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대법 판례 근거로 ‘불법의료행위’ 규정돼
비의료인 시술 합법화 움직임…의료계 반발 강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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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수년간 타투(tattoo. 문신)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조직폭력배 같은 ‘어두운’ 세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미디어에서도 타투를 한 운동선수나 연예인의 모습이 등장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이 됐다. 길거리에서도 타투를 한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중화된 만큼 타투의 유형도 다양해졌다. 온 몸을 덮는 커다란 타투뿐 아니라 레터링, 꽃, 별자리 등 작게 포인트를 줄 수 있는 타투도 있다. 자신의 가족사진이나 반려동물의 사진을 타투로 새기는 이들도 많다.

지난 2018년 11월 21일 식약처가 개최한 ‘문신용 염료 안전관리 방안 포럼’에서 문신용 염료 제조사 더스탠다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반영구 문신(눈썹·입술) 이용자는 1000만명, 타투(전신) 이용자는 300만명에 달한다.

타투 시술을 받는 이들이 많아진 만큼 타투이스트들도 많아졌다. 더스탠다드는 반영구문신 시술자는 30만명, 타투 시술자는 5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타투이스트 대부분은 ‘범법자’인 상황이다. 법원이 타투 시술을 의료행위로 판단하고 있어 비의료인의 시술을 불법으로 보기 때문이다.

28년 전 판례 근거로 ‘불법 의료행위’ 처벌

대법원은 지난 1992년 5월 22일 “자동문신용 기계로 색소를 주입해 문신을 시술한 행위는 그 시술방법이 표피에 색소를 주입해 통증도 없고 출혈이나 그 부작용도 생기지 않아 의료인이 행하지 않으면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일반 공중위생에 밀접하고 중대한 위험이 발생할 염려가 있는 행위라고 볼 수 없어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본 원심판결은 법리오해, 채증법칙 위배,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있다”며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은 “과연 표피에만 색소를 주입해 영구적인 문신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 및 그 시술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가려보지 않았고 작업자의 실수 등으로 진피를 건드리거나 진피에 색소가 주입될 가능성이 있으며, 문신용 침으로 인해 질병이 전염될 우려도 있는 점을 간과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의 이 같은 판례를 근거로 법원은 그간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의료법 위반으로 판단해오고 있다.

지난 6월 창원지법 형사3부(부장판사 이용균)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타투이스트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비의료인인 타투이스트의 타투 시술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고 “국민의 건강에 위험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이 큰 범죄”라고 판시했다.

타투를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법령상 타투를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28년 전의 대법 판례로 인해 비의료인 타투이스트들은 여전히 ‘범법자’의 굴레를 쓰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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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화 법안’ 수차례 발의에도 번번이 무산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이 일반화된 만큼 정치권에서도 이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8대 국회 당시인 지난 2010년 2월 김춘진 당시 민주당 의원은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합법화하는 ‘문신사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김 의원은 타투이스트 면허와 업무 범위, 준수사항과 위생관리의무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해 문신업을 양성화하고 건전한 운영과 국민 건강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대부분 타투가 비의료인에 의해 이뤄지고 있어 법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고 이에 대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는 실정을 개선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18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김 의원은 19대 국회에서도 같은 법안을 발의했고, 20대 국회 임기 시절인 지난해 10월 21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동일한 내용의 문신사법을 발의했으나 역시 임기만료로 통과되지 못했다.

의료계 반발 강해

문신사법의 통과를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곳은 의료계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료계에서는 문신사법이 발의될 때마다 반대 성명을 발표하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김 의원의 문신사법 발의 당시 의협은 “문신행위는 인체에 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며 “비의료인에게 허용될 경우 국민건강에 큰 문제가 될 수 있고, 문신사에게 독자적인 영업권을 부여할 경우 향후 의료기사 등 다른 의료관련 직역 종사자에게도 영업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요청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10월 정부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규제 혁신방안 중 하나로 비의료인의 눈썹 문신 등 반영구화장 시술을 허용하기로 하자 대한피부과학회, 의협 등 의료계 단체들은 또다시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의협은 “대법원 판례에서도 미용 문신행위가 인체에 침습을 동반하고 공중보건상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명백한 의료행위라고 판시하고 있다”며 “헌법재판소도 문신 시술행위는 피시술자의 생명, 신체 또는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며 사법부의 판단을 근거로 정부 발표 전면 취소를 요구했다.

대한문신사 중앙회 회원들이 지난 2019년 9월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신사 법제화를 촉구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대한문신사 중앙회 회원들이 지난 2019년 9월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신사 법제화를 촉구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정부 ‘신직업’ 선정에도 여전히 범법자 신세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5년 1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창조경제 실현 및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신(新)직업 추진 현황 및 육성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타투이스트를 정부가 육성·지원할 신직업 13개 중 하나로 선정하고 예술문신 시술자 관련 해외사례 및 부작용에 대한 연구 분석 및 의료인, 종사자 등 이해관계자 등과 제도화 방안 논의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정부는 “문신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젊은층이 증가해 해외유학을 통해 문신기술을 습득하거나 국제대회 수상자도 다수 배출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은 비의료인의 문신시술행위가 법상으로 금지돼 음성적인 문신 시술행위가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의 관리·감독을 통해 예술적 창작활동을 보장하고 비위생적·비전문적 문신시술행위로 인한 사회문제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합법화 시 일자리 확대 및 전문적 직업 영역으로 발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 이후에도 비의료인의 타투시술 합법화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타투이스트들의 합법화 분투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합법화해달라는 헌법소원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문신사중앙회(이하 중앙회)는 지난 7월 21일 정부 발표에 따른 합법화 입법 추진이 지연되자 이를 재차 촉구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중앙회는 지난 2018년 5월에도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으며, 이보다 앞선 지난 2017년 12월에는 한국패션타투협회가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들 헌법소원 사건은 아직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 지난 2월 27일에는 비의료인 타투 시술 합법화와 타투이스트의 ‘일반 직업화’를 요구하며 타투이스트 노동조합 ‘타투유니온’이 설립되기도 했다.

타투유니온은 설립선언문을 통해 “타투를 의료행위로 보고 비의료인의 시술을 불법으로 판단한 판례는 오직 대한민국에만 존재한다”며 “시대와 문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제도가 우리의 노동을 노동이 아닌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법·제도를 개선해 타투이스트의 ‘일반 직업화’를 이루고 노동의 가치를 바로 세워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타투유니온은 위생 및 감염관리 가이드를 만들어 감염 부작용 등 의료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한편 타투이스트들에 대한 안전관리 교육을 통해 안전과 보건 확보에 힘쓸 계획이다.

반영구화장 등 타투 시술을 받은 사람이 1300만명에 달하며 국내 타투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이 1300만명 가운데 의사에게 시술을 받은 이는 극히 드물다. 현실과 괴리된 법률과 제도를 개선해 타투 산업을 양성화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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