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아파트와 쪽방촌, 주거의 극과 극이 뒤섞인 서울 용산
“공동주택 25% 임대주택 공급”…공공임대 750가구에 불과
“민간에 개발이익 몰아주면 안 돼” 시민의견 반영한 개발돼야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난 2021년 11월 24일 서울시 용산구 용산정비창 부지 앞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빈곤사회연대]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난 2021년 11월 24일 서울시 용산구 용산정비창 부지 앞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빈곤사회연대]

서울 용산역과 용산전자상가 사이에는 약 49만3000㎡(약 15만평)의 비어있는 땅이 있다. 과거 철도정비창이 있던 부지로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이 전체 부지의 72%를 소유하고 있다. 그 외엔 국토교통부(23%), 한국전력공사(5%)가 보유한 국공유지다. 서울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도 불린다.

서울시와 코레일은 이 나대지(지상에 건축물 등이 없는 대지)를 국제업무와 주거‧공원녹지를 갖춘 융복합 지구로 개발할 계획이다. 그동안 공공임대주택 건설 등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얼마나 반영될지는 의문이다. 장밋빛 청사진 대신 업무지구 개발의 성공 가능성도 냉철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이 곳의 개발은 용산구 일대뿐 아니라 향후 서울시의 미래와도 직결돼 있다. 그만큼 공공성을 요구하는 사업이지만 금싸라기땅을 개발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려는 자본의 욕구 앞에서는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철길 건너편에는 개발이익만 쫓는다면 어떤 비극이 있는지 보여준 용산참사 현장이 있다. 이 상징적인 지역이 향후 어떤 모습이 될지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서울시 용산구는 고층 아파트 및 고급 빌라가 곳곳에 분포돼 있으나 최저주거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 쪽방촌도 자리한 주거의 양극단이 혼재된 지역이다. 서울시와 코레일은 용산정비창 부지를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겠다는 입장이나 지역특성을 봐도 주거취약층과 서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우선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재 용산구 아파트 값은 ‘강남3구’에 필적하며 ‘서울4구’로도 불리고 있다. KB부동산 11월 월간통계자료를 보면 용산구는 ㎡당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이 2003만8000원으로 강남3구 중 송파구(1997만5000원)보다 높았다. 서울지역에서 ㎡당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이 2000만원을 넘은 곳은 강남구(2671만8000원), 서초구(2420만4000원), 그리고 용산구 뿐이다.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서울에서 가장 아파트 월세가 비싼 지역에 강남3구를 제치고 용산구가 꼽혔다. 용산구 월세 평균은 208만원으로 강남3구 중 가장 비싼 서초구(176만원)보다 높았다.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월세는 102만원이다.

용산구는 서울 뉴타운 사업 중 가장 주목받는 한남뉴타운 재개발사업도 진행 중이다. 2구역은 대우건설이, 3구역은 현대건설이 수주한 가운데 남은 4구역과 5구역도 대형건설사들의 치열한 수주전이 전망되고 있다. 주택경기 침체로 정비사업 수주전 열기가 식었다지만 한남뉴타운은 서울 중심지에 랜드마크를 짓겠다는 대형건설사들의 의지가 더 타오르는 모습이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직방’ 함영진 실장은 “용산은 강남3구와 함께 서울 집값을 리딩하는 지역”이라며 “종로와 여의도 등 대규모 업무지구와 가깝고 미군기지 이전으로 대규모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며 대통령실이 이전한 상징적 이슈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용산정비창 부지에 대해서는 “서울 도심 내에 이렇게 큰 면적인 유휴부지가 없다. 서울은 시내 택지가 부족해 대부분 정비사업을 통해 일반분양이 나오는데 이곳은 아예 미개발지인 빈 땅”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지난 문재인정부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용산정비창 부지에 최대 1만세대의 주택을 공급하는 계획을 제기해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염두에 둔 서울시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결국 서울시의 구상대로 국제업무지구 개발로 방향이 잡히면서 공급되는 주택 규모는 약 6000가구 정도로 가닥이 잡혔다.

서울시 미래공간기획관 용산입체도시추진팀 관계자는 “구체적인 개발계획은 내년 초에 발표될 것으로 본다”라며 “공공개발 이후 단계적으로 민간에 분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개발을 통해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고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6000가구 중에 공동주택이 5000가구, 오피스텔이 1000가구”라면서 “도시개발법에 의해 공동주택의 25%는 임대주택으로 공급된다. 민간이 10%, 공공은 15% 비율”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따르면 용산정비창 부지에 공급되는 임대주택은 1250호이고 이 중 공공임대는 750호 규모다.

