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평어 사용을 제안하는 <말 놓을 용기> 저자 이성민

‘평어(이름+반말)’로 일상·수업 진행…서적도 집필
친밀한 관계 가능하게 해…조직 내 ‘활발함’도 선물
존비어체계, 사회서 수직적 관계 일조한다고 여겨
“사람을 탐구해야…대화 시 호기심 갖는 태도 필요”

평어란 ‘이름+반말’로 이뤄진 새로운 한국말이다. 단순히 손아랫사람에게 하듯 낮춰 말하는 반말과는 다르다. 평어를 생생히 보여주고자, 해당 인터뷰는 실제 평어를 사용해 진행 및 작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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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자 <말 놓을 용기> 저자 성민이 발언을 하고 있어.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투데이신문 독자들, 안녕. 혹시 우리들의 어린 시절 기억나? 우리는 동네나 놀이터에서 만난 또래들과 편하고 친근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어. 그 순간만큼은 나이도, 성별도, 사회적 직급도 없이 오롯이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대하며 흔쾌히 최고의 놀이상대가 돼줬지. 

하지만 하나둘씩 사회를 향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같은 한국말이지만 다른 언어를 배워야만 했고 익숙해지기도 전에 이를 활용해야 했어. 그 언어는 바로 ‘존댓말’이야.

어느새 ‘밥’은 ‘식사’가 됐고, ‘생일’은 ‘생신’, ‘나이’는 ‘연세’, ‘이름’은 ‘성함’으로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지. 이뿐만이 아니라, ‘밥 먹었어?’라는 물음은 ‘식사하셨어요?’로 혹은 ‘진지 드셨어요?’로 변형됐어.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러우면서도 강압적으로 ‘존비어체계’에 발을 내딛게 된 거야. 

존비어체계란 한국어의 일방존대·일방하대 어법 문화로 어휘, 조사 등 형태가 변화하며 해당 체계를 형성하는 말이야. 쉽게는 존댓말과 반말 정도로 부를 수 있지. 

근데, 그거 알아? 일각에서는 존비어체계가 차별과 억압, 권력관계의 구조를 확실시하고 재생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같은 주장에 발맞춰 철학자이자 작가인 이성민은 존비어체계를 넘은 새로운 한국말인 ‘평어’를 세상에 알리고 있어.

성민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강의에서도 평어를 사용했고 이 같은 경험을 살려 <말 놓을 용기>라는 책도 집필했어. 그는 평어에 그리고 사람과의 대화에 있어 진심이더라고.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기자의 평어 사용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격려해 줬어. 그 덕에 ‘기분 나쁘지 않을까’하는 나의 우려는 잠재워졌고, 그 어느 인터뷰보다 편하고 친밀하게 진행될 수 있었어. 

마침 이날 성민이 평어로 진행하는 수업에 참관하기도 했는데, 수강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의견을 이야기하며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어. 수업이 마치 토론처럼 느껴졌고, 2시간이 아주 뜨겁게 흘러가더라니까. 

성민은 평어를 사랑했고, 국내에 보편화 돼 우리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에 도달하길 누구보다 바라고 있어. 이에 우리에게 새로운 모험을 알려준 성민을 직접 만나 나눈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줄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Q. 성민, 나는 투데이신문 기자 효령이야. 만나서 반가워. 자기소개 부탁해.

안녕. 나는 이성민이라고 해. 직업적으로 보면 그냥 프리랜서인데, 요즘 디자인대안학교(이하 디학)에서 강의하고 있고 글쓰기 하고 있어. 책을 썼으니 작가라고도 할 수 있겠지. 철학으로 시작해 인문학을 공부했고 요즘은 인지과학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어. 

Q. 언뜻 보면 반말과 평어가 비슷한 것 같은데, 다른 점을 크게 정리해 보자면 무엇인 것 같아?

일단 평어는 ‘이름+반말’로 정의할 수 있어. 일단 반말 호칭에 대한 구분이 있어야해. 형, 누나, 오빠, 언니, 선배나 아랫사람 부를 때 ‘누구야’는 반말 호칭이야. 예를 들어, “성민, 밥 먹었어?”는 평어야 하지만, “성민아, 밥 먹었어?”와 “성민오빠, 밥 먹었어?”는 반말이 되는 거지. 그렇다는 점에서 평어와 반말의 가장 큰 다른 점은 ‘형식’이라고 볼 수 있겠지. 독립적인 성인들의 사회적 관계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데 이 같은 호칭을 쓰게 되면 가족, 학교 프레임을 끌고 오는 거잖아. 그럼 그 안에서 관계가 국한돼버리지. 더 이상 새로운 무언가를 교류하지 않는다는 의미야. 

