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좌파’ 대 ‘친일파’...관점 평행선, 극단적 이념대결로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20세기 독일에서 벌어진 역사 전쟁을 분석한 ‘무기가 된 역사’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 에드가 볼프룸은 ‘역사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과거의 사실이 어떤 힘을 갖고 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과거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책에선 나치가 게르만족에서 독일 민족 근원을 찾으면서 전쟁의 부정적 생각을 희석시키려고 했고 인종 청소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했다고 해석한다.

일본의 경우 일본군 위안부, 강제노역 등 전쟁 범죄를 외면하거나 부정하며 자국 내 교과서에서도 해당 표현을 삭제해 인접국인 우리를 분노케 한다. 또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사용하는 ‘일본군 성노예’라는 용어도 부정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그저 명칭, 용어의 정립일 뿐인데 국가가 나설 정도인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단어 하나에 철학의 차이는 크게 벌어진다. 그만큼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에드가 볼프룸이 말했듯 역사는 현실에서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특정 기억을 계속 상기하면서 그 외는 망각하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은, 시대가 나아갈 바를 제시하면서 현실 인식을 조종할 수 있다고 한다.

역사가 시대정신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침략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는 역사를 왜곡해 본인의 책임을 은폐하고, 전쟁을 미화하며 자국민에게 우월의식을 심고 있다. 그리고 현재 일본 정부는 전쟁 포기를 명시한 헌법 9조 개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흐름은 식민 지배를 당했던 우리나라와 중국에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걱정을 하게 한다.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이 반성 대신 복수심에 군비확장을 통해 세력을 확장한 후 2차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역사적 교훈이 오버랩된다.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보수와 진보가 역사를 놓고 주도권 싸움을 연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의 관점이 평행선을 그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상황에서 일반 대중을 자기 편으로 포섭하기 위한 날선 대결이 과도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 용어인 콜로세움 대결이라 할 만하다. 상대방을 무찔러 없애야 끝나는 검투사식 대결의 무대를 빗댄 용어다. 어디까지나 모 아니면 도의 자기 이념적 생태계 구축에 치중한 역사 논쟁이므로, 가히 콜로세움식 대결이라 불러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식의 논쟁은 역사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치권의 극한 대립과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지지자 간 감정의 골이 깊게 나타나고 있다. 학계에서도 사실을 들어 역사 해석에 대해 논쟁하는 것이 아닌 ‘종북 좌파’ 대 ‘친일파’로 다투는 극단적 대결이 부각되는 모습이다. 이러면 이성적이고 합리적 토론은 불가능하다.

이 모든 건 정치권이 총선을 겨냥하고 역사·이념 갈등을 부추긴 책임이 크다. 고물가로 서민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이때 더 이상 역사·이념 대립이 아니라 여야가 민생 현안 문제로 건전한 경쟁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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