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사진 [사진제공=(주)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사진 [사진제공=(주)레미제라블코리아]

“그 누군가를 사랑하면 신의 얼굴을 보리”

사랑은 인간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의 일을 가능케 하는가 하면, 아름답고 고결한 모습으로 나타나 큰 감동을 준다. 또 사랑은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는 의지가 되고, 목숨 바쳐 싸워도 아깝지 않을 용기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희생 역시 감내하게 만든다. 이렇게 인류애에 기반한 고차원의 감정들이 갖가지 사연과 어울려 깊이를 더한 작품이 바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이다. 고된 삶의 마지막을 앞둔 순간, 가장 소중히 여긴 존재에게 전한 참회록은 모두를 위한 메시지처럼 다가온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어느덧 서울 공연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해 부산 공연을 마친 후 11월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로 자리를 옮긴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더해가는 깊이와 무한한 감동을 선사하며 찬사받고 있다. 특히 이번 공연은 한국 공연 10주년을 맞이한 시즌이자, 지난 2015년 재연 이후 무려 8년 만에 올라온 무대라 더욱 소중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레미제라블’인 만큼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최정예 배우들도 함께 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뮤지컬 배우 민우혁과 최재림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장발장 역을, 김우형과 카이가 그런 장발장의 뒤를 쫓는 원칙주의 형사 자베르 역을 맡았다. 그리고 조정은과 린아는 판틴 역을 맡아 어둠 속 희망을 노래하며 임기홍, 육현욱, 박준면, 김영주, 김성식, 김진욱, 김수하, 루미나, 윤은오, 김경록, 류인아, 이상아 등이 뜨거운 에너지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로부터 시작해 시대를 관통하는 대작 뮤지컬로 자리 잡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의 대표작이라 불린다. 흔히 4대(Big 4) 뮤지컬이라 부르는 메가 뮤지컬 중 하나로서, 지금껏 많은 사랑을 받으며 명작 중의 명작 반열에 오른 뮤지컬이다. 작곡가 클로드 미셸 숀버그, 작가 알랭 부블리 콤비가 호흡을 맞춘 이 작품에는 사랑과 용서, 희생, 자유 등 인간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들이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녹아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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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사진 [사진제공=(주)레미제라블코리아]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이란 제목은 프랑스어로 ‘비참한 사람들’ 또는 ‘불쌍한 사람들’을 뜻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수많은 비극이 담겼다. 원작의 방대한 분량은 곁가지를 과감히 잘라내어 무대 맞춤형 인물 중심 스토리로 거듭났다. 우리에게 ‘성공한 혁명’이라 기억된 프랑스 혁명에는 크나큰 좌절과 실패의 기록도 분명 존재했다. 이처럼 격변과 혼란에 휩싸인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를 밝히기 위해 곳곳에서 애쓰는 인물들의 모습은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온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도 혁명의 불씨는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몰랐다. 절대 군주에 의한 정치 지배와 철저한 신분제 사회 속에 불평등은 계속됐고, 곤궁했던 삶 역시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의 중심인물인 장발장은 그런 평민들의 삶을 대표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그는 굶주린 조카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빵을 훔쳤다는 이유로 처음 붙잡혔다가 무려 19년에 걸친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오랜만에 마주한 바깥세상은 가석방 중이던 장발장에게 그저 차갑기만 했다. 다행히 한 주교로부터 도움을 받아 따스한 지붕 아래 잠시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미 절망을 경험한 그는 주교의 호의를 배신하고 깊은 밤 은으로 된 식기를 몰래 훔쳐 달아나다 또다시 붙잡힌다. 하지만 주교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이 준 선물이 맞다면서 오히려 장발장이 남겨두고 간 은촛대를 장발장의 손에 쥐어준다. 주교의 마음에 크게 감동하며 가책을 느낀 장발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되묻는다. 사랑에 배신당한 뒤, 홀로 어린 딸 코제트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판틴을 도운 일도 속죄의 마음으로부터 기인한다. 소설에는 그러한 과정이 매우 자세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적혀있지만, 뮤지컬은 이를 자연스럽게 압축해 펼쳐낸다.

위대한 포용과 사랑의 경험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이루는 중심축이 된다. 그러나 위기는 계속해서 찾아온다. ‘한 번이라도 범죄를 일으킨 자는 영원한 범죄자’라며 자신만의 굳은 신념을 품고 끝까지 장발장을 추격하는 형사 자베르의 압박은 언제 드러날지 모를 그림자처럼 남아 불안감을 더한다. 여기에 앙졸라를 필두로 새 세상을 만들겠다던 학생들의 혁명 의지는 붉은 깃발을 앞세운 바리케이드가 되어 불타오르고, 극한 상황 속에 펼쳐진 청춘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도 깊은 인상을 준다. 뮤지컬은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낮은 시선에서 바라보며 혁명 이면에 숨겨진 모습과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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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사진 [사진제공=(주)레미제라블코리아]

무대를 상당히 어둡게 연출해서 상대적으로 무대 위에 선 인물들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점도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다. 보기에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절망의 시대를 살아간 이들과 그들이 걸어간 삶의 길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역사에 남겨진 대로 결국 실패로 끝난 봉기였으나 민중들이 남긴 발자취는 실로 대단했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갔던 당대 사람들은 저마다 빛을 내며 뚜렷한 이미지로 각인된다. 특히 바리케이드 최후 장면은 조명 활용을 매우 탁월하게 함으로써 작품의 비극적 정서를 더하는 장치다.

같은 배역도 자신만의 색깔로 완성한 배우들의 열연 역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힘이다. 배우들은 각자 해석에 따라 맡은 캐릭터가 갖춰야 할 기본은 확실하게 보여주면서 한 걸음 더 깊숙이 나아갔다. 이전 시즌에서 활약했던 배우들과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의 조화도 돋보인다. 한층 더 젊어진 작품은 고전 명작의 기품과 감동을 유지하면서 무대가 품은 재미 또한 놓치지 않았다. 무대 위를 잘 살펴보면 특정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장면마다 다른 역할로 등장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과연 어떤 장면에서, 어떤 배우가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의 눈을 교묘히 피하고 있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 최윤영 공연 칼럼니스트·아나운서<br>-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br>-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br>-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br>-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br>
▲ 최윤영 공연 칼럼니스트·아나운서
-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다만 음향만큼은 조금 더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좌석 위치나 공연장 구조로 인한 한계일 수도 있으나, 유독 이 작품에서는 가사 전달이나 소리 울림이 잘 잡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Bring Him Home’, ‘I Dreamed a Dream’, ‘On my Own’, ‘Do You Hear the People Sing?’, ‘One Day More’ 등 워낙 아름다운 명곡들이 많이 담긴 뮤지컬인데다, 넘버들이 극 몰입을 더 극대화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또 노래로 스토리를 이끄는 성스루 뮤지컬(Sung-through Musical) 특성상 뮤지컬 관람에 익숙지 않은 관객에게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배려가 더 필요해 보인다.

이처럼 기대감을 드높인 뮤지컬 ‘레미제라블’ 서울 공연은 오는 3월 10일까지 계속되고, 3월 21일부터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남은 여정을 이어간다.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시기, 사랑으로 쓰인 희망의 노래가 당신의 오늘을 환히 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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