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문학과지성사]
[사진출처=문학과지성사]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서울은 거대한 ‘시내’와 같았다. 지방의 도시에서 외출과 유흥을 위한 시내란 몇 군데로 한정된 데 반해 서울은 마치 도시 전체가 시내인 것처럼 끊임없이 들썩이고 출렁인다. 그러나 매끄럽고 말쑥한 대도시의 용모를 뽐내는 서울일지라도 그 뒷면을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다. 전철과 버스가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승용차는 한 방향으로 간신히 드나들고 스쿠터나 두 다리로나 쑥쑥 밀고 들어갈 수 있는 잘고 잘은 골목들. 페인트를 두껍게 칠한 대문에 적벽돌로 쌓아 올린 연립주택들이 즐비하고, 각자의 생활이 뱉어낸 쓰레기를 골목 한편에 고이 모셔두어야 하는, 겨울이면 제 손으로 눈을 치워야 하고 언덕길이 가팔라 콘크리트 바닥에는 좁고 긴 홈이 그어져 있는 그런 동네. 옆집 담에서 삐져나온 나무가 네 것과 내 것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고양이가 죽은 몸을 고요히 뉠 수 있는 그런 동네.

황인숙의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 2022)는 그런 동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시집을 여는 표제작에서 시인은 “오르막길이/배가 더 나오고/무릎관절에도 나쁘고/발목이 더 굵어지고 종아리가 미워진다면/얼마나 더 싫을까” 진저리를 친다. “마치 내 삶처럼” 오르막길이 많은 동네에 산다는 것은 배가 덜 나오고 종아리가 가늘어지는 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다. 그런 위안을 구할 수만 있다면 더위도, 추위도, 눈비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기록적인 더위에 “너 얼마나 더우냐!” 친구들이 염려해도 “더위 따윈 내 인생에서/아무것도 아니라”(「이렇게 가는 세월」)고 선선히 굴 수 있고,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가지 않는 비”를 향해 “쏟아져라, 쏟아져!”(「오늘도 비」)하고 악을 쓸 수도 있고, “세상엔/미끄러지고 나동그라지고/뒤집힌 풍뎅이처럼 자빠져/바둥거리는 맛도 있다”(「장터의 사랑」)고 너스레를 떨 수도 있다.

그런 역설적인 힘의 동력은 오르막길을 함께 오르는 사람들, 이름도 주소도 모르지만 도시의 그림자와 골목의 어둠을 함께 나누는 이들의 존재로부터 온다. 무시로 마주치는 심야 편의점 알바생도, 청소차에 매달린 미화원도, 신문 배달원도 “밤에 살지만 우리는/밤이 어디 사는지 모른다”(「어디 사는지 모른다」). 피로와 불행감에 절어 지하철 플랫폼에 닿은 어느 날은 “같은 적막에 싸여/나보다 더 어두웠던/노동자인 듯한 (…) 이방인”이 “어깨를 움츠리고/외투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긴 의자에 혼자”(「어둠의 빛깔」) 앉아 있는 모습에 오래도록 멈춰 있다. 어느 밤 “후암시장 초입”에서 고양이 밥을 꾸려 담고 있는 화자에게 마땅히 줄 것이 없어 은행 현금 봉투 몇 장을 건네고 돌아서는 이는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없는 게 많을 당신/통장도 신용카드도 없을 당신”이라 “뭘 원해야 할지도 모를 것 같은/당신의 슬픈 경제”(「동자동, 2020 겨울」)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시인의 가장 큰 위안은 고양이에서 찾을 수 있다. 길에서 나고 자라 예쁨과 괴롭힘을 받고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고양이들. 어느 겨울 “맨땅보다 더 차가웠을 철제 계단”에서 밤을 보낼 만큼 길바닥 생활도 어미 노릇도 어눌한, “새끼 고양이와 함께 (…)/막막하고 철딱서니 없는 얼굴로 웅크리고 있”던 “삼색 고양이”가 더는 보이지 않자 화자는 “살아내느라 애썼다”(「겨울 이야기」)고 꾹꾹 눌러 적는다. 밤의 존재인 것도 모자라 금세 사라지고 스러지는 존재인 고양이를 향한 마음은 각별하게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제집 앞 더럽히기 싫어 고양이 집 입구를 굳이 북향으로 돌려놓으라는 어느 집주인을 향한 원망이나(「북향」), 고양이 밥그릇을 상습적으로 치우는 누군가를 향해 골목이 떠나가라 욕을 내뱉는 분노(「봄의 욕의 왈츠」)에는 화자 자신의 삶을 향한 처연함이 거울처럼 비춰 보이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고양이를 미워하는 이들, 고양이를 미워하기에 화자의 삶도 덩달아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은 하나같이 빈궁하고 고독한 이들이다. 고양이를 미워하기에 미운 그들이 자신과 다르지 않기에 더 미운 복잡한 심정이 시 곳곳에 솔직하게 묻어 있다. 광장에서 비둘기에게 과자를 나눠주는 화자를 향해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는 마흔 줄 남자가 “행색이 후줄근해/더 미웠다”(「광장」)거나,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시비 걸던 남자 노인” 쪽을 향해 악을 쓰고 나서는 “세상에, 내가 이런 인간이구나!”하고 “루저가 루저한테 생채기 주고받는”(「슬픈 열대」) 제 모습을 서글퍼하는 장면은 투명하리만큼 솔직하고 또 인간적이다. 그저 인간이기에 서로를 향한 연민만큼이나 미움도 주고받을 수 있는 서늘한 밤의 시간, 그림자의 공간에 시인은 누구보다 정직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오르막길이고 진창길일지라도, 슬픔과 분노와 후회로 곤죽이 될지라도, “후회는 없을 거예요”. “서글픈 목소리”로, “벌써 후회하는 듯한” 목소리로 부르기에 괜히 더 매료되는 노랫말처럼(「후회는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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