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교체 준비 과정서 며느리-손자 노력이 실적 연결
WSJ 이어 LA타임스도 불닭 신화 주목...글로벌 현상
거시·미시전략 함께 전개...그룹 미래 ‘청신호’ 눈길

런던에서 불닭볶음면에 도전하는 백인 청년 [사진출처=인터넷 커뮤니티]
런던에서 불닭볶음면에 도전하는 백인 청년 [사진출처=인터넷 커뮤니티]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삼양라운드스퀘어(구 삼양식품그룹)와 삼양식품이 속도를 내고 있다. 사실상 ‘우지사태’ 여파로 종로 한복판(수송동) 옛 사옥을 잃었던 과거는 이제 옛 이야기다. 효자 상품으로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K 식품 대표기업으로 발돋움한  데다 새 사옥 준비로 ‘제2의 종로시대’를 개막도 초읽기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미래 먹거리 구축에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다.

삼양식품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조1929억원과 1468억원(잠정 집계)이다. 전년 대비 각각 31%, 62% 늘어난 셈이다. 매출 1조원과 영업이익 1000억원을 넘긴 것 모두 창사 이래 처음이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불닭볶음면 등의 해외 매출이 늘어 호실적을 거뒀다고 설명한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삼양식품은 종로쪽 새 사옥 입성을 준비한다. 

새 사옥 탐하면 망한다? 미래 일굴 공간, 밀양 공장도 함께 첫삽

라면을 국내에 첫 도입한 삼양라면은 그러나 1위 자리를 유지하지 못한다. 1989년 우지 파동은 이런 사태의 결정타가 됐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얻어내는 것으로 끝났지만, 삼양라면은 농심과 격차를 크게 벌어지는 상황을 줄곧 감수해야 했다.

 22년 간 종로 수송동에 본사를 뒀던 삼양식품은 1997년 현재 위치로 본사를 옮겼고, 2002년 결국 옛 사옥을 매각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불닭볶음면 신화 등으로 부활 노래가 본격화되면서 삼양식품은 새 사옥을 다시 4대문 안으로 옮기는 문제에 본격 착수했다.

사옥을 지으면(올리면) 망한다는 속설은 비단 건설업계에만 경고음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다. 씀씀이가 커지고 성과에 취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말일 텐데, 삼양의 경우는 이런 우려에서 비껴서 있다. 공장을 증설해 본격적으로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에도 열심이다. 

 삼양식품은 이달 6일 밀양 2공장 착공식을 개최했다. 이는 지난해 9월 경상남도와 맺은 투자협약에 따른 것으로, 2022년 5월 밀양 1공장 완공 이후 2년 만에 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점을 과시한 셈이다. 

삼양라운드스퀘어 김정수 부회장 [사진제공=삼양라운드스퀘어]
삼양라운드스퀘어 김정수 부회장 [사진제공=삼양라운드스퀘어]

사회복지학, 철학...다른 영역에서 떠오른 ‘음식에 대한 영감’

앞서 실적에서도 이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밀양 2공장을 새로 지을 만큼, 삼양식품의 현재는 뜨겁다. 

이 신화의 큰 기둥인 불닭볶음면은 ‘며느리의 작품’이라는 평을 듣는다. 더 들여다 보면, 현재 이에 대한 호평들이 많지만 ‘음식재벌가의 ‘전업주부’ 며느리가 터뜨린 (우연한) 잭팟’이라는 시각이 없지 않은 것. 하지만 이는 다분히 부당한 평가라는 반론 또한 유력하다.

불닭볶음면을 개발한  삼양라운드스퀘어 김정수 부회장이 창업주인 고 전종윤 회장의 며느리, 그러니까 2세대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후 전업주부 생활을 했던 그는 구원투수격으로 경영에 뛰어들었는데, 매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는 불닭집 앞 장사진을 본 뒤 이에서 영감을 얻어 이 제품 개발에 나섰다고 한다. 제품 개발 콘셉트를 잡은 후에도 수없이 시제품을 만들며 테스트를 주도, 불닭볶음면 신화에 상당한 지분이 있다.  

