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대신 ‘선불형 교통카드’ 지급 내건 개혁신당
노인회 “건강·일자리 박탈하는 공약” 반발 나서
전문가 “차상위 계층 등 일부 유지…단계 거쳐야”

지난 11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열차가 운영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11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열차가 운영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이 소속된 개혁신당이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노인 무임승차 논란이 재점화됐다.

대한노인회를 중심으로 정책의 당사자인 노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한편, 지하철 운영기관의 누적된 적자와 고령화 추이를 봐서라도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2일 정치계에 따르면 개혁신당 이준석 정강정책위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만 65세 이상에 대한 지하철 무상 이용 혜택을 폐지하는 것이 골자인 ‘노인층 교통복지 공약’을 발표했다.

이 위원장은 “개혁신당은 노인복지법 제26조, 1항에 따라 65세 이상에게 제공되는 지하철 무상 이용 혜택을 폐지하겠다. 논쟁적일 수 있지만,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변화”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국가에서 맡아서 부담해야 하는 복지의 비용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매우 부적절한 행정의 사례다”며 “고연령층의 교통복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이 비용은 현재 대부분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부채로 남게 되며 미래세대에게 전가되고 있는 비용”이라고 주장했다.

현행 무임승차 제도가 지역 간 공정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도시철도가 운영되는 수도권,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지역에서는 혜택을 보는 분들이 있지만, 나머지 지역에 거주하는 고연령층에게는 그림의 떡과도 같은 제도”라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힘들어하는 고연령층이 무료라는 이유만으로 집 앞의 버스를 두고 먼 길을 걸어와서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는 현행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연간 12만원을 교통 카드 형태로 지원하겠다는 것이 개혁신당의 입장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기준 전국 950만명에 달하는 만 65세 이상 노인층에게 월 1만원에 해당하는 연간 12만원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며 “44년 전 교통카드의 형태로 제공되며 도시철도와 버스, 택시까지도 다 같이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대중교통이용이 빈번한 고연령층을 위해 12만원을 소진한 뒤에는 현재 청소년에게 적용되는 약 40%의 할인율을 적용한 요금으로 해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개혁신당은 연간 예상 비용은 올해 기준 약 1조2000억원으로 추산했으며, 이로 인해 지자체가 부담하던 교통복지 비용의 상당 부분을 국비로 전환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2월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우대용 무임승차권을 발급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2월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우대용 무임승차권을 발급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찬반 논쟁 이어온 무임승차

지하철 무임승차는 지난 1980년 만 70세 이상 노인들에게 지하철 요금 50%를 감면해 주는 것으로 시작해 지난 1984년 5월 노인복지 향상과 경로사상을 향상하기 위해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요금을 100%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제도가 정착됐다.

노인복지법 제26조 1항에 따르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65세 이상의 자에 대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수송시설 및 고궁·능원·박물관·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무료로 또는 그 이용요금을 할인해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인 지하철 공짜 탑승에 대한 찬반 논쟁은 지속돼 왔다. 현행 법에 따라 65세 이상이면 소득 등과 상관없이 모두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어서다. 여기에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재원 문제까지 더해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무임승차 제도가 시행된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4% 미만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9.0%까지 오르며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달 발표된 통계청의 ‘장래 인구추계: 2022~2072년’를 살펴보면 내년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오는 2025년 전체 인구 중 노인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여기에 도시철도를 운영 중인 지자체의 적자도 점차 가중되고 있다. 서울 지하철 운영기관인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년층 무임승차인원은 총 2억2113만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2년에 서울교통공사가 노인 무임승차(1억9664만명)로 입은 손실금은 무려 3152억원이다.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전국 도시철도 운영 지자체 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지난 2021년 당기 순손실은 1조6000억원으로,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전인 지난 2019년 대비 50% 늘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꾸준히 국비지원을 촉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하철이 있는 지자체만 무임승차 비용을 지원할 경우, 지하철을 운영하지 않는 지역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쌓여가는 적자에 서울시는 요금 인상을 택했다. 지난해 10월 지하철 기본요금을 150원 인상한 서울시는 오는 7월에도 150원을 추가로 올릴 방침이다.

“학대하는 주장”…노인층 반발↑

대한노인회는 무임승차 폐지 관련 발표가 난 당일 즉각 성명서를 내 개혁신당을 비판했다.

대한노인회는 김호일 회장 명의의 성명서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노인에 대한 우대는커녕 학대하는 주장”이라며 “신당이 아니라 패륜아 정당을 만들겠다는 망나니 짓거리라 질타하며 1000만 노인들은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혁신당이 언급한 도시철도 적자 문제에 대해서는 “승객이 탔든 안 탔든 같은 전기료가 발생한다”며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빈자리가 많은 상태로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는데, 그 빈자리에 노인이 탔다고 해서 전기료가 더 나오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대한교통학회의 ‘지하철적자요인분석’ 보고서에도 지하철 적자 요인하고 노인 무임승차 하고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밝힌 보고서가 입증하고 있다”며 “지난 2022년 기준 8159억원 적자 주장은 지하철을 이용한 노인 수에 요금을 곱한 이론적 숫자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노인회는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가 노인들이 집에 있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에 걷기 운동으로 건강해지는 것을 간과했고, 지하철 무임으로 노인들이 삼삼오오 벗하며 여행하는 행복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무임승차로 소품을 배달하는 수많은 노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폐지 대안으로 제안한 ‘연 12만원 선불 교통카드 지급’에 대해서는 “지하철을 이용하지도 않을 사람에게도 배분되는 모순적 발상”이라고 대응했다.

대한노인회의 성명문이 발표되자, 이 정강정책위원장은 곧바로 자신의 SNS에 “피드백 감사하다”며 “수도권이나 역세권에 계신 노인뿐 아니라 더 넓은 범위에서 교통복지가 보편화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많은 정책을 내겠다”고 답변했다.

실제 노인들의 기대수명이 높아짐에 따라 이들의 연령 기준을 상향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급격한 변화보다는 단계적인 ‘사회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여대 정재훈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사회 변화에 따라 노인 무임승차 개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적인 폐지는 지양해야 한다”며 “노인 가운데 저소득층, 긴급복지지원 대상자 등에게는 무임승차를 유지하는 등 소득별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연간 12만원을 지원하는 선불형 교통카드는 이동권 제한, 지원 금액을 전부 쓰지 않는 것에 대한 보상 등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사용한 만큼 정산해 주는 식의 카드 도입 등 다각도의 제도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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