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반도체 핵심 소재 품목 수출 규제
반도체·디스플레이, 피해 제한적 전망
산업계 규제 확대 및 장기화 우려 ↑
자동차산업, 금융권 추가조치 경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뉴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뉴시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일본 정부가 지난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선데 이어 후속 경제 보복 조치로 다음 달 말 ‘화이트리스트’ 지정 제외 가능성을 예고하면서 경제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수출규제 품목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업종은 물론 여타 업종에 여파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본의 제재 조치가 내부 정치적 선택에 따른 것으로 해석되고 있어 이번 조치가 얼마나 확대될 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4일 반도체·스마트폰·TV 생산에 사용되는 필수 소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에 나섰다. 여기에 최근 수출 규제 품목을 확대하거나 화이트국가(우방국) 카테고리에서 한국을 제외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화이트 국가 제외시 규제 대상이 첨단화학 소재로 확대될 수 있다. 이에 반도체 등 이번 규제 대상 업종 뿐 아니라 자동차와 금융 등 타 분야까지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다. 

낙관론 공존 반도체‧디스플레이

이번 일본 규제로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되는 업종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TV와 스마트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의 핵심 재료로 꼽힌다.

에칭 가스는 반도체 제조 공정 중 회로 모양대로 깎아내는 데 필요한 소재이며, 레지스트는 반도체 원판 위에 회로를 인쇄할 때 쓰이는 감광재로 세 가지 소재는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종래 일본 기업이 이들 3개 품목을 한국 기업에 수출할 경우 절차 계약 시 마다 허가·심사가 필요한 구조로 강화했다. 이에 소재 수입 기업들은 향후 수입 절차가 까다로워지거나, 경우에 따라 수입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일본의 조치로 일정 부문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단기 제재로 인한 타격은 없겠지만 보유한 재고가 소진될 경우 물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이 예상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규제가 확대되거나 장기화되지만 않는다면 이번 조치가 국내 업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주로 D램과 로직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불화아르곤(ArF)과 3D 낸시플래시 공정에 주로 사용하는 불화크립톤(KrF)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규제대상에 포함된 차세대 노광장비 극자외선(EUV)용 레지스트의 경우 아직 반도체 양산에 대규모로 사용되는 기술은 아니다. 다만 올 하반기부터 파운드리 사업 확대에 나선 삼성전자의 경우 타격이 예상된다.

또 에칭가스는 포토레지스트 수준으로 일본 업체 점유율이 높지 않고, 국내 업체가 수입선을 다변화해 놓아 규제로 인한 국내 업체 피해가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내부에서는 위기이면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도 공존하고 있다. 오히려 반도체 소재 부문에서 주요 제조사가 국산화를 추진해오고 있는 만큼 성장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관측이다.

디스플레이업계에 대한 영향은 반도체보다도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 대상이 된 품목의 국산화에 따른 대체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레지스트의 경우, 반도체용 레지스트 대비 디스플레이용 레지스트의 요구 품질이 상대적으로 낮아 국내에서 동진쎄미켐, 동우화인켐, 금호석유화학이 일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삼성전자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삼성전자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삼성디스플레이 폴더블 스마트폰에 독점 공급 중인 투명 폴리이미드(CPI) 필름과 OLED 격벽소재로 쓰이는 광감응성 폴리이미드(PSPI)의 소재로 활용된다. PSPI는 국내 공급 가능 업체와 소재 연구 경험이 많아 상대적으로 국산화 가능성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CPI의 경우 시장 형성 단계고 대체 공급 가능업체도 있다. 또 초박막 유리(UTG) 등 대체 소재 개발이 진행 중이다.

LG전자는 LG디스플레이가 생산한 투명 폴리이미드를 공급받고 있어 이번 규제로 인한 타격은 없을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코오롱인더스트리, SKC 등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이미 양산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일각에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약’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반도체, 디스플레이가 공급 과잉인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업체가 재고를 소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번 규제로 인한 생산 차질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경우 향후 일본 업체와의 거래에서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이번 규제가 국내 부품소재산업의 자생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번 규제 시행을 두고 일본 내부에서 일본 기업들의 주요 고객인 한국 기업들의 이탈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가 일본 기업에게도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공통으로 지적받는 사항이다.

