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취소됐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이번엔 공공 주도로 시도
아시아의 실리콘밸리 목표로 용적률 1500% 이상 고밀도 개발 구상
미래 업무공간 추가수요 있을까…“시민 눈높이로 신뢰부터 쌓아야”

용산정비창 부지 전경 ⓒ투데이신문
용산정비창 부지 전경 ⓒ투데이신문

서울 용산역과 용산전자상가 사이에는 약 49만3000㎡(약 15만평)의 비어있는 땅이 있다. 과거 철도정비창이 있던 부지로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이 전체 부지의 72%를 소유하고 있다. 그 외엔 국토교통부(23%), 한국전력공사(5%)가 보유한 국공유지다. 서울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도 불린다.

서울시와 코레일은 이 나대지(지상에 건축물 등이 없는 대지)를 국제업무와 주거‧공원녹지를 갖춘 융복합 지구로 개발할 계획이다. 그동안 공공임대주택 건설 등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얼마나 반영될지는 의문이다. 장밋빛 청사진 대신 업무지구 개발의 성공 가능성도 냉철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이곳의 개발은 용산구 일대뿐 아니라 향후 서울시의 미래와도 직결돼 있다. 그만큼 공공성을 요구하는 사업이지만 금싸라기땅을 개발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려는 자본의 욕구 앞에서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철길 건너편에는 개발이익만 좇는다면 어떤 비극이 있는지 보여준 용산참사 현장이 있다. 이 상징적인 지역이 향후 어떤 모습이 될지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코레일은 지난 10월 30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 대한 계획을 확정하고 개발구역 지정 제안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사업계획은 향후 서울시가 발표할 예정이다.

옛 용산정비창 부지는 이미 2007년 민간주도로 개발사업이 추진된 바 있다. 당시에도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 시장의 요구로 서부이촌동 부지까지 합쳐 개발하기로 했으며 총 사업비는 28조원에서 이후 31조원까지 오른다. 이명박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사업비가 24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매머드급 사업규모다.

코레일과 사업자로 지정된 삼성물산은 2007년 12월 용산역세권개발 주식회사와 드림허브 프로젝트 금융투자 주식회사(이하 드림허브 PFV)를 설립하고 용산역에서 한강변까지에 이르는 야심 찬 개발계획을 공개했다. 그러나 다음해인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맞으며 사업이 위기를 맞게 된다.

사업시행자로 삼성물산 대신 롯데관광개발이 들어왔지만 자금난은 계속됐고 결국 2013년 3월 드림허브 PFV가 최종 부도를 맞는다. 서울시가 그해 10월 용산국제업무지구 구역지정을 해제하면서 공식적으로 사업이 취소됐다. 

사업무산 이후에는 이 땅의 소유권을 놓고 코레일과 드럼허브 PFV간 소송전이 벌어졌다. 코레일은 이 소송에서 2019년에야 승소해 토지 소유권을 100% 확보하게 됐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외국자본에 개발권을 넘기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으며 서울시가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려 계획하다가 보류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2020년 5월에는 국토교통부가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을 마련하며 용산정비창 부지에 8000호 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어 8월에는 1만호로 규모를 키웠다. 국토부는 직후 인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이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자 흐름은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재추진하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해 7월 이 땅을 글로벌 도시경쟁력과 기술혁신을 선도하는 미래 신 중심지로 만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구상을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7월 26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구상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7월 26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구상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시의 구상에 따르면 이 일대는 초고층 마천루 사이에 공원과 녹지가 펼쳐지고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이 입주하는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거듭나게 된다. 일자리와 연구개발, 회의장과 전시장부터 주거, 여가 및 문화생활까지 도시의 모든 기능이 이 안에서 이뤄지는 ‘직주혼합’ 도시로 조성되며 외국 기업과 인재 유치를 위한 국제교육시설과 병원 등의 생활인프라도 들어선다.

서울시는 이같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최초로 ‘입지규제최소구역’을 지정해 법적 상한 용적률 1500%를 뛰어넘는 초고층 건물을 올리겠다는 포부다. 전체 부지의 70% 이상은 업무와 상업 등 비주거 용도로 채우고 고밀 개발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해소하고 공공성을 확보하도록 전체 부지 대비 기반시설률(도로, 공원, 학교 등)은 40% 수준으로 정했다. 녹지와 보행공간은 용산역과 용산공원, 한강까지 이어진다.

또, 지하도로, 미래항공교통(UAM), GTX, 지하철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연계하는 복합환승센터 개념의 1호 ‘모빌리티 허브’도 구상에 포함됐다. 이를 통해 용산을 서울도심과 강남으로, 인천공항과 수도권 전역으로 연결하는 신 교통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사업추진은 이전 민간 PFV 주도의 통개발 방식을 대신해 공공기관인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공사)와 코레일이 공동사업시행자가 돼 사업을 맡는다. 공공이 약 4조원의 재원을 투입해 부지 조성과 인프라 구축을 한 뒤 민간에서 개별 부지별로 하나씩 완성하는 방식이다.

