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보험권에는 언더라이팅이라는 용어가 있다. 지금은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친숙해진 개념이다.

원래의 뜻과 기원은 어디까지나 보험자(보험회사) 관점에 입각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의 가입을 받기 전, 심사를 하며 요모조모 따져보는 일이라고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는 대화나 협상의 상대방이 아니라 그저 심사대에 오른 관찰대상이랄까? 위험성 즉 보험에서 예상하는 보상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를 따져 수지타산이 맞는지를 본다는 게 언더라이팅 개념의 원래 기본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피보험 목적, 조건, 보험료율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계약의 인수 여부 즉 가입을 받을지를 결정하는 일이라, 보험회사 내부에서도 나름대로 중요성을 인정받아온 분야였고 피보험자(즉 보험가입을 희망하는 이)에게는 까다로운 서류 단계에서 걸려서 가입이 거절되는 문턱으로 인식돼 왔다. 보험설계사가 기껏 신청서를 받아간 뒤에 어찌어찌 본사 차원에서 보험 가입이 안 된다며 깐깐하게 서류를 퇴짜놓는 경우가 바로 이 언더라이팅의 기능이었으니, 원성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언더라이팅이 변화하고 있다. 일례로 한화생명이 이번에 도입한 사전 언더라이팅(심사·인수) 시스템은 말 그대로 사전에 소비자 편의를 챙겨주자는 점에 입각해 도입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심사 대상이라는 점 자체만큼은 어쩔 수 없지만, 이번 사전 언더라이팅에 따르면 기존에 청약서 서명 후 일주일까지 소요되던 심사 기간이 대폭 줄어 청약 전에 보험 가입 가능 여부를 알 수 있어 무척 편리하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소비자의 동의가 있으면, 한화생명과 타사의 보험금 지급 이력을 불러와 간편하게 자동입력하고, 회사는 사전 심사를 진행한다는 전산화 시대의 장점을 한껏 살리는 기법도 활용된다. 이렇다 보니 한화생명은 청약 후 보완·반송을 최소화하고 인수 시간을 대폭 축소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한다. 심사 결과에 따른 가입설계 변경 편의성도 커졌다. 감액, 보험료 할증 등 조정된 조건은 바로 청약 과정에 반영돼 재설계의 번거로움을 없앤 것도 소비자 편의 증진과 조율 가능성이 활짝 열렸다는 점에서 반가운 대목이다. 

또한 DB손해보험은 시대의 총아인 인공지능(AI)을 언더라이팅에 접목하는 큰 실험에 나서 호평을 얻고 있다. 장기보험 설계 및 인수심사 업무와 관련해 빅데이터 기반의 고객 맞춤형 설계와 사전 인수심사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게 가능해졌고, 이런 점은 심지어 그 독창성과 편의를 인정받아 특허를 얻는 데까지 성과가 진척됐다는 것이다. 

AI를 통해 고객별 보장분석, 맞춤설계, 사전심사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는 소비자 측면의 장점은 물론, 가입설계부터 인수심사까지 전체 영역을 지원해 현장 근무 직원(회사 측)의 업무 편의성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연말연초 기준 월 6000명의 설계사가, 10만명 이상의 고객을 대상으로 3억원의 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시스템 활용도가 높다고 한다.

회사 측 논리에만 충실하던 언더라이팅이 이제 본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비단 AI시대를 맞아 데이터 학습을 통해 더욱 정교화함으로써 이런 성격 변화가 이뤄졌다고만 보지는 않는다. 그 바탕에 있어서는 소비자들을 어렵게 느끼고 떠받들어야 한다는 경각심이 작용하지 않나 싶다.

앞으로 기존의 판매 기법과는 달리, 더 많은 채널에서 보험가입 서비스를 제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상황이 변하는 기로에서 선제적으로 언더라이팅 분야마저 변화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노력 자체가 소비자 편의 증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보험회사와 가입자(가입 희망자) 사이의 관계 재설정에 단초가 되면 좋겠다. 그야말로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은 공평한 새 운동장에서의 보험업이 이번 언더라이팅 분야 변화를 통해 실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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