사실 한국말은 외국처럼 성을 호칭으로 쓸 수가 없어.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성은 김, 이, 박처럼 너무 짧고 특정 성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거든. 그래서 이름을 부르도록 평어 형식을 설정했어. 

Q. 그렇다면 평어를 사용할 때 어떤 요소가 가장 중요할까?

우선 가장 중요한 건 평어가 반말과 정확히 구분돼야 한다는 거야. 즉, ‘호칭+반말’로 변형되면 안 된다는 의미야. 그리고 하나 더 있어, 내가 최근 인지과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거기서 흥미로운 것이 뭐냐면,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타고났다는 거야. 그런데 마음은 안 보이니까 얼굴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 마음을 읽곤 하잖아. 근데 그 마음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게 ‘눈치’로 알아채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지. 평어를 사용하면서 상대방의 눈도 마주 보면서 마음도 읽고 이해하려 했으면 좋겠어. 더 이상 눈치로 대략 상황만 파악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한테 호기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이지.

Q. 평어를 주제로 책을 집필한 것은 물론 평어를 사용해 수업도 진행하거나 일상생활에서도 평어를 자주 사용해 소통한다고 들었어. 이렇게 사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 느낀 평어에 가장 큰 장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

아주 개인적인 계기가 있어. 사실 난 어렸을 때 말고는 행복한 적이 없더라고. 어릴 때는 놀이터나 공원 등에서 친구들이랑 놀잖아.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때가 제일 재밌었어. 물론, 학교 들어가도 이제 동년배 친구들을 만나서 놀긴 하지만 그때만큼 재미있진 않더라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회 생활하면서부터 ‘왜 인생이 이렇게 회색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렸을 때 우리는 모두 평어를 사용하면서 놀잖아. ‘나’와 ‘너’가 정말 동등한 관계였던 거지.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회 생활하면서부터 수많은 관계가 생기고 그 사이에서 불만, 경계가 생겨갔어. 이후에 평어로 대화하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너무 좋더라고. 관계도 오래 이어지고 서로 더 존중하게 되는 거 같아.

장점은 다 말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을 정도야. 다만 제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면, 친근한 사이에서 이뤄지는 개인적 대화에서는 보다 깊은 대화가 가능해. 서로 진정한 ‘상담’을 해줄 수 있는 거야. 또한, 기업에서도 평어를 활용하면 대화와 표현에 있어 제약이 사라지다 보니, 디자인이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전개하는 과정이 활발하게 되도록 도와주지. 이런 평어의 장점은 수업이나 강의에서도 마찬가지야. 학생들이 교수, 강사 등에게 보다 편하게 말할 수 있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게 돼. 그럼 수업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돼. 

Q. 그와 반대로 평어를 사용했을 때 난감했거나, 아직 과제로 남은 부분은 어떤 것이 있어?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평어를 쓰니까 어느 선 이상으로 안 친해진다는 거야. 호칭이 없다 보니 선을 지키기 위해 약간 조심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말야. 더욱이 사람들 일부는 말도 막하고 거칠게 하면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잖아. 그렇다 보니 평어가 극도의 친밀한 관계로까지 끌고 가지 못한다는 의견인거지. 또 다른 이들은 평어를 사용하다 보니 너무 편해져서 예의에 어긋나는 말을 하거나,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것 같아. 그런데 이는 마음 먹기 따라 다른 문제라고 봐. 평어를 사용할 때부터 큰 의미, 무게를 가지고 시작하면 끝내 어려워하는 것 같아. 편하게 마음 먹으면 돼. 

또 하나는 단점이라기 보다 평어를 사용하다가 특정 사람에게만 쓰고 싶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해봤어. 앞으로 이 문제가 가장 평어 사용에 있어서 중요해질 것 같아. 만약 평어가 널리 퍼졌을 경우, 상대방이 “왜 OO한테는 평어를 쓰고 나한테는 존댓말을 사용해?”라고 물을 수 있잖아. 점차 해결해 나가야할 문제이면서, 어떻게 풀려나갈지 귀추가 주목돼. 

성민이 디학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어. ⓒ투데이신문
성민이 디학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어. ⓒ투데이신문

Q. 수직적인 문화가 언어 및 대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해?

내가 체감하는 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예를 들면, 사적인 대화를 여럿이서 할 때 되게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어. 자신의 속내를 진솔하게 이야기하는데, 그 말속에서 나오는 표현들도 멋지고 아름답거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들이 많아.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 따라서 공감을, 때로는 조언을 해주는데 이 모든 것들은 존댓말로는 한계가 있어. 사람의 진심이 나이, 직급 등에 가려지는 거지.

