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석유사업법 개정안 통과, 정유4사 “6조원 투자”
석유화학 대규모 투자했지만 장기 침체에 ‘수익은 아직’

지난해 9월 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내 최초 바이오항공유 시범운항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9월 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내 최초 바이오항공유 시범운항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국내 정유업계는 기존 정유사업뿐 아니라 신사업 모색에 한창이다. 정제마진 의존도가 높고 대표적인 탄소 배출산업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4사는 지난 2022년 유가급승으로 인한 정제마진 상승으로 호실적을 올린 바 있다. 2022년 영업이익을 보면 SK이노베이션 3조9173억원, GS칼텍스 3조9790억원, S-OIL(이하 에쓰오일) 3조4052억원, HD현대오일뱅크는 2조7898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해는 유가가 2022년에 비해 하향안정되면서 정제마진이 축소됐다. 이에 정유4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SK이노베이션 1조9039억원, GS칼텍스 1조6838억원, 에쓰오일 1조4186억원, HD현대오일뱅크 6167억원에 그쳤다. 1년 만에 영업이익이 절반 이상 줄어든 셈이다.

정제마진에 울고웃는 영업실적은 대외변수에 취약하다는 허점을 보여준다. 이에 정유업계는 석유사업에 국한하지 않고 석유화학사업에서도 보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달 9일 국회를 통과한 2건의 법안은 이같은 정유업계의 도전을 더욱 가속화하는 내용으로 주목받고 있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이하 석유사업법) 개정안과 이산화탄소 포집·수송·저장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이하 CCUS법)은 정유업계의 신사업 육성을 지탱할 법제적 기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개정한 석유사업법은 친환경 석유대체연료의 생산 및 사용을 확대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해당 개정안은 ▲석유정제공정에 ‘친환경 정제원료’의 투입 허용 ▲친환경 연료를 바이오연료, 재생합성연료 등으로 명시적으로 규정 ▲친환경 연료의 개발·이용·보급 확대 및 원료 확보 등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EU, SAF 사용 의무화…미국, SAF 생산에 세액공제 제공

특히, 친환경 연료 중에서 지속가능항공유(이하 SAF)는 미래 시장전망이 밝아 주목받고 있다. 국내 정유4사는 지난달 24일 산업통상자원부 최남호 2차관과 만난 자리에서 오는 2030년까지 친환경 연료에 6조원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는데 SAF에 대한 투자가 중심이 될 전망이다.

SAF는 폐식용유, 생활폐기물 등을 원료로 한 친환경 항공유로 기존 화석연료 기반 항공유와 비교해 최대 80%까지 탄소배출을 절감할 수 있다. 현재 SAF는 전세계 항공유의 0,2% 생산 수준이나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모도 일텔리전스는 오는 2027년까지 시장 규모가 215억6520만달러로 성장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EU는 탄소 배출 감축방안으로 SAF 사용을 의무화를 준비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2025년 모든 공항에서 항공기를 급유할 때 SAF를 2% 혼합해야 한다. 항공유에 SAF를 혼합하는 비율은 2030년 6%, 2025년 20%로 점차 늘어나 2050년에는 70%까지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를 통해 올해까지 자국에서 SAF를 생산한 정유사에 갤런당 최대 1.75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 헝공유를 수출해온 국내 정유업계에 불리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S-OIL 온산공장에서 바이오 원료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실은 탱크로리의 하역 작업에 앞서 근무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S-OIL]
S-OIL 온산공장에서 바이오 원료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실은 탱크로리의 하역 작업에 앞서 근무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S-OIL]

SK이노베이션은 SK 울산콤플렉스(CLX)에 2026년 상업 생산을 위한 SAF 생산 설비를 짓고 있다. 또, 지난해 미국 펄크럼에 260억원을 투자해 생활폐기물을 원료로 한 합성 원유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SK에너지에서 인적분할로 설립한 SK엔텀을 100% 자회사로 출범시켜 SAF 등의 저탄소 원료 및 제품을 저장해 출하하는 영역으로의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GS칼텍스는 대한항공과 함께 지난해 정부가 주도한 바이오항공유 시범 운항사업을 진행했다. GS칼텍스와 대한항공은 지난해 9월 5일부터 인천-미국 LA 대한항공 화물기편에서 SAF 2%를 혼합한 항공유로 6차례 시범 운항을 실시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합작해 인도네시아에 바이오원료 정제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지난달 저탄소 에너지, 친환경 화학제품 생산을 위한 바이오 원료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초도 물량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기존 정유 공정에 바이오 원료와 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원유와 함께 투입해 탄소집약도가 낮은 저탄소 연료유와 친환경 석유화학 원료 생산에 나선 것으로 이는 국내 정유사 최초다. 

