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lt;오페라의 유령&gt; 중 지하미궁 장면(조승우, 손지수).[사진제공=에스앤코]<br>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지하미궁 장면(조승우, 손지수).[사진제공=에스앤코]

묵직한 천으로 온갖 경매 물품을 뒤덮은 극장. 그곳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경매가 시작되길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곧이어 경매사가 오래된 경매품을 하나씩 공개하자 저마다 사연이 담긴 물건들은 차례로 새 주인에게 인계된다. 양손에 심벌즈를 든 원숭이 뮤직박스가 경매대에 오르자 한 노신사와 부인이 응찰 의사를 밝히고, 결국 물건은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노신사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는 ‘경매번호 666번 : 부서진 샹들리에’의 경매가 개시되는데, 이때 경매 물품에 얽힌 놀랍고도 끔찍한 사연이 같이 전해진다.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는 많은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과거 오페라 하우스의 유령 이야기 속으로 다시금 모두를 이끈다. 경매사의 설명이 끝난 뒤 천이 걷히자, 문제의 샹들리에는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며 환한 조명을 켠 채 힘차게 날아오른다. 아마도 ‘오페라의 유령’ 무대가 계속되는 이상, 이 느낌을 대체할 순간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기대와 환희, 놀라움이 뒤섞인 감상은 한 번쯤 꼭 경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만큼 대단하고 또 강력하다.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유령의 노래가 부산을 감동으로 물들이고 있다. 가면 뒤에 숨겨진 슬픈 영혼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바로 그 주역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한국 뮤지컬 산업의 본격적인 성장을 도모한 작품이다. 프랑스 추리 소설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원작소설(1910년 작)에 기반해 탄생한 뮤지컬로,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캐머런 매킨토시가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만들었다. 1986년 영국 웨스트엔드 허 마제스티 극장(Her Majesty's Theatre)에서 첫 무대를 올린 ‘오페라의 유령’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대중에게 잘 알려진 뮤지컬 대표작이 됐다. 클래식한 무대와 흥미로운 스토리, 화려한 의상, 주옥같은 넘버를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는 점은 작품을 오래도록 사랑받게 한 원동력이다.

작품 자체가 갖는 의미나 상징성도 남다르다. 2001년 LG아트센터에서 선보였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은 당시 무려 24만명에 이르는 관객을 모을 정도로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아직 국내 뮤지컬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는 엄청난 가능성을 증명한 것과 다름없었다. 실제로 한국 뮤지컬 시장은 ‘오페라의 유령’이 성공한 이후부터 새로운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국내에서 월드 투어 팀의 공연을 통해 ‘오페라의 유령’을 만날 기회는 종종 있었으나, 그동안 한국어 공연은 단 두 번밖에 이뤄지지 못했다. 워낙 규모가 큰 프로젝트인데다 그만큼 관객 수요가 충분히 확보돼야 했고, 무엇보다도 이 모두를 완벽하게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배우들과 스태프가 반드시 함께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2009년 이후 무려 13년 만에 돌아온 이번 라이선스 한국어 공연은 더욱더 소중히 여겨질 수밖에 없다. 원어로 만나는 공연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우리말로 바꿔 부른 노래는 확실히 직관적이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기 쉬워서, 각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는 데 훨씬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도 누구나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오페라의 유령’은 초연 오리지널 무대 세트 디자인과 스케일을 그대로 살린 무대로 준비됐다. 마리아 비욘슨의 오리지널 디자인이 담긴 고풍스러운 전용 극장 세트와 소품들, 220여 벌에 이르는 의상은 오늘날 더욱 향상된 기술과 만나 화려하게 빛난다. 객석 위로 곤두박질치는 1t 무게 샹들리에 연출만 보더라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생생함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이밖에 시대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린 분위기와 극장의 장점을 잘 활용한 음향, 부드러운 속도감이 느껴지는 배경 전환,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특수효과 등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만이 가진 자랑이다.

뮤지컬 &lt;오페라의 유령&gt; 중 가면 무도회 Masquerade(손지수, 황건하) 장면.[사진제공=에스앤코]<br>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가면 무도회 Masquerade(손지수, 황건하) 장면.[사진제공=에스앤코]

오랜만에 올라온 한국어 공연답게 누가 과연 유령의 가면을 거머쥘지도 큰 관심을 끌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 배우들에게 늘 꼭 한 번 도전하고 싶은 ‘꿈의 배역’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승우, 최재림, 김주택, 전동석이 ‘유령’ 역을 맡게 됐다. 그중 최재림은 오는 7월에 시작될 서울 공연부터 합류한다.

유령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고의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역에는 손지수, 송은혜가 낙점됐다. 그리고 그런 ‘크리스틴’의 연인으로, ‘유령’과 팽팽한 삼각관계를 이룰 ‘라울’ 역은 송원근과 황건하에게 돌아갔다. 이밖에 윤영석(앙드레 역), 이상준(피르맹 역), 이지영(칼롯타 역), 김아선(마담 지리 역) 등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이끌어간다. 워낙 대단한 실력을 지닌 배우들이다 보니 어떤 회차로 보더라도 만족스럽지만, 유령 역을 맡은 배우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회차별로 배역을 달리해 관람해보길 추천한다.

그중 조승우의 유령은 그가 이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을지 느껴질 정도로 섬세했다. 손끝까지 전해진 떨림, 디테일이 살아 숨 쉬는 연기, 매력적인 음색에 담겨 전해진 감정들은 가면에 가려진 표정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다가왔다. 사랑과 질투, 열등감 등 복잡한 유령의 내면을 무대 위로 천천히 펼쳐낸 조승우는 그가 왜 이 작품을 꼭 해야만 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크리스틴’ 역 소프라노 손지수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다채로운 표현력 덕분에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성악가로, 뮤지컬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배역 이미지와 완벽한 어울림을 선사한 그는 기대만큼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며 ‘뮤지컬 배우’ 손지수의 성장을 기대하게 했다.

▲ 최윤영 공연 칼럼니스트·아나운서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라울’ 역을 맡은 송원근도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캐릭터를 멋지게 선보였다. 그동안 다수의 작품에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였던 그답게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듬직하면서도 확신에 찬 연기와 안정적인 발성은 공포에 사로잡힌 크리스틴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유령에 대적하는 젊은 자작의 패기를 팽팽히 보여줬다.

지난 3월 30일부터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오는 6월 18일까지 예정된 지역 공연 일정을 이어간다. 이후 7월 21일부터 서울 샤롯데씨어터로 자리를 옮겨 11월 17일까지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일 계획이다. 클래식 뮤지컬의 영원한 스테디셀러 한국어 버전을 가까이에서 만날 기회를 꼭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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