물론 이 같은 경계를 허물고 수직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나아가고자, 요즘 회사들 사이에서 ‘님’ 호칭을 쓰게 하거나 영어 이름을 부르곤 하잖아. 노력은 좋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호칭만 바꾼다고 해서 바로 관계가 나아질까. 여전히 어색하잖아. 평어는 수평적인 관계에 출발점이 될 수 있어.

Q. 하지만 존댓말을 존중, 존경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또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존댓말이 없는 국가의 사람들이 서로 존경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잖아. 꼭 존경을 존댓말로 표현해야 하는 걸까. 평어에도 존경을 담는다면 충분히 그 뜻이 상대에게도 전달될 것이라고 믿어. 또, 오히려 존댓말 사용으로 인해 존경하기가 싫어질 수 있지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윗사람이 쓰는 존댓말이랑 아랫사람 존댓말이 약간 달라. 예시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밥 먹으러 갈래요?” 이렇게 하지 않고 “식사하러 가실까요?”라고 하잖아. 존댓말조차도 위·아래로 구분 짓는 것 물론 뉘앙스마다 다 달라. 이를 근거로 엄밀하게 말하면 ‘상호 존대’라는 건 없는 거야. 

Q. 그렇다면, 성민이 정의하는 ‘친구’는 뭐라고 생각해?

친구라는 관계는 대부분 학창 시절에 형성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사회적인 관계에서 반말을 사용하면서 편하게 지내는 사람을 만들기 어렵잖아. 그런데 평어를 사용해 친구를 사귀게 되면 되게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돼. 직급, 나이 등을 떠나 친밀함을 쌓아가기 때문에 사실상 무한한 친구 관계를 열어놓는 거고, 선택지가 굉장히 넓어지지. 다양한 범위 내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낼 수 있어.

서양의 문화적 영역 안에는 ‘또래 문화’가 있어. 또래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기도, 때로는 칭찬하면서 함께 나아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문화가 다소 부족하거든. 옆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관심도 없고 자신의 세상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 이런 틀을 평어로 깨고, 단순한 친구 관계를 넘어 자기가 평생 업으로 사는 어떤 전문적인 영역에 대해 같이 대화하고 교류하는 게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싶어.

Q. 존댓말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다고 하잖아. 특히 이웃나라인 중국도 없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어떤 문화 차이를 만들어 냈을까? 어쩌면 서양이 더 발전이 빨랐던 것이 언어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인간관계가 필요 없이 발달하는 개인적인 영역의 분야들 즉, 이과나 스스로 훈련을 거치는 영역에서는 우리나라가 발전했어. 그런데 그 외 인문학 등은 너무 발달이 안돼있는 게 현실이야. 대표적인 사례로 보면, 우리나라는 과거 축구 강국이 아니었잖아. 그러던 어느 날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이끌게 됐는데, 훈련 과정에서 나이 상관없이 편하게 소통할 것을 지시했어. 보다 빠르고 편하게 소통이 잘 돼서 우리가 4강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 히딩크도 존비어체계로 인해 소통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을 안 게 아닐까. 

개인적인 영역이 뛰어난 것도 좋지만, 전반적인 문화라는 것이 개인적 영역로만 형성되는 건 아니잖아. 문학, 학문 등 같이 모여서 무언가를 함께 발달시킬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게 세상에 정말 많아. 그때 평어를 사용해 자유롭게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면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Q. 일상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존댓말들이 많잖아. 예를 들면,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예상되겠습니다” 등등 이런 말들은 어떻게 보고 있어?

존비어체계가 끝날 때가 왔다고 생각했어. 말기 현상이라고 하면 표현이 쉬울라나. 사람들이 존비어체계 시스템을 정확히 모른 채 혼동하며 사용하고 있는 거지. 존비어체계에도 세세한 문법이 있을 건데, 사람들이 이를 모른 채 그저 위아래 구분만 하는 거지.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존비어체계의 사회적 유효성, 수요가 다 한 거라고 볼 수 있어.

Q. 그럼, 평어가 우리나라의 존비어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해. 아직은 평어가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사용하고 있더라고. 좋다는 후기들도 너무 많았어. 사용을 꺼리던 사람들도 막상 써보고 나니 ‘내가 원하던 것’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앞으로 평어가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난 오랫동안 평어가 보편화되길 바라고 있어.