오 시장은 “용산은 서울도심, 여의도, 강남과 연결되는 지리적 중심이자 철도 교통의 요충지”라며 “더 늦기 전에 시작하겠다. 용산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과 기회를 극대화하고 변화된 여건과 미래 환경에 부합하는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코레일은 앞서 2021년 5월 SH공사와 공공 주도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위한 실시협약을 체결했으며 안정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서울시와 사업 단계별로 협의를 하고 있다. 사업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도시개발 전문가로 이뤄진 MP단(Master Pianner)의 자문을 받고 관계기관 실무 협의체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코레일은 연말 구역지정 제안을 시작으로 개발계획 고시, 실시계획인가 등 관련 인‧허가를 추진할 예정이다. 오는 2025년 하반기부터는 기반시설 공사와 토지공급에 착수해 2028년까지 기반시설 준공을 마무리하겠다는 밑그림이다.

코레일 용산사업단TF 관계자는 “현재 개발계획은 확정했으며 지금은 구역지정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라며 “계획 발표는 서울시 일정에 맞춰 논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 민간주도 개발은 기반시설 구축까지 민간이 다 해야 했지만 본 사업은 코레일과 SH공사가 계획을 수립해 도로, 녹지, 공공시설 등 기반시설을 준공하고 남은 가용지를 민간에 분양하는 구조”라며 “개발계획에 맞게 토지분양은 어떻게 해야 합리적인지는 마케팅 용역 등을 거쳐야 확정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조감도(안) [이미지제공=서울시]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조감도(안) [이미지제공=서울시]

고밀도 기능융복합 개발 적합…“기존 도심과 제로섬 게임” 반론도

중앙대학교 마강래 도시계획‧부동산학교 교수는 “세계적 트렌드를 보면 광역교통의 교차점은 주변역세권을 고밀도로 기능융복합 개발을 하는 것이 대세”라며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도 이 맥락에서 봐야한다”고 분석했다. 용산역만 해도 현재 경부선, 호남선, 지하철 1‧4호선과 경의중앙선 등 5개 노선이 거쳐가고 있다. 여기에 GTX-B, 수색-광명 고속철도, 신분당선이 추가되면 8개 철도노선의 환승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같은 광역교통 중심지는 고밀도 개발이 적합하다는 견해다.

마 교수는 “이런 공간은 국제적 중심성을 높이는 취지로 개발하는 것이 맞다. 신산업 공간으로 적당해 용산전자상가 재개발과도 묶어서 봐야 한다”라며 “인근 집값에 영향이 있겠지만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택지 개발보다는 고밀도 개발을 하게 되면 주거도 상당부분 들어가면서 사용인구가 상당히 나올 것이다. 시장의 니즈를 잘 알고 어떻게 시장의 힘을 이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개발 성공 여부다. 민간분양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코레일과 SH공사 입장에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될 수도 있다. 금리인상에 따른 부동산경기 침체도 변수다.

런던대학교 손정원 도시계획과 교수는 지난해 1월 열린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시민대토론회에서 “앞으로 도심 사무공간 수요 감소가 예상된다. 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은 실현되기 어렵고 실현될 경우에는 기존 업무지구의 공간수요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송도 국제업무지구를 봐도 목표 개별연도였던 2015년을 한참 넘기고도 아직 미완성 상태다”라고 짚었다.

손 교수는 “서울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구도심, 여의도, 강남이라는 3대 업무지구 체제가 확립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의도도 업무공간 추가수요가 크지 않고 강남은 서초대로 업무지구계획, 현대차그룹의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 등 여러 개발계획이 예정돼 있다”라며 “용산국제업무지구 계획은 추가적인 업무공간이 되기보다 기존 업무지구와 제로섬 게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해외유치는 상해, 홍콩, 싱가포르와의 경쟁을 이겨내야 하며 향후 재택근무의 증가와 수도권지역에 광역 다심이 확산되면 도심 사무공간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조감도와 미래에 대한 희망적 관측만으로 계획을 설명하는 서울시를 꼬집는 목소리도 있다.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최경호 소장은 “화려한 마천루로 가득찬 조감도를 들고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은 무모해 보인다”라며 “강남 테헤란로가 지금의 스카이라인을 갖추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 수십만㎡의 업무지구가 하루아침에 채워져 작동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최 소장은 “장소성과 역사성에 기초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차근차근 접근할 좋은 기회”라며 “균형발전과 기후위기 대응, 그리고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봐야 하다. 하늘에서 보는 조감도가 아니라 시민의 눈높이에서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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