국내 수요에 의존했던 소재업체 뿐 아니라 소니와 같은 일본 완성품 제조사도 피해를 보는 구조다. 국제적 압박에 내부 피해까지 더해지면 일본 정부도 규제를 장기화하긴 힘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한일 정부의 강경 대응 구도로 규제 장기화 등 제재가 강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출 규제에 대응하고자 지난 7일 일본에 방문하고 SK최태원 회장이나 LG그룹 구광모 회장 등 그룹 총수들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 정부 관계자와 긴급 회동을 하는 등 위기감을 드러냈다.

일본의 규제 품목 대상 확대 가능성까지 점쳐지면서 투자 위축도 현실화 되는 분위기다. 국내 반도체 생산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줄곧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각각 2.52%, 2.19% 하락했다.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가 발표된 지난 1일부터는 각각 5.5%, 3.9% 떨어졌다.

日규제 확대 목소리...자동차 업계 ‘긴장’

이 같은 우려는 다른 업종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일부는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관련 수출 규제가 한국 경제의 기둥인 자동차산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 화이트국가 제외와 이에 따른 규제 품목 확대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부터다.

자동차 업계는 국내 자동차 산업 부진으로 부품업체 경영 악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일경제 분쟁에 불똥이 튈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국자동차산업연합회는 지난 4일 ‘자동차 부품산업 현황과 발전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비해 산업계 전반이 소재수급 차질을 빚지 않도록 대응책을 마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자동차부문의 경우 정밀작업 공정기계와 초정밀 광학렌즈 등 아직 완전히 국산화되지 않은 소재들을 일본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뉴시스
최종구 금융위원장ⓒ뉴시스

다만 국내 자동차 점유율 약 70%를 차지하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현대 모비스, 만도 등을 통해 상당수의 부품이 수직계열화 됐거나 국내에서 공급되는 구조다. 하지만 쌍용차와 르노삼성의 경우 차량의 핵심부품인 변속기 관련해 일본의 ‘아이신’, ‘자트코’로부터 완성품을 공급받고 있어 부품소재 수출 규제가 확대되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긴장하고 있는 곳은 현대자동차다. 수소전기차 등과 같은 미래차 개발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수소 관련 핵심 부품을 위한 화학 소재들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만큼, 수출 규제 영역이 확대될 경우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개발·양산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규제로 일본에서 들여오는 화학 소재의 원가가 올라갈 경우 현대차가 제작하는 수소전기차의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가격에 대한 소비자 의견을 신경 써야 하는 현대차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규제 적용 업종으로 분류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업계에서도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일본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한·일 관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일본의 규제 확대에 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응법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일본 자금 유출 우려, 금융권도 경계

산업계에 불어 닥친 타격이 금융권에도 여파를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계 은행들이 일본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에 동참해 가파른 자금 회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미쓰비시파이낸셜그룹(MUFG)과 미쓰이스미토모(SMBC), 미즈호(MIZUHO), 야마구치(Yamaguchi) 등 일본계 은행의 국내 총여신은 21조원에 달한다. 이는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의 총여신 규모인 77조9000억원의 27.1%로 중국계 은행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다. 업계에서는 일본계 은행의 직간접적 여신규모는 69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국제금융센터는 지난 2월 일본이 대내 요인과 글로벌 시장 여건 변화 등을 감안해 자금 회수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언급 한 바 있다. 최근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와 맞물리면서 한국의 일본계 자금을 줄일 가능성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직 우리 금융당국은 이번 제조산업 중심의 일본 수출 규제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인슈어테크: 보험의 현재와 미래’ 세미나에 참석한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일본 금융분야 보복조치는 큰 우려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일본 제재에 대한 영향력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은 “일본의 경제 보복이 있더라도 (공급된 일본 자금의) 금액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대체 조달원을 찾을 수 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점검해 나가겠지만 우리의 취약한 부분이 나타날 우려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최 위원장은 “일본이 금융분야에서 보복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되는지 지금 단계에서는 잘 모르겠다”며 “제재에 따른 작은 불이익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큰 우려는 안 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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