많았다. 실업급여 수급기간 중 재취업한 비율은 2017년부터 20%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울러 고용보험기금의 건전성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7년 10조 2000억원이었던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2022년엔 적자 상태다. 따라서 실업급여의 하한액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논리를 들어보면 설득력은 충분하다. 문제는 접근 방법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성별과 세대 갈리치기를 통해 그 명분을 얻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흡사 수능 킬러문항 논란이 불거졌을 때 일타강사를 비난하고 나선 것과 비슷하다. 일타강사를 갈라치기 해서 사교육을 해결하겠다는 발상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실업급여를 단순히 재정건전성으로 접근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를 두고 고민이 많이 있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제8차 회의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제8차 회의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양질의 일자리 필요

실업급여를 없애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회사 갑질 근절’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아닌 퇴직자에 대한 회사의 허위 신고 협박 등 갑질로 실업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180일을 넘어야 하고, 비자발적 퇴사로 실직 후 구직활동을 해야 하지만 ‘비자발적 퇴사’를 인정받는 것이 현실에서 어렵다는 것이 해당 단체의 지적이다. 고용보험 상실 신고 코드를 회사만 입력할 수 있어서 회사가 권고사직과 직장 내 괴롭힘 등 ‘비자발적 퇴사’를 ‘자발적 퇴사’로 만드는 허위 신고가 판을 치고 있다. 가장 악랄한 수법은 회사가 부정수급으로 신고해서 실업급여를 토해내게 하는 것이다. 조영훈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실업급여를 받겠다고 실업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정부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시럽급여’라는 유치한 말장난에 기댄 실업자 모욕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실업급여 갑질 단속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실업급여에 대한 접근법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실업급여가 사회적 안전망인데 그것을 걷어내겠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더욱 힘든 곳으로 몰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서울시 기준 월 233만원이 필요하다. 실업급여와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게다가 실업급여 삭감이나 폐지는 여성 비정규직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약 815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중 여성은 약 450만명(55%)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여성의 취업이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6월 기준 남성 고용률은 77.5%인데 반해 여성은 62.1%이다. 이처럼 여성의 고용률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직장에서 쉽게 잘리고, 취업은 더욱 어렵다는 볼 수 있다. 여기에 사회적 안전망인 실업급여 역시 축소되거나 폐지된다면 여성 노동자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샤넬 선글라스 구입하는 것 자체가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 민심은

물론 실업급여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고, 직장 내 갑질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비자발적 퇴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업급여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실업급여를 만약 축소하거나 폐지한다면 내년 총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벌써부터 당 안팎에서는 누가 실업급여에 손을 대려고 하는 것인지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실업급여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결국 청년과 여성 유권자들의 분노만 사게 된다면서 접근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국민의힘이 특정한 사안에 대해 민심이 바라보는 시선과는 완전히 괴리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는 수능 사교육 근절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킬러문항을 언급했을 때 ‘일타강사’를 악마화했다. 하지만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일타강사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다. 왜냐하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높은 수준의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실업급여는 사회안전장치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일선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이런 민심과 당심의 괴리는 결국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을 겪게 만들기 충분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실업급여 때문에 청년층 표심과 여성 표심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런 이유로 실업급여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필경 고용보험공단의 재정은 고갈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당장 실업급여를 축소하거나 폐지하게 된다면 그로 인한 청년층과 여성층의 고통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당정 역시 이 문제를 점차 알고 있는지 축소 혹은 폐지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당 지도부가 최소한 민심을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섭외해서 이야기를 경청할 것이 아니라 반대 입장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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