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공연 장면. [사진제공=쇼노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공연 장면. [사진제공=쇼노트]

사회 저변에 깔린 편견과 혐오는 언제나 잠재된 집단 갈등의 씨앗이 됐다. 이런 상황은 어디에나 존재했고, 어떤 특정 집단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 더욱 커다란 문제라 여겨졌다. 배타적으로 인식된 집단은 매번 달랐다. 때로는 종교 집단이, 때로는 주류 문화에서 벗어난 소수자나 특정 민족 공동체가 대상이 됐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다행히 과거에 비해 우리 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범위도 꽤 늘었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앓아온 몸살이 빠르게 낫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가운데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이런 사회적 문제의 일면을 때마침 무대로 가져왔다. 병든 씨앗이 싹을 틔워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오늘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야기에 다시금 귀 기울여 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설 중의 전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17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이번 공연은 아주 오랜만에 새 프로덕션인 쇼노트의 손을 잡고 돌아오면서 마련됐다. 작품이 가진 고전미를 살리면서도 요즘 관객들의 달라진 눈높이에 따라 세련된 감각을 더해 선보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시대를 넘나든 감성으로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일찍이 각 캐릭터와 완벽히 어울린 캐스팅도 주목받았다. 먼저 폴란드계 이민자 출신 주인공 토니 역에는 김준수, 박강현, 고은성이 캐스팅됐고 토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마리아 역으로는 한재아, 이지수가 낙점됐다. 또 ‘제트파’ 리더이자 토니의 절친한 친구 리프 역에 레오, 배나라, ‘샤크파’ 리더이자 마리아의 오빠인 베르나르도 역에 김찬호, 임정모가 함께 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베르나르도의 연인 아니타 역은 김소향과 정유지가 맡았다. 그중에서도 김소향은 15년 만에 다시 아니타가 되어 더욱더 사랑스러우면서도 깊이 있는 무대를 선사해 커다란 박수를 이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공연 장면. [사진제공=쇼노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공연 장면. [사진제공=쇼노트]

어느덧 고전 뮤지컬의 반열에 오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아서 로렌츠와 레너드 번스타인, 스티븐 손드하임, 제롬 로빈스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모여 완성한 작품이다. 이처럼 대단한 창작진이 힘을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형식과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 때문에 의외로 기대만큼 주목받지 못했다던 제작 초반 이야기는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에너지 넘치는 춤과 고풍스러우면서도 독창적인 음악, 현실과 너무나 닮은 극 중 설정과 생생한 표현에 빠르게 매료됐다. 덕분에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5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으며, 폭증하던 사회 문제를 토대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이후 1958년에는 영국 웨스트엔드로 넘어가 평단으로부터 극찬받기도 했다.

영화계 역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작품은 1961년 뮤지컬 연출자인 제롬 로빈스와 로버트 와이즈에 의해 동명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12월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로 다시 한번 재해석해 커다란 이슈를 모았다.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첫 번째 뮤지컬 영화 도전작이기도 했다. 비록 영화를 향한 평은 엇갈렸지만, 이러한 시도는 오랫동안 사랑받은 작품을 다시금 주목받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이를 한국 제작진이 새롭게 해석했다. 덕분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지점은 완화되고, 원작이 담은 직접적인 표현들도 적당한 무대 언어로 바뀌었다. 그만큼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세심하게 고심했을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50년대 찬란했던 여름의 끝자락을 배경으로 한다. 극에서는 미국 뉴욕 웨스트 사이드 지역 백인 청년 갱단 ‘제트’와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 갱단 ‘샤크’가 팽팽하게 대립한다. 실제 당시 뉴욕에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뿐만 아니라 유럽으로부터 유입된 이민자들까지 비슷한 시기에 모여들어 심각한 갈등을 빚는 일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청소년 집단 충돌도 심각했다. 즉, ‘샤크’와 ‘제트’가 영역 다툼을 하며 대립하는 모습이 크게 낯설지 않았던 셈이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공연 장면. [사진제공=쇼노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공연 장면. [사진제공=쇼노트]

창작진은 이런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기로 결심하면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자연스럽게 접목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탄생시켰다. 그만큼 두 작품은 닮은 점이 상당히 많다. 우선 ‘샤크’와 ‘제트’ 간 갈등은 마치 원수 가문이었던 ‘몬태규 가’와 ‘캐플릿 가’ 사이를 보는 듯하다. 또 서로에게 첫눈에 반해, 남몰래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던 어린 연인의 모습이나 더 이상 조직 생활에 참여하길 원하지 않던 토니가 사랑하는 마리아를 위해 두 집단의 싸움을 저지하러 간 뒤로 벌어지는 일들 모두 마찬가지다. 여기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지만 결국 차디찬 현실의 벽과 마주하고 마는 아니타 이야기와 비극의 불씨가 된 거짓말까지 더해지면서 극은 절정을 향한다. 결국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회가 포용하지 못한 이방인들 간의 다툼과 희생 끝에 피로 얼룩진 결말을 맞이하지만, 사실상 그 너머를 바라본다.

이런 이야기는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음악들 덕분에 또 한 번 빛난다. 특히 ‘Tonight’, ‘The Dance at the Gym’을 대표로 한 레너드 번스타인의 명곡은 영화 음악과 뮤지컬 음악 공연에 가면 반드시 만나게 될 만큼 대중에게도 잘 알려졌다.

또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는 춤이 가진 비중 또한 상당하다. 발레, 재즈, 맘보, 스윙 등 장르도 다양하다. 특히 토니와 마리아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뤄진 댄스파티 장면은 주조연 배우와 앙상블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각인된다.

실감 나는 세트 역시 몰입도를 높인다. 무대는 어두컴컴한 뒷 골목이었다가 한순간에 토니가 일하는 가게로, 또 잠시 후에는 마리아와 아니타가 일하는 웨딩드레스 가게로 전환한다. 영상미는 이런 공간적 변화를 더욱더 자연스럽게 잇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br>-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br>-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br>-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br>-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작품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내달린 청년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 너머 어딘가에 반드시 희망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어쩌면 현실이 무대보다 훨씬 더 냉혹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함께 뛰어넘어야만 달라진 내일과 마주할 수 있다. 결국 언제나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 화합이 전제돼야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연은 오는 2023년 2월 26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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