사실 존댓말이 쉽게 사라지진 않을 거야. 그 대신 존댓말이 일반적인 언어가 아니라 보조적인 기능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봐. 쉽게 말해, 인간관계에 있어 거리를 두는 도구로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거지. 그러면 평어와 존댓말 구분이 명확해지고 사용에 보다 자유를 느낄 것 같아.

샘 해밍턴씨가 자신의 아들 벤틀리군에게 존댓말로 대답을 하라고 교육하고 있지만, 벤틀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반말로 대답하고 있어. [사진제공=KBS2&nbsp;‘슈퍼맨이 돌아왔다’ 갈무리]&nbsp;
샘 해밍턴씨가 자신의 아들 벤틀리군에게 존댓말로 대답을 하라고 교육하고 있지만, 벤틀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반말로 대답하고 있어. [사진제공=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갈무리] 

Q. 외국인은 물론 한국의 아이들조차도 존댓말을 어려워하곤 하잖아.

요즘 일부 외국인은 무조건 끝에 ‘요’만 붙이는 요령을 써 존댓말을 말한다고 들은 적이 있어. 이에 더해 배움의 의지를 가지고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이니, 존댓말을 향한 심리적 저항이 아이보다 크지 않을 거라고 봐. 그런데 아이들은 이미 자연스럽게 반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당장 유치원이라도 가면 새로운 말을 사용해야 하잖아. 존댓말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이걸 도대체 왜 써야 하지?’라는 마음이 아이들에게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결국은 존댓말 사용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만나자마자 나이를 물어보는 상하 관계를 비롯한 한국인만의 특성이 아이들에게도 형성되는 거지.

Q. 모든 관계가 당장 평어 사용이 용인될 순 없을 것 같아. 예를 들어 TV에서 뉴스를 전할 때, 가족 어르신을 대할 때라던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모험’으로의 첫 출발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가장 유력한 영역이 있다고 봐. 바로 ‘번역’이야. 왜냐하면 우리는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외국 콘텐츠를 보편적으로 즐기고 있잖아. 그런데 여기서 모순은 일본을 제외한 외국은 존비어체계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는 번역할 때 존비어체계에 입각해 해석해. 그러다 보니 종종 그 작품 특유의 맛을 살리지 못하거나 그 뜻이 제대로 해석이 안 된 채 배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평어로 번역된 콘텐츠를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언어적으로 우물 안 개구리였나’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들로 평어를 흡수하게 된다면 보다 낯설지 않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천천히 존비어체계가 없는 문화를 자주 수용하다 보면 나중에 뉴스라던가 가족들과 대화가 변화를 맞지 않을까?

말을 덧붙이자면, 사실 뉴스나 어른들에게 말고도 회사 내에서 사용하는 것도 만만치 않잖아. 실제 한 출판사에서 평어를 사용하면서 약 3개월 정도 근무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잘 안 됐을 때가 있었대. 부하직원이 잘못을 저질러서 바로잡아줘야 했는데 평어를 사용하다 보니 그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거야.

출판사 측에서 나에게 제언을 구했고, 그 계기로 평어 관련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어. 당시 나는 직장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평어로 구성된 대화법을 미리 설정해 두라고 했어. 쉽게 말해 ‘비즈니스 평어’ 같은 것을 만들라고 한거야. 심지어 평어 메일 양식도 정해두라고 조언했지. 그런데 그 방법이 굉장히 효과적이었어. 이를 통해 생각해 본 건데, 앞으로 대학에서 평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이후 조직 내 안정적인 평어 도입을 위한 컨설팅 업체가 생겼으면 좋겠어. 현재 회사들은 다소 경직돼 있고 수직화 돼있다 보니 바로 도입이 안 될 가능성이 높은데, 제3자의 조정을 통하면 자연스럽게 사내에 흡수되지 않을까 해.

Q. 요즘은 기성세대와 MZ세대의 소통 방식의 차이도 종종 ‘세대 격차’라는 이름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곤 하잖아. 특히,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의 단어보다 반말을 쓰는 게 더 기분 나쁘다고 하기도 해.

