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 도발 행보 가속화, 금융권 확산 우려
국내 日 금융자본 60조, 대부업·저축은행 장악
금융권 “가능성 낮고 큰 피해 없을 것” 진단
과도한 우려, 국내 금융 시장 불안만 가중

ⓒ뉴시스
ⓒ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일본이 결국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으로 시작된 무역 제재 조치는 사실상 거의 모든 산업으로 확전됐다. 일본의 추가 경제 도발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권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서민금융 시장 등 국내 금융 분야에 적지 않은 규모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 이들의 갑작스러운 자금 회수 등 조치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금융당국이나 전문가들은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진단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이나 국내 금융기관의 대응 여력이 충분한데다 일본이 국제금융 시장 신뢰도 타격을 감수하면서까지 보복조치를 감행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갈등이 장기화 될 경우 금융 시장의 심리적 위축 등 변수도 적지 않은 만큼 일본의 추가 움직임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뒤따르고 있다.

서민금융 장악한 日 자본

국내에 들어온 일본계 자금 규모는 조사 기관이나 기준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50조원에서 60조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2일 금융당국과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으로 들어온 일본계 자금의 규모는 최대 52조9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카드사 등 여신전문금융사와 국내 은행이 조달한 일본계 외화차입금은 6월 말 기준으로 20조2000억원에 달한다.

자유한국당 김정훈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진출한 일본 은행의 자산 규모도 약 24조7000억원으로 전체 외국계 은행 지점 총 여신규모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국내 진출한 16개국 은행 중 두 번째로 큰 금액이다.

일본계 외화차입금 중 40%인 8조5000억원(72억 1000만달러)의 만기가 1년 미만이다. 일본이 경제보복을 금융까지 확대해 차입금에 대한 만기연장 거부와 즉각적인 회수조치에 나선다면 국내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또 일본계 자금 유출을 계기로 불안을 느낀 다른 외국계 자금 유출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일본계 금융 자본 회수 시 가장 우려되는 분야는 서민금융시장이다. 일본계 자본이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시장 지배력이 높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영업하는 외국계 저축은행 중 일본계열인 SBI저축은행, JT친애·JT저축은행, OSB저축은행의 지난해 말 현재 총여신 규모는 10조7347억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 79개 전체 저축은행의 총여신(59조1981억원)의 18.1%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SBI저축은행(6조456억원)는 총여신 1위에 올랐다. 뒤이어 일본계 JT친애저축은행(1조8697억원)과 OSB저축은행(1조7천919억원)이 각각 8위와 9위를 기록했다.

대부업계에서 일본계 자본 비중은 더 크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일본계 대부업체는 19개로, 이들의 대출 잔액은 6조6755억원이다. 이는 국내 전체 대부업체 대출잔액(17조3487억원)의 38.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대부업계 1위인 산와머니(산와대부)도 일본계로 지난 2002년 일본 소비자금융업체인 산와파이낸스가 한국에 진출해 세운 기업이다. 산와머니가 보유한 국내 대출채권만 약 2조1455억원에 달한다. 산와머니는 올해 3월부터 신규 대출 없이 기존 대출 회수를 진행, 한국 철수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이 자금 공급을 줄이거나 회수 조치에 나설 경우 서민층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가능성 낮다” 금융권 한 목소리

금융당국 등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제 도발이 금융 분야로 확산될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고 있다. 실제 자금 회수가 본격화 된다 해도 피해 또한 크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 지배적이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강태수 국제거시금융실 국제금융팀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28일 ‘일본 금융자금의 회수 가능성 및 파급영향 점검’ 보고서를 통해 “일본 금융기관이 자금을 회수하더라도 한국 민간과 정부 차원에서 충분한 대응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의 금융보복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으며 일본 자금이 유출되더라도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계 은행이 보유한 한국 자산 중 1년 이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 자산은 114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글로벌 은행의 대 한국 자산 규모(2894억 달러) 가운데 15.6%로, 미국계(27.3%)와 영국계(26.4%)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크지만 우리나라 은행의 총자산(2조2602억 달러)와 비교하면 2.5% 수준이다.

