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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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서울 용산역 앞 광장은 늘 사람으로 붐빈다. 용산역 인근에는 여러 기업들이 위치해 평일에는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가득하고 주말에도 백화점, 쇼핑몰, 영화관 등을 찾는 사람들이 이어진다. 

그런데 용산역 광장에서 용산역을 거쳐 반대편으로 나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쇠퇴가 역력한 전자상가도 문제지만 전자상가 옆에는 약 50만㎡의 빈 땅이 10년째 방치돼 있다. 예전 정비창이 있었다는 흔적처럼 철골 구조물 몇 개만 남은 완벽한 빈 땅이다.

이 땅이 10년째 비었던 이유로는 코레일, 국토교통부, 한전 등이 소유한 국공유지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서울의 마지막 금싸라기땅을 둘러싼 욕심이라는 진짜 이유가 숨어 있다.

이 곳을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은 지난 2001년부터 나왔다. 서울시는 2007년 8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고 민간 주도로 개발사업을 이끌 시행사도 설립된다. 당초 사업비는 28조원이었으나 이후 31조원까지 늘어난다. 당시로는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 불린다.

조감도는 높이 620m 규모의 111층 랜드마크타워가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며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겼고 2013년 사업이 무산됐다. 코레일 허준영 사장은 용산 개발과 관련해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으며 2017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원의 2심 판결이 확정됐다.

코레일은 시행사와 소송전 끝에 2019년에야 용산정비창 부시 소유권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결론적으로 역대 최대 개발사업이란 무리한 욕심이 부른 실패였다.

다음해인 2020년 국토교통부는 용산정비창 부지에 8000세대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후 계획한 주택공급량은 1만세대까지 늘어났다. 그러자 일부 주민들이 주택 개발을 반대하며 국제업무지구 원안 추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시와 용산구도 주택 개발에 반대하며 원안대로 개발하자고 국토부와 맞섰다. 

용산정비창은 100% 국공유지다. 기피시설도 아닌 주택을 짓겠다는데 왜 반대했던걸까. 표면적 이유로는 국제업무지구를 통해 도시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된다는 논리를 들었지만 이런 추상적인 발상만으로 극력 반대에 나섰다고 보긴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결국 땅값이다. 계속 상승하는 용산지역 부동산가격이 주택 개발, 특히 공공임대 공급으로 김이 샐까 우려했던 것이다. 여기에 서울시, 용산구 등 지방자치단체마저 편승했다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국토부와 서울시의 줄다리기는 서울시는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그리고 국토부는 주택 6000세대 공급으로 합의하는 선에서 끝났다. 부동산 커뮤니티의 반응은 여전히 주택 공급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주거시민단체 모임인 ‘내놔라 공공임대’는 지난달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기공공임대주택 예산 확대를 촉구했다. 이들은 “장기공공임대(융자) 예산은 지난해 9조1000억원이었는데 윤석열정부 이후 연평균 18.8% 삭감돼 내년에는 6조원으로 축소됐다”라며 “더 심각한 문제는 그나마도 제대로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22일 발표한 2022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기구 비중은 3.9%로 전년인 2021년 4.5%보다 줄었다. 이는 면적만을 기준으로 한 수치일 뿐 판잣집, 비닐하우스, 숙박업소 객실 등 ‘주택이외의 거처’와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를 합한 주거빈곤가구는 176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세계적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현재 시점에서 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여전히 위험부담이 커보인다. 공공이 미리 개발한 뒤 조각내 분양한다면 시점도 몇 년 뒤일 테고 규모가 작아지면서 위험부담도 줄어들겠지만 개발속도가 지지부진하면 여전히 부담될 수밖에 없을 터다. 

그에 반해 주택 공급, 특히 서울 도심 내 대규모 임대주택 공급은 주거난에 고통받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단비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용산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 끝모를 욕심을 채우고자 화려한 조감도로 포장된 허황된 신기루를 붙잡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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