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치사 혐의로 벌금 500만원·400만원
“일선 치안 고충 이해 못한 판결” 비판 비등

크리스마스인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서 경찰관들이 인파관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크리스마스인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서 경찰관들이 인파관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최근 한파 와중에 한 주취자가 집 앞에 방치돼 있다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관의 보호조치 의무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를 집 앞 계단까지 데려다 준 경찰관이 유죄 판결을 받아 경찰 내부에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는 것.

취객에 대한 보호조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일선 경찰관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은 지난 14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약식명령에 넘겨진 서울 강북경찰서 소속 A경사와 B경장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과 400만원을 선고했다. 

두 사람은 지난 2022년 11월 30일 오전 1시 28분경 술에 취해 길가에 누워있던 60대 남성 C씨를 강북구 수유동 소재 한 다세대 주택 문 앞까지 데려다줬다. 이들은 C씨를 집 앞 야외 계단 앞에 앉혀놓은 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이후 6시간 후 C씨는 사망한 채 발견됐다. 그 당시 서울에 한파 경보가 발령돼 있어 최저 기온이 영하 8.1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A경사와 B경장은 C씨를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를 받아 기소됐다. 피해자 유족 측은 두 사람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제출했지만 검찰은 지난해 9월 이들을 약식 기소했다.

이 같은 판결 내용이 알려지자, 일부 현장 경찰 및 관계자들은 내부게시판 등을 통해 지휘부에게 대책 마련과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법원이 실제 치안 현장의 고충을 면밀히 고민하지 않은 채 기계적인 판결을 했다는 주장이다.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관은 술에 취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 등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해당 법에는 어느 수준까지 주취자에게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대해서 구체적인 규정이나 지침이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 경찰 외에도 소방당국,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 체계나 역할 분담마저도 규정돼 있지 않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법인 주취자 보호법 4건이 6개월 넘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며, 주취자 처벌법 1건은 지난 2021년 4월 발의돼 약 3년 동안 계류 상태다. 주취자 보호법은 경찰, 소방당국, 지자체 및 의료기관 등 유관기관이 역할을 분담해 주취자를 보호하는 협업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휘부에 대한 현장 경찰관들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나오자, 윤희근 경찰청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5일 주재한 주간업무 회의에서 “청장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다양한 지원 방법을 강구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계자들에게 법무와 감찰, 범죄 예방을 포함한 관련 기능에 부족한 점이 없는지 논의해 줄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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