약 50만㎡ 규모의 100% 국공유지에서 공공임대 공급이 750여 가구에 그친다면 서울 주거난 해소에 큰 보탬이 되길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또, 만약 공공임대 중에서도 장기전세 등 시세연동형 유형이 배정된다면 주거취약층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에 서초구와 강남구에서 공급한 장기전세주택은 전세보증금이 10억원을 넘어 무주택 서민의 주거난 해소라는 취지를 무색하게 한 바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용산사업부 관계자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에서 보상, 설계, 시공업무 등을 맡는데 공공임대 임대료 문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라며 “구체적으로 임대료를 확정할 단계는 아니다. 차차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공대위 “용산정비창, 100%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서는 용산정비창 부지를 활용해 부족한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민달팽이유니온,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은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출범하고 “서울에서 가장 큰 공공부지인 용산정비창을 비롯한 공공택지는 100% 공공이 보유하는 공공주택으로 공급하라”고 촉구했다.

공대위는 2021년 11월 24일 서울 용산정비창 부지 앞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갖고 “오세훈 시장의 국제업무지구 재추진은 또다시 이 땅을 투기 개발의 복마전으로 만들 뿐”이라며 “대장동처럼 민간에게 막대한 개발이익을 불로소득으로 몰아주는 개발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공이 개발 주체가 된다 해도 분양을 목표로 한 건설은 투기를 부추길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투데이신문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투데이신문

용산구는 고급 주거지가 밀집한 지역이면서 동시에 국내 최대 규모의 동자동 쪽방촌이 있으며 용산정비창 부지 한켠에는 홈리스 텐트촌도 있다. 2020년 기준 통계청 인구총조사(표본 20%)에 따르면 용산구는 전체 9만5714가구 중 자가거주는 3만2638가구로 전체 가구 중 자가거주비율이 34.1%에 그쳤다. 이는 서울시 자가비율 43.5%에 다소 못 미치는 수치다.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서울의 장기공공임대주택 비율은 전체 가구의 7% 수준인데 매우 부족하다. 대도시일수록 주거취약계층이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며 “도심에서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사람이 더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입자가 더 많은 도시가 서울인데 공공임대가 부족하다. 민간임대주택 가격 통제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 전월세 안정을 위해서라도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집행위원장은 “용산구는 쪽방이나 고시원 등에서 거주하는 주민 비율이 7%정도 되는 지역으로 서울에서 주거빈곤율이 상위 5위권에는 드는 곳이다”라며 “그런데 용산구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3% 이하”라고 짚었다. 이어 “집답지 못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은 열악한 주거환경 문제를 넘어 생명의 위협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8년 11월 7명이 사망한 종로 고시원 화재 사고와 지난해 8월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로 반지하층에서 일가족 3명 등 4명이 사망한 반지하 수해 참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공대위는 지난해부터 용산참사 현장과 용산정비창 일대를 둘러보며 용산정비창 개발의 대안을 모색하는 ‘용산 다크투어’를 진행해 왔다. 이 집행위원장은 “용산참사 추모주기에 맞춰 1회성 행사로 준비했지만 호응이 많아 벌써 50여회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막연히 생각하던 땅을 실제로 보면서 참여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라며 “한 청년은 ‘서울시에 청년주택사업이 청년들에게 비싸게 공급되고 있다고 물었더니 민간사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면서 하는 방식이라 그렇고 공공택지가 서울에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얘기했는데 이 넓은 땅이 10년째 방치돼 있었다고 하니 속은 것 같다’고 말해 인상적이었다”고 소개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자칫 용산참사와 대장동 개발의 문제를 되풀이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참사도 당시 용산정비창 부지를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인근 부동산가격이 폭등하고 이에 용산4구역도 급하게 개발에 나서면서 빚어진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이 집행위원장은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민간에 막대한 개발이익을 몰아준 데 대한 문제제기가 넘쳤는데 용산정비창 등 다른 개발사업에서는 별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꼬집으며 “공공부지를 개발해 민간에 분양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또, “코레일 적자 해소를 용산정비창 개발수익으로 해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향후 미래의 도시 변화와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도심에 일정 수준의 국공유지를 보유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땅을 민간에 넘기면 이후 공공이 활용하는 자원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 ⓒ투데이신문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 ⓒ투데이신문

이 집행위원장은 “용산정비창 개발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시민 참여가 보장된 도시계획을 하자는 게 핵심”이라며 “공공부지의 민간매각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 그리고 공기업 노동조합들과 만나 논의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몇몇 전문가가 모여 논의하고 조감도를 발표하기보다 시민들 스스로 도시계획가로서 의견을 낸다면 보다 공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오세훈 시장은 지난 14일 종로구 돈의동 쪽방상담소를 찾아 쪽방주민 무료 치과진료사업 소감 발표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쪽방주민들의 삶을 보다 나아지게 하려는 오 시장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나 3선 시장이라면 눈물보다 정책이 더 우선해야 할 것이다. 쪽방주민들에게까지 돌아갈 정도로 충분한 공공임대주택이 용산정비창 부지에 들어선다면 그보다 획기적인 정책도 없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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