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세익스피어의 희곡 중에서도 인기가 높은 ‘베니스의 상인’은 불의에 대항해 이를 극복하고 상식이 통용되는 세상을 만든다는 게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리스크 관리와 이에 대처하는 기법에 대한 이야기로 새겨볼 만한 대목이 많다고도 하겠다.

로마사·이탈리아역사 연구서를 여럿 내놔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일본인 연구자 시오노 나나미는 “(상인 정신이 투철하고 위험 관리에 능숙한) 진짜 베네치아(베니스) 상인이라면 이런 식의 거래는 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꼭 의도대로 형편이 따라주는 건 아니니, 베니스 상인 위험성이 너무 큰 거래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균적인 추정은 극적 장치 정도로 넘어가기로 하자. 일단 이 작품은 그야말로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 보고 음미할 구석이 많다는 자체는 변함없으니 말이다. 

오늘 특히 꼽아볼 부분은 계약 구석에 숨어있던 독소조항을 분석, 역으로 그 조항이 가진 허를 찔러 무력화하는 리스크 관리자의 순발력과 재치 대목이다. 포셔가 법학박사로 분장해 법리상 출혈은 계약에 명시돼 있지 않으니 절대적으로 살만 1파운드 발라내 가라고 역공을 가한 것이다. 

이런 실력있고도 충실한 관리자가 방어막을 펴 준다면 어떤 리스크인들 든든하지 않을까. 

리먼 사태 이후, 금융권에 절대적 안전이라든지 리스크 완전 회피라는 개념은 사라진 것 같다. 우리나라만 해도 몇 번의 분란을 겪었다. 

옵티머스 이슈만 해도 NH투자증권 정영채 사장이 중징계를 받고, 이를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중징계 효력의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졌으나, 결국 그 와중에 회사 대표직 4연임 대신 용퇴를 결정하기도 하는 등 후유증을 남겼다.

이런 가운데 18일 NH투자증권은 미국 달러화 환매조건부채권(RP)를 가입하는 고객에게 최고 5.05% 특판금리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가입 유도 이벤트야 별다를 게 없지만, 그 과정에서 이 상품의 특징이 부각됐다. 이벤트 대상을 NH투자증권에 담당 PB(프라이빗 뱅킹)가 있는 영업점 이용 고객으로 한 것이다. 담당PB가 없는 경우 영업점에 방문해 담당 PB 등록 후 상품 가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해당사에서는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으로 PB의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저 위험성이 있는 상품이고 그렇잖아도 고액 투자를 한다는 점에서 이런 가이드를 붙인다고 요약할 건 아닌 것 같다. 

외화 RP는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외화 또는 원화 표시 채권을 투자자에게 일정 기간 후 약정한 것으로 환매할 것을 조건으로 판매한다. 태생적으로, 위험성이 전혀 없을 수 없다. 다만 이 상품에 투자할 정도면 이미 외화 관련 상품에 투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외화 RP 자체를 외화 환율 리스크의 관리용으로 꼽는다. 투자 방법도 간단해 외화 투자를 처음하는 이들에게 적합하다고도 한다. 수익률이 고정된 점을 매력으로 꼽기도 한다.

물론 환율 위험이라는 본질적 문제가 있고, 중요 환매 수수료 등 부담이 있기도 하다.

결국 요약해 보자면, 기존 관념으로는 부자 고객 그것도 외화 투자에 스스로 자신감이 약간은 있는 이 이상의 등위에서 관심을 가질 상품이니 만큼 NH투자증권처럼 굳이 PB의 가이드를 받도록 유도하는 건 지나치게 넘치는 배려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기엔 적합치 않은 것 같고,  교훈의 학습 효과라고 할까. 우리 금융권이 각종 불완전판매 잡음에서 나름 얻은 교훈처럼 NH투자증권이 이번 상품에서 이런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여겨진다.

꼭 어느 상품, 어떤 층이나 자산 정도에 대한 배려라고 볼 건 아닌 것 같다. 앞으로도 상품을 설계, 운용하고 또 관련 이슈의 가지치기를 해 나갈 때 이번 달러 RP의 PB 지정 유도처럼 리스크 관리에 한층 더 감시자를 붙여주는 정신이 널리 퍼졌으면 한다.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같은 감시망이 우리 금융 여러 영역에 넒고 촘촘히 구축되었으면 한다.

그러기에 NH투자증권의 이번 조치를 떠받치는 PB들이 할 일이 많다. 이들이 베니스 상인 안토니오의 목숨을 살린 포셔의 기지와 비견할 만한, 한국 고객의 피 같은 돈을 지켜내는 ‘한국판 포셔’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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