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에서 출발해서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NL계열 특히 주사파 계열이 뉴라이트로 급전환
김대중·노무현으로부터 외면 받자 극우로 변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2023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2023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한정욱 기자】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핵심 세력으로 뉴라이트 세력이 급부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면서 뉴라이트에 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뉴라이트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서 어디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뉴라이트가 내년 총선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초반만 해도 총선에 검찰 출신이 대거 총선에 나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제는 뉴라이트 출신이 대거 총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뉴라이트 출발은 NL에서 출발한다. NL은 1980년대 중반 성립된 운동권의 민족주의 정파이다. 일명 민족해방파인데 ‘자주’, ‘민주’, ‘통일’을 내세우고 통일운동을 선호했다. 노동해방 등을 내세운 PD와는 다른 세력이다. NL은 우리나라 사회의 근본적 문제는 미국에 종속된 민족모순이라고 판단하면서 외세에 반대하고 북한과 협력해 통일로 나아갈 것을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NL 내부에는 주사파(주체사상파)도 존재했다. 이들은 미제를 몰아내야 근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큰 변곡점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소련의 붕괴’와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NL은 분파되기 시작했다. NL을 끝까지 고수한 세력이 통합진보당 세력이 되면서 통진당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은 사상 전향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뉴라이트 인사 중에 몇 명은 운동권 출신이다. 그들의 과거를 살펴보면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PD계열이 느끼는 황당함

PD계열 인사들이 현재 와서 가장 황당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NL 세력의 뉴라이트로 사상 전향을 했다는 것이다. 미제를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NL인사가 어느 순간부터 숭미주의자가 됐고, 친일인사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반공’을 내세웠다. PD계열 인사들은 운동권 시절 당시 NL 인사들에게 “북한과 놀지 말라”고 했지만 그들은 북한을 추종했고, 북한에 대한 옹호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반공’을 내세우면서 PD 인사들을 향해 “빨갱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뉴라이트계의 가장 큰 특징은 ‘엘리트에 의한 통치’이다. 이는 86운동권 세대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김영호 장관이 “5000만 국민이 국민 주권을 행사하면 무정부 상태가 된다”는 발언을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뉴라이트 역사관이다. 그것은 반공주의를 내세우게 되면서 이승만 정권에 대한 옹호로 이어지고 그것이 결국 국부(國父)로 이어지는 동시에 1948년 건국절 논란으로 이어진다. 이어 식민지 근대화론도 꺼내 들었다.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내걸고 있다. 다만 신자유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통치는 엘리트 통치를 해야하기 때문에 말은 ‘신자유주의’를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기업을 통제하는 방식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취사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편리한 대로 해석을 하면서 그때그때 맞게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이유로 반대편 세력 즉 지금의 야당이 정부가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면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이고, 자신들이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통치행위라는 것이다. 그것은 엘리트주의에서 나온다. 그런 엘리트주의는 결국 식민지 근대화론으로도 이어진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은 어느 특정 집단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민중에 의해 이뤄졌다. 반면 식민지 근대화론은 조선총독부라는 특정 엘리트 집단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엘리트주의를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NL의 뉴라이트화

NL의 뉴라이트화의 또 다른 이유는 ‘김대중 정부’의 출현이다. 김대중 정부의 출현은 NL 특히 극단적인 NL계열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진다. 운동권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면 최소 자신에게 기득권이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김대중 정부는 극단적인 NL계열과는 거리두기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교동계라는 굳건한 자신의 지지층이 있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NL계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반면 PD계열은 소련의 붕괴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실현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때부터 김대중 정부의 탄생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면서 동교동계와는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아가고 있었다. 따라서 극단적인 NL 인사들은 더 이상 정치권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에 극단적인 NL 인사들이 어느 순간부터 뉴라이트로 전향하게 됐다.

이런 뉴라이트가 한나라당의 주요 세력으로 부각될 수 있었던 계기는 ‘차떼기 사건’으로 인한 보수 정당이 위기에 봉착하면서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차떼기 사건이 불거졌고, 그로 인해 보수 정당의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정치권에서 축출되는 상황이 전개됐다. 그 빈 공간을 뉴라이트 인사들이 점차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과 열린우리당 창당 등으로 인해 한나라당의 위기가 더욱 고조되면서 뉴라이트는 정신 무장을 해야 한다며 뉴라이트 역사관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의 주요 세력으로 점차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세력을 넓혀나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뉴라이트가 한나라당의 주요 세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서울시장으로 한나라당과는 다소 거리가 떨어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시장 자리에서 내려온 후 대선 경선으로 접어들면서 한나라당 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당시 뉴라이트는 정치세력이 없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장 좋은 기회가 됐다. 즉, 한나라당을 휘어잡고, 정권을 획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마치 고려말 급진사대부가 이성계와 손을 잡고 조선을 개창한 것과 비교가 된다. 그렇게 뉴라이트는 친이계가 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친이계는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뉴라이트가 친이계로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친이계와 친박계가 와해가 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이제 남은 것은 차기 정권 대선 후보로 누구를 앉힐 것이냐는 것이다. 뉴라이트 즉 친이계에는 가장 좋은 후보가 발견됐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다. 검찰총장 출신이면서 정치적 세력이 없기 때문에 뉴라이트 즉 친이계는 정치적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다만 윤 대통령 역시 검찰 출신이기 때문에 대통령실에 검찰 세력이 포진하면서 친이계가 다소 활동을 할 수 있는 반경이 좁았다. 이런 이유로 윤석열 정부 초창기에는 친이계의 모습이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나 검찰 출신 모두 정치적 리더십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으면서 점차 뉴라이트 즉 친이계가 정권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제 친이계가 정권을 확실하게 장악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내년 총선에서 또 다른 변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 출신 인사들의 대거 공천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김기현 대표가 과거 이야기를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뉴라이트계 즉 친이계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공천 갈등이 상당히 커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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