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위원, CEDAW 독립보고서 반대 표해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80개 단체 비판 성명
“반인권적·반여성적 언행 당장 중단해야”
“절차 지연·피해 확대”…사퇴 요구 목소리도

국가인권위원회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이 지난해 8월 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고(故) 채수근 상병 사건 수사관련 긴급 의견표명 기자회견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국가인권위원회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이 지난해 8월 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고(故) 채수근 상병 사건 수사관련 긴급 의견표명 기자회견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 유엔(UN·국제연합)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낼 독립보고서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다 알고 있는 데 자꾸 (이야기를) 꺼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냐”는 등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반인권적 망언”이라며 비판했다.

13일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80여개 단체에 따르면 이들 단체는 전날 성명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 (이하 인권위) 상임위원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는 두 상임위원을 규탄한다”며 “공식석상에서의 반인권적·반여성적 언행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지난 11일 인권위는 전원위원회(이하 전원위) 회의를 열어 ‘CEDAW 대한민국 제9차 정부보고서 심의를 위한 독립보고서(안) 채택’ 안건을 심의했다. 그 과정에서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 반대를 해 독립보고서는 의결되지 못했다. 지난달 27일 전원위에서 안건이 다뤄지지도 못한 채 폐회된 것에 이은 두 번째 무산이다.

이에 따라 해당 안건은 오는 25일 진행되는 전원위에 다시 상정될 예정이다.

단체에 따르면 김·이 상임위원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진상규명과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 진실과 정의 원칙에 기반한 배상 촉구’ 및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관련 내용을 독립보고서에 절대 포함할 수 없으며, 이 두 가지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독립보고서(안) 안건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독립보고서의 유엔 제출기한이 오는 4월 중순임을 고려할 때 매우 시급하게 논의되어야 할 안건임에도 불구하고, 의결이 벌써 1달 반째 미뤄지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김 위원의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와 관련한 발언에 대해 강하게 규탄했다.

이들은 “김 위원은 ‘현 국제정세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로 이어지는 블록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필요한데, 자꾸 일본군성노예제 타령을 해 반일감정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며 “이는 이미 유엔 자유권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다수 유엔 조약기구들이 공통적으로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진실·정의에 기반한 해결을 수차례 권고해 왔던 보편적 인권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이 문제가 보편적 여성인권의 문제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십년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피해생존자분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활동, 전시성폭력 문제를 여성인권의 문제로 의제화하기 위한 활동가들의 헌신과 투쟁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1638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진행된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 대사관 인근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제1638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진행된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 대사관 인근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회의 시간 내 두 위원의 발언 대부분이 여성인권에 반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 단체는 “이 위원은 정부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추진을 찬성하는 이유로, ‘인구절벽으로 나라가 망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본 정책을 도입해야 하며, 홍콩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일하는 동남아 여성 가사노동자들이 한 달에 70~100 만원 남짓의 낮은 월급을 받고 있지만 불평하지 않고 일하니 괜찮다’는 논리를 펼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추진하려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제도는 저출산의 근본구조는 외면한 채 국적·인종 차별과 노동 착취에 기반한 사적 돌봄에 불과하다는 반인권적 해법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비판해야 하는 책무를 가진 인권위 상임위원이 이 같은 망언을 공식 회의석상에서 늘어놓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이들 단체는 인권위 상임위원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는 김·이 위원에게 앞으로 공식석상에서 반인권적·반여성적 언행을 당장 중단하고 독립보고서를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같은 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등 전국 34개의 인권단체가 참여하는 경로이탈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성명서를 내고 김·이 위원에게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공동행동은 “두 상임위원의 만행으로 인권위가 제대로 된 인권기구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지 수개월 째다”며 “이제는 그걸 넘어 인권위 회의석상에서 혐오와 차별 선동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 두 상임위원의 발언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방해하는 극우 친일 세력과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극우개신교 등 혐오선동 세력의 주장과 동일한 것”이라며 “혐오와 차별에 맞서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야 할 인권위원이 가해자와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짚었다.

CEDAW 보고서를 포함해 인권현안이 산적해 있고 구제를 바라는 피해자들이 있음에도, 오히려 인권위가 절차를 지연시키고 피해를 확대하는 두 상임위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 공동행동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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