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일 테노레>공연사진 [사진제공=오디컴퍼니(주)]
뮤지컬 <일 테노레>공연사진 [사진제공=오디컴퍼니(주)]

잘 만든 창작 뮤지컬은 곧 한국 뮤지컬의 미래를 상징한다. 그러나 대내외적으로 커다란 성장을 거듭한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아직 ‘온전한 우리 것’의 비율이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은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아쉬움도 걷어낼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오랜 기간 탄탄하게 쌓아온 제작 노하우와 빛나는 아이디어, 뛰어난 실력을 지닌 배우가 만나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첫 번째 피날레를 앞둔 한국 창작 뮤지컬 ‘일 테노레(lL TENORE)’가 바로 그 주역이다.

이탈리아어로 ‘테너’를 뜻하는 ‘일 테노레’는 한국 오페라 역사를 개척한 인물이자 ‘동양 제일의 테너’라 불린 이인선(1906~1960)의 삶을 모티브로 제작된 픽션이다. 작년 12월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정식 프리뷰를 올리며 개막한 오디컴퍼니의 신작으로, 개막 전부터 커다란 관심과 기대감을 모은 뮤지컬이기도 하다. 집안의 바람에 따라 의학 공부를 하던 내성적인 의대생 윤이선이 우연히 오페라를 접하게 되면서 조선 최초 오페라 테너를 꿈꾼다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데, 여기에 항일 독립운동을 이끌던 학생 독립운동가 서진연과 이수한의 사연이 어울려 마치 한 편의 오페라 같은 청춘을 그려낸다. 섬세한 묘사와 세련된 표현으로 사랑받는 작가 박천휴와 작곡가 윌 애런슨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작품은 화려한 무대와 어두웠던 시대를 자연스럽게 대비하며 감상의 폭을 확장했다. 또 역사적 사건이나 비극적 상황을 애써 강조하려고 하기보다, 저마다 꿈꾸고 애를 쓰며 사랑하는 일에 아낌없는 인물들을 더 부각함으로써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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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일 테노레>공연사진 [사진제공=오디컴퍼니(주)]

1930년대 조선의 현실은 참으로 암담했다. 제국주의 확장을 거듭하며 민족말살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일본의 통치 체제 전환 때문에 우리는 우리 말과 글, 역사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당하기에 이른다. 뮤지컬 ‘일 테노레’에 등장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일제의 눈을 피해 항일 독립운동을 준비하던 문학회 학생들은 계속된 감시와 압박으로 인해 계획했던 활동이 모두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이름도 낯선 ‘오페라’가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다. 금지되지 않은 것을 찾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 것이 아닌 오페라는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꿈을 키우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던 ‘꿈꾸는 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 아름답고 슬프게 다가온다.

화려한 오페라 무대 뒤편에는 감춰야만 했던 땀과 눈물이 있었다. “왜 날 때부터 우리는 희생만 해야 하느냐”던 아픈 물음에 ‘희생은 우리 몫’이기 때문이라 담담히 답하던 진연의 말은 순간 송곳처럼 박혀 울컥하게 한다. 그저 당연하다 여겨진 희생은 꿈꾸는 일조차 사치인 것처럼 느끼게 했고,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목숨조차 내 것이 아니라 여겨야 했다. 그때는 그래야만 하는 세상이었다. 실패조차 용납하지 않는 단 한 순간, ‘난폭하고 미친 세상’에서 조심스레 품어본 꿈의 무게는 현실과 이상의 사이 그 어디쯤에서 학생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그리고 끝내 마주하게 된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망설임도 없이 각자 자신의 길로 달려 나가는 모습은 오페라가 끝난 후에도 오랜 잔상으로 남아 진한 감동을 준다.

오페라의 특징과 뮤지컬 음악 스타일을 적절히 배합해 만든 넘버는 뮤지컬 ‘일 테노레’의 강점 중 하나다. 작품은 메인 테마인 ‘Aria 1: 꿈의 무게’, ‘Aria 2: 그리하여, 사랑이여’를 적절히 변주해 각 장면에 어울리도록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단순하게 반복되는 아리아가 계속해서 귓가를 울리며 작품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형성한다. 또 오케스트라 구성에 현악기의 비중을 늘려 주된 정서에 깊이감을 더했다. 풍성하면서도 예리하게 파고드는 현의 울림은 순간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 최윤영 공연 칼럼니스트·아나운서<br>-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br>-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br>-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br>-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br>
▲ 최윤영 공연 칼럼니스트·아나운서
-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보이스과 교수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뮤지컬 ‘일 테노레’가 웰메이드 창작 초연으로 극찬받기까지는 작품을 함께 만들어 온 배우들의 공도 컸다. 특히 3인 3색으로 펼쳐진 ‘윤이선’의 매력은 뮤지컬 ‘일 테노레’를 다차 관람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이번 초연에는 홍광호와 박은태, 서경수가 윤이선 역을 맡았다. 그중에서도 홍광호는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인물의 모습을 또렷하게 그려내면서 힘이 넘치는 발성과 세밀한 표현력으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탄탄히 구축했다. 굳건한 믿음으로 문학회를 이끄는 리더 서진연 역은 김지현과 박지연, 홍지희가 맡았으며, 오페라 공연의 무대 디자이너로서 뜨거운 심장을 품고 문학회 활동에 임하는 건축학도 이수한 역은 전재홍, 신성민이 연기한다. 각 배우가 해석한 캐릭터를 마주하는 재미와 감동도 있지만, 캐스트에 따른 조화가 주는 느낌이 또 달라서 자꾸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창작 초연 뮤지컬 ‘일 테노레’는 오는 2월 25일까지 계속된다. 비로소 무대가 객석을 향하고, 마지막 순간을 앞뒀을 때 밀려든 감정은 직접 경험해 봐야 할 만큼 값지다. 뮤지컬 ‘일 테노레’가 선사할 감동의 피날레에 꼭 함께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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