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nbsp;<br>
▲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는 2023년은 전세지옥이었다.”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 이철빈 공동위원장은 지난 4일 오전 국회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지난해 서울을 시작으로 세상에 드러난 ‘전세사기’ 사태가 인천 미추홀구, 경기도 수원, 대전 등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자지원위원회가 인정한 피해자 등 건수는 총 1만944건이다. 아직 평가 단계에 놓여 있거나, 지난해 말 임대차 계약이 끝난 피해자가 추가 신청하는 등 그 규모는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전세사기 사태가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피해자 10명 중 7명가량은 40대 미만 청년층이라는 사실이다. 막 사회로 나설 때 직면한 범죄 피해 사실에 피해자 중 일부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전세사기 피해 여파에 지난해 6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제정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피해자들은 피해자 인정, 보증금 회수, 금융지원 중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어 지난 1년을 혼란과 좌절로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올해까지 그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특별법은 ‘반쪽짜리법’, ‘ 생색내기 지원대책’이라는 별명마저 붙은 상태다.

한국도시연구소 등이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피해가구 중 정부의 지원대책을 받고 있는 비율은 17.5%에 수준이었다. 지난 6개월간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피해주택 매입실적도 0건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방안이 포함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선(先) 구제 후(後) 구상(회수)’ 방안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단체와 야당은 지난해 6월 시행된 특별법이 피해 구제 사각지대가 많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현행 특별법은 피해자로 인정되기도 어려우며, 모두 간접지원 중심이라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개인적으로라도 나서 법무사, 변호사 등을 만나며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애썼지만,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유일한 방법으로 셀프낙찰과 개인회생만을 제시했다며 막막함을 감추지 못했다. 

셀프낙찰을 받는다고 하면 이미 전세대출을 한 피해자들이 ‘본인 집’을 사기 위해 또 대출을 받는 악순환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선택지인 개인회생도 일정 기간 동안 신용거래가 불가능하거나 변제금을 납부하는 동안 최저 생계비로 생활을 해야 하는 등 금융 신용도와 생활에 있어 크게 제한받아 피해자들이 꺼려하는 방법이다.

결국 두 방법 모두 피해자들에게 또 한 번의 고통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던 중 야당이 지난해 12월 선구제 방식을 담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의결했지만, 그마저도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피해자와 야당 측은 “정부가 건설사 PF 위기 지원에는 혈세를 쓰면서 전세사기에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당정은 개인 간의 계약에서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구제해 주는 것은 전례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긴축 재정’ 기조까지 겹쳐져 당정의 반대는 더욱 거세다.

물론 한 정책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데 있어 다양한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때로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당정의 태도는 의아한 게 한 두개가 아니다. 정부는 ‘국민’인 피해자와 ‘협치를 약속한’ 야당을 눈 가리고 귀 막은 채 외면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개정안에 대해 대안책조차 내밀지 않는 정부의 모습은 그 역할을 의심케 한다.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올해를 ‘민생 회복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모든 부처가 국민 앞에서 벽을 허물고, 원팀이 돼 신속하고 확실하게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바란다”며 “건의된 사항들을 정책에 즉각 반영하고, 국민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쏟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어엿한 ‘국민’이고 ‘민생’을, 즉 ‘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를 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새해 들어 강조한 단어이기도 하다. 허울뿐인 다짐이 아니라면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게 맞다. 만일 당정이 선구제 방안이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면 또 다른 합당한 대안을 제시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지 않을까. 

이렇게 갈등만 하다가 결국 야당은 또 법안을 단독 처리하며 법안을 밀어붙일 것이고 당정은 대통령 거부권으로 응수할 것은 안 봐도 뻔하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민생 회복’이라는 기조 아래 뜰 ‘갑진년’의 진정한 청룡의 해를 맞이하려면, 불통이 아닌 정말 민생과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