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훈 지음 | 432쪽 | 147 X 219 | 도서출판 부키 | 1만9800원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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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울산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2008년 리먼 위기 등 굵직한 위기 당시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한국 유일의 도시로 꼽힌다.

이 같은 부촌(富村)  이미지를 갖고 있는 기반은 바로 탄탄한 제조업. 자동차와 조선 등 굵직한 산업을 품고 있는 울산의 구조는 중공업 기반 성장, 압축 성장의 역사를 써온 우리나라에서도 특이한 위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울산의 이런 아성도 무너지고 있다. 대표적 산업지구인 울산 동구 인구가 감소하는 등 타격 징후가 나타난 게 대표적 케이스다. 이를 놓고 그간 울산 신화를 지탱해 온 기반인 제조업 강국 모델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그런 와중에도 분석과 해법이 의미있게 개진된 예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남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이 문제를 짚은 양승훈 교수의 책이 부키에서 발간됐다. 양 교수는 앞서 거제 등 산업 도시 문제를 예리하게 연구해 저술 결과물을 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저자는 산업 현장 내부로 깊숙이 파고들어 관찰하면 울산과 한국 제조업이 위기에 빠진 여러 원인이 있지만 저자는 이를 크게 ‘노동의 공간 분업과 생산성 동맹의 와해’로 압축한다.

특히 1990년대를 지나면서 두 가지 층위에서 구상과 실행의 지리적 분리를 추동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제조 대기업이 적대적 노사관계 때문에 파업이나 다양한 쟁의에서도 생산량과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의 숙련에 의존하지 않는 체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는 것. 

‘공간 분업’은 산업혁명 중심지였던 영국의 여러 도시에서 관찰된다. 일례로 근대 방직 산업과 기계 산업의 메카였던 영국 맨체스터 지역에는 원래 공장과 설계실이 함께 있었지만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본사와 설계실이 분리되어 금융과 정치의 중심인 런던으로 향했다.

문제는 서울에서는 구상을 하고, 울산은 제조를 맡아 왔다면 이제 구상의 주도권이 더욱 강해지고, 기업들이 제조 문제를 수도권이나 해외로 옮기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명 미라클 울산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기업인, 관료, 엔지니어, 노동자, 지역민들 간 ‘생산성 동맹’이 와해되고 있다고 양 교수는 짚는다. 

울산 노동자들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할 때나, 그 이후 1991년 골리앗 투쟁을 할 때만 해도 회사와 정부와 보수언론이 비난하더라도 노동자를 지지하는 우군이 사회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를 지나면서 현대자동차를 위시한 울산 대기업 노동자의 파업에 더 이상 연대의 시선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저자는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2000년대 들어 울산의 노사는 각자의 입장에서 분주히 살길을 찾았으나 그 결과로 남은 것은 생산성 동맹의 와해와 치열한 각자도생의 싸움만 남았다. 영국 맨체스터가 겪었던 쇠락의 길을 울산이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책은 울산과 우리나라에게 이런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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