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nbsp;<br>
▲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한파가 전국을 헤집어 놓고 있는 최근. 온몸이 꽁꽁 얼 것만 같은 혹독한 추위에도 거리로 나서 목놓아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국가공무원, 다른 이름으로는 선거사무공무원이 ‘될 수밖에 없는’ 공무원들이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하 공노총)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비롯한 전국 공무원단체가 추운 날씨에도 불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획재정부 청사 앞에 선 이유는 오는 4월 10일 예정된 제22대 총선 시 선거사무를 담당할 자신, 그리고 동료들을 위해서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과거부터 공무원들은 선거 현장에 투입돼 사전 준비부터 개표, 이후 정리는 물론 벽보 부착, 홍보지 포장 등 사소한 일까지 처리해 왔다. 하지만 점점 업무가 과중화되자 공무원들은 개선을 외쳤고, 이에 정부가 급히 민간 활동가를 투입하는 등 요구를 들어주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정부는 오는 4월 총선에서 부정선거 논란을 일축하고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목적으로 수개표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일이 투표용지를 확인해야 하는 작업이 추가된 만큼, 이번 총선에 대규모 공무원 인력 동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미 공무원들은 법정 공휴일인데도 선거사무에 희생해야 하는 것은 물론 노동 강도 대비 낮은 수당에 대해 불만이 많던 상태였는데, 여기에 수개표 업무까지 떠맡게 됐다.

수당은 더 착잡하다. 정당이 추천하는 투표 참관인은 6시간에 10만원을 받는 반면, 공무원 등 투표 사무원은 14시간 13만원을 지급받는다. 새벽에 출근해 밤이 새도록 강도 높은 노동을 해도 수당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니, 그 대가가 한참이나 밑도는 셈이다.

그래서 이들은 무조건적인 ‘희생 강요’를 막기 위해 혹에도 기꺼이 거리로 나섰다. 공무원들은 선관위에 △부정선거 명분을 앞세운 수검표를 위해 공무원 선거사무 강제 동원 반대 △최저임금과 연동한 선거사무 수당지급 △투개표사무업무 민간 참여 비율 확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달 직접 방문한 기자회견 현장에서 공무원들은 “우리는 무조건 명령어를 입력하면 일을 하는 기계나 AI가 아니다”며 “강제 동원을 앞세워 희생을 강요하지 말고 노고를 진정으로 치하하고,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먼저 표해야 한다”고 선관위를 향해 외쳤다.

특히 취재 중에 만난 공노총 석현장 위원장은 “주로 밤샘 작업을 하는 개표 업무에는 젊은 공무원들이 많이 가는 편이고, 관리·감독은 6급 선임 등이 주로 담당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데 쉽게 발 내디딜 청년들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공무원 지원률은 점차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 채용시험 평균 경쟁률은 21.8대 1로 지난 1992년(19.3대 1) 이후 32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앞서 정부가 보수 인상, 성과급, 특별 승급제도 등의 카드까지 내밀며 이탈률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보여주기식’ 제도라는 평가가 잔재한다. 언뜻 보면 공무원의 처우를 적극 개선하려는 정부처럼 보이지만, 정작 공무원들이 오랜 시간 외치고 있는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으니 ‘공무원 인기 하락’은 당연한 결과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 낮은 임금, 악성 민원 응대 등 인기 하락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공무원 처우 개선에 대한 정부의 무심한 태도도 한몫하지 않을까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 불린다. 시민이 자신의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기회이자 정당한 주권을 행사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해당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꽃’이라는 아름다운 별칭 뒤에 가려진 실상은 고되고 처량하다. 국가가 말하는 그 꽃이 활짝 피어나기 위해서는 일선 현장에서 구슬땀 흘리는 선거사무공무원의 주권도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들도 ‘공무원’이기 전 민주주의의 꽃을 누릴 수 있는 ‘시민’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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