그렇다고 고심이 없을 수는 없다. 삼양식품은 라면 등 면·스낵 매출에 94%를 의존한다. 건강식품 트렌드에 응답해야 하는 지속 가능성(미래 성장 가능성) 과제가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꾀하는 건 필수다. 

단순히 라면 그 자체에만 모든 걸 걸고 지금 성과를 즐기기엔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양만의 경쟁력을 고심할 필요성도 크다.

오너 일가들도 이런 삼양의 미래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삼양라면 출시 60주년 기념 비전 선포식’에서 김 부회장이 “음식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현시대가 필요로 하는 한 단계 더 진화된 식품을 만든다”는 그룹의 비전을 공개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제2의 전성기를 현재에 펼치는 것과 미래와의 연결고리를 준비하는 것이 2세대의 역할이라면, 3세대는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면서 미래 구상을 본격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 

전병우 상무는 삼양라운드스퀘어의 미래를 그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미 그에게 쏟아지는 기대감이 상당하다. 단순히 얼굴을 비춘 것이 아니라 그룹의 신사업을 설명하는 주자로 뛰었기 때문이다.

도미 후 철학을 공부했던 유학파 출신 3세는 이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통한 맞춤형 식품 개발 ▲식물성 단백질 ▲즐거운 식문화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 및 글로벌 커머스 구축 ▲탄소 저감 사업 역량 집중 등을 제시하는 인물로 거듭났다.  그룹의 새 통합이미지(CI) 구축 작업도 그의 손을 거쳤다.

미국 매체도 주목한 콘텐츠 사업 등 능력쌓기...멕시코 등 점프는 단기 숙제

전 상무를 키우기 위한 투자도 만만찮다. 2021년 12월 신설된 삼양애니의 경우가 대표적. 그가 본부장이던 시절 신사업 기획 역량을 검증하는 곳으로 사용돼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바 있다. 글로벌 콘텐츠 커머스·IT 기업을 표방하는 곳이라, 사업 다각화 면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높다는 지적은 그 당시에는 다소 뒤에 가려졌다.

삼양애니의 성장 속도가 빠르면 향후 지분 증여 등 베이스캠프로 활용, 전 상무의 승계 게임의 밀리건(골프에서 아마추어들이 사용하는 계측기)이 될 수도 있다.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병우 상무 [사진제공=삼양라운드스퀘어]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병우 상무 [사진제공=삼양라운드스퀘어]

최근 미국 매체들도 이 같은 삼양식품 2세, 3세의 약진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김 부회장을 조명한 바 있다. WSJ은 “500억달러(약 60조원) 규모의 라면 시장을 뒤흔든 여성”으로 그를 평가했다. 1990년대 후반 돌연 라면 회사에 입사해 불닭볶음면을 개발한 점도 WSJ은 주목했다. 

서부권 거대 매체이자 역사적으로 한국에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신문사로 평가돼 온 LA타임스의 경우, 삼양 3세에도 주목했다. 이 매체는 전 상무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유학한 이력을 갖고 있는 점, 이후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과 삼양식품 신사업본부장을 맡으며 그룹의 미래를 그린 점 등을 언급했다. 

이미 작년에 지주회사 삼양라운드스퀘어 2대 주주였던 아이스엑스가 흡수합병되는 등 지배구조 개편은 가닥을 잡은 바 있다. 전 상무가 이제 부친(전인장 회장)보다도 지분이 많은 상황, 즉 지주사 개인 2대 주주로 올라선 그림이 된 것이다. 김 부회장에서 전 무로 이어지는 승계 구도는 더욱 뚜렷해졌으나, 이제 단기적 문제가 남아있다. 공장 증설도 본격화한 마당에 내년 밀양 제2공장 준공 이후 생산 능력이 증가하는 만큼, 이를 밑천으로 제대로 치고 나가는 모습도 필요하다.

그래서 기존에 다소 약했던 캐나다 등으로 판로를 확대하지 않겠느냐는 세간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문제가 최우선적인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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