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증가로 신탁계정대 잔액 4조800억원
업계1위 한국토지신탁, 신용등급 한 단계 ‘하향'
신탁사, 고정이하자산 전년동기 대비 1.78배↑
“지방 분양 비중 높아 실질 위험 더 높을 것”
금융당국, 충당금 적립 실태 일제 점검 나서

[사진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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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부동산 시장 침체 영향으로 신탁사들의 신탁계정대여금(이하 신탁계정대)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로 자산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대손충당금 상향 압박을 가하고 있어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러한 여파로 국내 부동산신탁사 중 가장 자본력이 높은 한국토지신탁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PF발 리스크가 신탁사로 전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탁계정대여금 추이 [사진출처=한국은행 금융통계정보시스템, 투데이신문 편집]
신탁계정대여금 추이 [사진출처=한국은행 금융통계정보시스템, 투데이신문 편집]

치솟는 신탁계정대...역대 최고치

15일 한국은행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14개 부동산 신탁사의 신탁계정대 잔액은 약 4조8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중 한국토지신탁의 신탁계정대는 약 8000억원으로 전체의 20% 비율을 차지한다. 

신탁계정대는 신탁사가 사업비 조달을 위해 자신의 고유계정에서 신탁계정으로 대여한 자금으로 사업장의 책임 준공을 위해 신탁사가 투입하는 자금이다. 예를 들어 시공사가 기한 내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경우 일단 신탁사가 자금을 투입해 준공을 마무리하고 분양대금을 돌려받는 형식이다. 

따라서 신탁계정대의 빠른 증가세는 자산 건전성 부담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로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미분양 사업장 증가와 미착공 사업장에 대한 초기사업비 투입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신탁사들의 신탁계정대 증가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전년동기 대비 약 2.5배 수준의 증가율을 보였다. 증가율이 가장 높은 신탁사는 신한자산신탁으로 2022년말 기준 약 200억원에서 약 1423억원으로 약 7배로 불어났다. 이는 신탁사가 사업비를 직접 조달해 건물을 짓는 방식인 차입형 신탁의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특히 책임준공형 사업장 비중이 가장 높은 KB부동산신탁은 같은 기간 약 5050억원으로 전년동기(1813억원) 대비 약 2.8배 급증했다. 차입형과 책준형 신탁은 신탁사가 시행사에 자금을 대여해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통상 신탁계정대 증감에 영향이 크다.

한 신탁업계 관계자는 “미분양 사업장이 늘어날수록 신탁계정대 자금 투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고금리, 공사비 상승 등 비우호적인 업황을 고려하면 신탁계정대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특히 시장의 기대보다 미뤄지는 금리 인하 시기와 부동산 PF 대출 심사 강화 조치로 재무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사진출처=한국토지신탁]
[사진출처=한국토지신탁]

자산 건전성 빨간불...한국토지신탁 신용등급 ‘강등’

고정이하자산 비율도 급증하면서 자산건전성 지표가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분양 사업장에 대한 조치로 신탁계정대를 투입한다고 해도 미분양 리스크가 지속된다면 회수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산건전성 지표는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구분한다. 고정이하여신은 통상 부실채권(NPL)로 분류한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14개 부동산 신탁사의 고정이하자산은 약 2조267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동기(약 1조2733억원) 대비 약 1.78배 늘어난 수준이다. 신탁사 가운데 고정이하자산 규모가 가장 큰 곳은 한국토지신탁으로 약 439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7일 한국신용평가는 한국토지신탁에 대해 고정이하자산 규모 증가와 낮은 대손충당금 적립, 실적 저하 등을 이유로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 부정적’에서 ‘A- 안정적’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금융·구조화평가본부 금융1실 위지원 실장은 한국토지신탁에 대해 “부동산 경기 저하로 고정이하자산 잔액이 부동산신탁사 중 가장 큰 수준임에도 충당금 적립 수준은 경쟁업체 대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자본 건전성뿐만 아니라 실적도 악화되고 있다. 이날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따르면 한국토지신탁은 지난해 연결 당기순손실 44억원을 기록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매출은 전년대비 27.9% 증가한 2723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37.1% 감소한 336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0년 이후 가장 저조한 실적으로 차입형 개발신탁 수주 감소와 금리상승으로 인한 이자 비용 증가, 대손비용 확대 등에 기인한다.

2023년 12월 기준 전국 미분양 현황 [사진출처=국토교통부]
2023년 12월 기준 전국 미분양 현황 [사진출처=국토교통부]

증가하는 미분양...신탁사, 올해가 고비

시장에서는 신탁사들이 올해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책준형 사업장 만기 대부분이 올해 몰려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분양 추이가 리스크의 크기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미분양 비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방의 경우 개발형 신탁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시행사에 사업비 조달 의무가 있는 관리형 신탁과 달리 개발형 신탁인 차입형, 책준형 신탁은 미분양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신탁사가 떠안게 된다.

한국기업평가는 “신탁사 참여 사업장 분포상 수도권 외 지역 비중이 높아 실질 분양위험은 더  높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사업장별 분양률 관리 수준과 신탁계정대의 회수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2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은 6만2489가구로 전월(5만7925가구) 대비 약 8% 증가했다. 전국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1월 기준 약 7만5000여가구로 정점을 보인 뒤 감소추세를 보이다 지난달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특히 지방 미분양이 5만2458가구로 전국 미분양 물량의 84%를 차지했다.

준공 후 미분양도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준공 후 미분양은 1만8576가구로 전년동기(7518가구) 대비 44.4%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준공 후 미분양도 전체의 80%가 넘게 지방에 몰려있다. 

이렇듯 부동산 PF 리스크가 신탁사로 전이될 우려가 높아지자 금융당국이 직접 신탁사의 리스크 점검을 나섰다. 우선 금감원은 이달 초 14개 부동산 신탁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소집해 신탁사들의 재무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회사별 충당금 적립 실태를 일제 점검한다고 밝혔다. 특히 차입형 토지 신탁의 경우 사업성이 없는 사업장에 대해 예상손실을 100% 인식하는 등 저조한 분양률로 손실 확대 우려가 있거나 시공사의 책임 준공 기일이 넘은 사업장에 대해 리스크 관리 강화를 주문했다.

금감원 함용일 부원장은 부동산 신탁사 CEO 간담회에서 “부실 우려 사업장 등에 대한 부동산 신탁사 건전성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충당금 적립 실태를 일제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우발채무 등 신탁 사업의 실질적 리스크가 순자본비율(NCR)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현행 제도상의 사각지대를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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