에쓰오일은 앞서 2021년 삼성물산과 친환경 수소 및 바이오 연료 사업 파트십을 맺은 바 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DS단석과 친환경 저탄소 연료 및 화학제품 원료 공급망 구축을 위한 퍼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대체 원료를 활용해 생산한 제품들에 대한 글로벌 저탄소 제품 국제 인증(ISCC) 취득도 추진 중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0월 코린도그룹, LX인터내셔널과 각각 연간 4만톤, 총 8만톤에 달하는 팜잔사유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팜잔사유는 팜유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소수의 바이오디젤 공장에서만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팜잔사유 외에 버려지는 식용유를 재활용해 바이오디젤 공장 의 원료로 사용할 계획이다. 이어 2025년 이후에는 연산 50만톤 내외의 ASF 제조공장을 완공하겠다는 계획이다.

GS칼텍스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지난해 10월 12일 인도네시아 바이오원료 정제사업 합작투자 서명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GS칼텍스]
GS칼텍스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지난해 10월 12일 인도네시아 바이오원료 정제사업 합작투자 서명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GS칼텍스]

GS칼텍스는 MFC, 현대오일뱅크는 HPC에 대규모 투자

장밋빛 청사진만 보고 신사업에 도전할 수는 없다. 정유업계는 이미 석유화학사업에 진출하며 성장통을 겪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시설을 준공했지만 마침 석유화학 시황이 깊은 침체국면을 지나는 중이라 그 결실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유업계의 석유화학 부문 진출은 원료인 석유에 대한 접근성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원유가격이 상승하면 석유화학사업에서는 수익이 줄겠지만 기존 정유 사업에서는 정제마진을 통해 수익이 확대된다. 반대로 원유가격이 내려가면 정유사업에서는 정제마진이 축소되겠지만 석유화학 사업에서는 원료 가격이 내려가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정유 사업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기에는 정제마진이 낮고 석유화학 사업은 에틸렌 등 주요 제품의 스프레드(제품 판매가격과 원료 구입가격의 차이)가 저조해 역시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기존 석유화학기업들이 친환경·스페셜티(고부가가치 소재) 사업으로 전환을 구상하는 가운데, 이를 쫓아가려면 추가 투자도 고민해야할 국면이다.

GS칼텍스는 2조7000억원을 투입해 2022년 11월 전남 여수시에 올레핀 생신 시설인 MFC(Mixed Feed Cracker)를 준공했다. 이는 창사 이래 최대 투자액이다. 

MFC는 연간 에틸렌 75만톤, 폴리에틸렌 50만톤, 프로필렌 41만톤, 혼합C4유분 24만톤, 열분해가솔린 41만톤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석유화학 생산량이 늘어나는 상황이라 업황이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다.

MFC는 가동 초기 100% 가동률을 보였으나 그 이후 들쑥날쑥한 흐름이다. GS칼텍스 관계자는 “MFC는 석유화학제품의 사황에 따라 수급을 고려해 가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는 LG화학과 함께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 친환경 소재의 핵심 원료인 3HP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여수공장에는 3HP 실증플랜트가 완공돼 본격적인 시제품 생산을 앞두고 있다. 

3HP로 만든 플라스틱은 뛰어난 생분해성과 높은 유연성을 지닌 고분자로 다양한 일회용품 소재를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전세계적으로 상용화된 사례가 없어 양사의 시제품 생산은 세계 최초의 상용화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석유화학 부문에 대한 추가로 투자해야할 필요도 높아지고 있으나 업황이 개선되지 않다보니 결론을 내기 어려운 모습이다. GS칼텍스 관계자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관심이 있지만 범용제품도 무시할 수 없다. 여러 상황을 감안해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현대케미칼이 지난 2022년 10월 12일 충남 서산시 대산공장에서 HPC공장 준공식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오일뱅크]
현대케미칼이 지난 2022년 10월 12일 충남 서산시 대산공장에서 HPC공장 준공식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오일뱅크]

HD현대오일뱅크 역시 롯데케미칼과 합작해 2014년 현대케미칼을 설립하고 2022년 10월 충남 서산시에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설비인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를 설립했다. 해당 사업에는 3조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HPC는 연간 에틸렌 85만톤, 프로필렌 50만톤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정유-석유화학 수직계열화를 통한 원가경쟁력에 기대를 걸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HPC는 기존 석유화학 공정의 주 원료인 납사보다 저렴한 탈황중질유, 부생 가스, LPG 등 정유공정 부산물을 시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수익성은 유가가 안정되고 석유화학시황이 풀리면 점차 좋아질 것”이라며 “앞으로 바이오원료를 투입한 친환경분야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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