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7개 환경 관련 학회 입장 발표 기자회견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형사재판 항소심 관련
예방의학회·직업환경의학회 등 7개 의학·과학계 참여
의학계 “사법 판단에 그간 검증된 과학적 근거 고려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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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의학·환경·보건·독성학계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공동 기자회견 및 간담회를 열고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형사재판 항소심에 대한 공동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이번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기업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에 통감하고 공공의 복지 증진을 위해서 사회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

CMIT·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 성분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2심 판결을 앞두고 의학·과학계가 재판부에 과학적 근거를 반영해 판단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국내 의학·환경·보건·독성학계는 8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공동 기자회견 및 간담회를 열고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형사재판 항소심에 대한 공동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직업환경의학회, 한국역학회, 한국환경보건학회, 한국환경법학회, 한국환경사회학회, 환경독성보건학회 등 7개 학회가 참석했다. 이와 함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도 ‘가습기살균제 17년 살인 행진’, ‘여러분이 혼내주세요’ 등의 손 피켓을 든 채 현장에 함께했다.

이들은 “지난 2020년 정부의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대규모 전국표본조사를 시행해 그 분석 결과를 발표했는데, 사용은 총 894만명이고 건강피해 경험자는 95만명에 달했다”며 “하지만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 종합 지원센터에 등록된 피해구제 신청자는 지난 9월 31일 기준 1827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7870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12년이 지났음에도 우리 사회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해 여전히 빙산의 일각만을 바라보고 있으며, 아직도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와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들은 재판에서 학계가 제시한 가습기살균제와 건강피해 사이의 인과적 관련성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과학적 근거들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며 지난 2021년 1월 나온 1심 판결 결과에 대해서 비판했다.

앞서 1심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임직원 등 13명에게 무죄 선고를 내렸다.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인 CMIT·MIT와 폐질환·천식 간의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당시 학계에서는 과학자들의 증언 및 증거를 곡해하고 취사 선택해 판결을 내렸다며 반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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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형사재판 항소심에 대한 공동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인하대 임종한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하지만 이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CMIT·MIT 등의 물질이 간질성 폐렴과 천식이 발생하는 하기도까지 도달한다는 사실이 파악됐다. 더불어 흡입독성시험을 통해 용량에 관계없이 2주라는 비교적 짧은 노출 시간에도 폐 변색과 염증세포의 침윤과 염증, 불규칙적인 호흡 등이 나타날 수 있는 점이 드러났다.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한 역학 연구를 통해서는 CMIT·MIT 가습기살균제 사용 전후 5년을 비교한 결과 천식 발생이 5배, 천식으로 인한 입원 발생은 10배 늘었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입증됐다.

이와 함께 학회들은 지난 2011년 말 가습기살균제 수거 전후의 전 국민 건강실태를 비교한 결과를 내놓으며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들은 사용하지 않은 사람 대비 폐렴, 천식, 간질성폐질환 등 대부분의 호흡기계 질병 발생률이 최대 5~20배 높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법적 판단에 있어서 검증된 과학적 근거들이 고려돼야 하고 원인 제공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판단이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국가적으로 많은 생명과 건강을 앗아간 이 물질을 제조·판매하고 충분한 과학적 근거 없이 아이에게도 안전하다는 광고를 하며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제조사들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과학적 근거가 명백한 물질에 대해서도 제조·판매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유해물질로부터 가족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라며 “이번 2심 소송의 판결을 앞두고 그간 축적된 CMIT·MIT 대한 근거가 사법적으로 충분히 고려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습기살균제를 제조·유통·판매한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선언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달 2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용찬 전 대표 등에게 각각 금고 5년을, 함께 기소된 애경산업·SK케미칼·이마트 관계자 등 11명에게는 금고 3~5년을 구형했다. 2심 판결은 내년 1월 11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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