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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사람을 죽였는데 처벌을 안 하실 수 있습니까. 왜 약자를 보호해주지 않는 겁니까.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게 합당한 판결입니까!”

지난 2018년 근무하던 중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故(고) 김용균씨(당시 24세)의 5주기를 사흘 앞둔 지난 7일 대법원이 원청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사장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하자, 김씨의 어머니인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은 이같이 소리쳤다. 

법원은 김 전 사장이 안전보건 방침을 설정, 승인하는 역할일 뿐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보고 무죄를 판결했다.

앞서 서부발전의 하청회사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근로자였던 김씨는 지난 2018년 12월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 내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전날 오후 10시 41분부터 11시 사이 석탄 작업 등을 하는 과정에서 컨베이어벨트 끼임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검찰은 김 전 대표 등 서부발전 임직원 9명과 발전기술 백남호 전 대표 등 임직원 5명을 불구속기소했다. 

김 전 대표는 1·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받았다. 재판부는 김 전 대표가 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봤다. 대부분 임직원들에게는 유죄 선고가 내려졌다. 백 전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2년을, 나머지 임직원 12명은 벌금형, 금고형,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처분받았다. 이어 서부발전 법인에는 벌금 1000만원, 발전기술에는 벌금 1500만원이 선고됐다.

이후 이뤄진 2심에서 백 전 대표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받았고, 서부발전 임직원 2명은 무죄로 판결이 뒤집혔으며 1명은 공소기각됐다. 나머지 임직원들도 일부 감형받았다. 서부발전 법인에게는 무죄 판결이 떨어졌으며, 발전기술 법인의 벌금도 1200만원으로 감액됐다.

이에 김용균재단을 비롯한 노동계는 “노동자·시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판결”이라며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법원이 이번 판결로 ‘위험의 외주화’가 산업현장에 만연하는 불평등 산업구조 형성을 조장했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용균씨의 사망은 노동계의 큰 변화를 안겨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김씨의 죽음 이후 위험하고 힘든 일은 하청업체에 모두 떠맡겨 버리는 산업 현장의 만연한 부조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는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2018년 하청 근로자의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 즉, 김용균법이 통과돼 지난 2020년 1월부터 시행됐다. 이어 원청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까지 하청 근로자의 산업재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까지 제정됐다.

이처럼 김용균법과 중대재해법의 마중물이 된 김씨의 사건은 정작 원청 경영책임자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못하게 됐다.

김씨 사망 당일 컨베이어 벨트의 안전 덮개는 열려 있었고, 야간 근무임에도 조명이 꺼져 있었으며, 비상정지 장치까지 불량이었다. 이에 더해 2인 1조로 진행해야 할 작업을 혼자서 감내했다. 이에 대법원도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판단했지만 결국 원청 대표가 아닌 현장 실무자에 그 책임을 돌렸다.

두 법안이 김씨의 사고 이후 시행된 터라 소급 적용할 수 없어 과거 산안법만 적용됐더라도, 이번 법원 판결은 원청의 책임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인정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산안법, 중대재해법 모두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누구나 열악하고 고된 중소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인 공감대에도 우리나라에서 정작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은 거꾸로 가고 있다. 심지어 ‘외면’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이는 노동자보다 기업과 사용자의 사정을 우선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같은 행보로 인해 많은 노동자는 열심히 일하다 중대재해를 입어도 누구 하나 그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는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 앞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설치돼 있다. 다른 국가의 여신상과 다르게 두 눈을 안대로 가리지 않은 채 법원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다. 이를 두고 사건을 제대로 살펴보고 판결하라는 의미로 해석하곤 한다. 

하지만 이 의미가 크게 와닿지 않는 건 법원의 모순적인 판결 때문이다. 법을 위반했고, 그에 따른 피해자가 있음에도 법이, 이를 다루는 사법부가 알맞게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제 역할을 다 할 때, 더 이상 일하다가 소중한 목숨을 잃는 다른 ‘김용균’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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