양 측이 이미 ‘소통이 안 된다’라는 전제를 깔고 서로를 대하고 있다고 봐. 그런데 여기서 평어를 사용하면 그런 구실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또한 반말로 말을 거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는데, 이건 MZ세대가 아니라 젊은 시기를 겪었던 모든 사람이 똑같을 것 같아. 어렸을 때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들이 말할 때 반말을 사용하면 자신도 모르게 기분 나쁠 수 있잖아. 과거에 그런 경험을 겪은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수 있다고 봐. 굳이 MZ세대가 모두 그렇다고 규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나 또한 그랬으니까. 사실 반말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과 말투, 그리고 기분 등의 요인으로 인해 기분이 나쁜 게 아닐까 해.

크게 보면, 얼마나 소통이 안 되는 사회가 됐으면 사사건건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보니 서로 날카롭게 서로 말이 오고가는 것 같기도 해. 우리뿐만이 아니라 평어를 사용하는 서양조차도 그런 ‘거친 반말’이 있단 말이야. 거친 반말과 같은 하위문화들이 존재하는 한 쉽게 사라질 수 없어. 

이날 기자가 참관을 진행했는데, 성민이 강의를 진행하기 전&nbsp; 칠판에 기자의 이름을 적어줬어.&nbsp; ⓒ투데이신문
이날 기자가 참관을 진행했는데, 성민이 강의를 진행하기 전  칠판에 기자의 이름을 적어줬어.  ⓒ투데이신문

Q. 서적을 통해 우리나라의 대화 속에서 ‘표현’과 ‘은유’가 다소 부족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맞아, 책에서도 설명했는데 우리나라, 특히 젊은 친구들은 표현과 은유가 한정적이야. 예시로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 “개맵다” 등으로 설명을 딱 끝내곤 해. 근데 이를 조금 더 다르고 자신만의 표현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책 추천사를 받고 나서, 가장 공감한 말이 있었어. ‘이제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농담이나 은유를 사용하는 소설을 써야 한다’는 말이었어. 사실 글의 영향은 정말 크거든. 소설은 영화, 드라마 등으로 확대되기도 하잖아. 아름다운 예술을 통한 표현과 은유가 자연스럽게 사회에 녹아들어야 거친 것만 알던 사람들도 음악을 듣거나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러면서 변화를 맞게 되겠지.

우리나라 작품도 좋은 것이 정말 많지만,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작품만 주목받거나 크게 흥행을 하기도 하잖아. 제대로 된 대화가 전개되는 예술 작품은 쉽게 찾아보기가 힘든 게 사실이야. 보다 많은 창작가들이 나서서 대중들이 문화적 향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

더 이상 좋은 옷을 입는다거나 화려한 장신구를 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매력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그 매력을 대화의 문학적인 표현과 은유로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고 봐.

Q.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수많은 대화를 하고 살잖아. 그만큼 너무나 필수적인 행위인데, 그런 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해?

세계에는 대항해, 우주 개척 등 여러 모험이 있잖아. 그런데 학자 시어도어 젤딘이 오늘날의 모험은 뭔지 아냐고 물어봐. 그리고 그 모험은 바로 사람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해. 사실 역사를 봐도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비극들이 많아. 아주 조금만 이해했다면, 생기지도 않았을 일이었을지도 몰라. 그만큼 사람에 대한 이해는 중요해. 그건 대화에서도 마찬기지야. 우리가 대화할 때 친밀한 사이 아닌 이상 상대의 눈치를 본 적은 있어도 이 사람 마음, 기분 등은 굳이 헤아리려고 하지 않았던 거 같아. 

Q. 성민이 꿈꾸는 미래 대한민국의 ‘대화’와 ‘소통’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나아가고, 변해갔으면 좋겠는지 궁금해.

평어 자체는 자연어가 아닌 디자인된 언어잖아. 앞으로 평어가 일반화되면 한국 사람들은 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말을 바꾸는 경험을 하게 돼. 그 여파가 궁금해. 평어를 사용하며 의식한 채로 문화적인 창조를 하게 될 때 어떤 새로운 문화가 나올지 기대도 되고. 

사실 평어는 이제 내 손을 떠나갔어. 세상에 흐름대로 맡겼지. 어쨌든 평어가 조금씩 우리 사회에서 퍼져가고 있고, 하나둘씩 관심을 쏟고 있어. 그들이 더 편안 마음으로 존중하는 태도로 평어를 사용했으면 하고 보다 대화의 재미를 알아갔으면 좋겠어. 더 나아가 아직 존비어체계 속에서 살고 있는 일본으로 수출하면 좋을 것 같아.

Q. 오늘도 말 놓을 기로 앞에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다른 사람의 말을 살짝 빌려서 말해볼게. 그저 한번 써봤으면 해. 그럼 뜻하지 않게 괜찮은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도 있잖아? 그러니 용기를 내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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