분야별 일본계 은행의 국내 기업 여신도 23조5000억원 수준으로 70%가 대기업에 집중됐고 중소기업 비중은 1% 내외에 불과하다. 일본계 은행의 여신이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건전한 대기업에 집중됐기 때문에 일본계 금융자금이 회수되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시중 은행도 외화유동성 커버리지비율(LCR, Liquidity Coverage Ratio) 규제 도입으로 급격한 외화자금 유출에 대비한 대응 여력이 충분하다. 정부 역시 글로벌 은행의 한국에서의 여신 규모를 넘어서는 외환보유액을 보유한데다 캐나다나 스위스와 같은 주요 기축 통화국과의 통화스와프로 금융안전망이 대폭 강화됐다는 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됐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김병욱 의원실 주최로 열린 '일본 금융자금의 회수 가능성 및 파급영향 점검 긴급 좌담회'에서 김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김병욱 의원실 주최로 열린 '일본 금융자금의 회수 가능성 및 파급영향 점검 긴급 좌담회'에서 김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일본이 자금 회수에 나서는 방식으로 금융 보복을 펼칠 가능성도 낮게 점쳤다. 금융국제시장에서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위원은 “일본의 보복 조치 발동 시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 상호연계성이 강한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위상 및 신뢰도 저하 등으로 일본계 은행이 자금 회수를 실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18일 “일본 측의 금융보복 조치가 있더라도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게 금융당국뿐 아니라 시장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라는 점을 다시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또한 같은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일본계 금융기관의 자산 규모가 국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주식 투자자금은 외국인 자본의 2%, 대출 자산도 국내 총대출 재원의 2%”라고 설명했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 서민금융 피해 또한 크게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회의원회관에서 1일 진행된 일본 금융자금의 회수 가능성 및 파급영향 점검 긴급 좌담회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이어졌다. 임승보 한국대부금융협회장은 “일본계 대부업체의 대부 자산은 등록 대부업체 총여신 17조원의 38%를 점하고 있지만 영업자금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조달하고, 일본 자금의 차입규모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임 회장에 따르면 일본계 대부업체차입금 약 2조원 가운데 일본 차입규모는 4000억원, 전체 대부업 차입금 11조8000억원에서 일본자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3.4% 수준에 불과하다. 임 회장은 “혹시 일본계 대부업체가 영업규모를 축소한다거나 대출을 중지해도 다른 국내 업체들이 이를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은수 저축은행중앙회 전무 또한 “국내 79개 저축은행을 모두 합해 일본에서 차입한 돈이 하나도 없다”며 “관련 법규에서도 여러 가지 제한사항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일본계 저축은행이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제도적으로 일본계 자본이 자본 회수에 나서더라도 감자나 지분 매각이 없이는 출자금에 손대기가 어렵고 당국 차원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조심 또 조심’ 금융당국 예의주시

일본 금융보복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국내 금융시장 불안만 키우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일 갈등이 정쟁에 악용되면서 국내 투자자 피해를 비롯해 일본이 의도하지 않은 효과까지 발생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좌담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만일의 사태에 대해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벌어지지도 않은 일본의 금융 보복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국내 금융시장만 불안해지는 셈”이라며 “국내에서의 과도한 불안감 조성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내 투자자인 국민만 보게 되는 격”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는 일본이 의도하지 않은 효과까지 덤으로 얻는 격”이라고 덧붙였다.

이달 거듭 일본의 금융보복 불안감 확산 차단에 나섰던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일부 개인의 부정적 견해나 단편적인 통계를 인용한 잘못된 정보는 불요한 시장불안과 대내외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가능성을 완전하게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일본 변수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3일 일본의 금융 보복 가능성을 낮게 점치면서도 “행여 금융보복 조치가 일어나면 숫자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예기치 못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일본계 자금이 대량 유출된다면 당장 위기는 아니더라도 한국 경제에 심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일본 신용평가사가 한국 기업을 평가할 때 박한 점수를 주거나 불이익을 주는 등의 피해 가능성도 염두해 둬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 보복 가능성을 낮게 점친 강 연구위원 또한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해 행정조치를 통해 압박할 가능성은 있다”며 “금융당국이 일본을 포함한 외국계 은행의 자금흐름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금융당국도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와 관련된 금융 부문의 불안감 확산 차단에 나서면서도 일본계 금융자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본계 자금의 대출규모와 대출 만기 구조 등을 점검하면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은은 지난 8일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외환·금융부문 점검반을 구성한 바 있다. 한은은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해 시장 안정성 확보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이다. 한은은 시장 불안 심화에 대비한 ‘시나리오별 대응 계획’을 상시적으로 점검·보완하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도 시중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 전문가 등과 함께 ‘일본 수출 규제 관련 금융 부문 점검 테스크포스(이하 대일 TF)’를 가동했다. TF는 매주 회의를 열어 금융권을 비롯한 시장 전반에 유통된 일본계 자금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피해를 받는 국내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