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수 작가글 써서 먹고삽니다.와인으로 가산 탕진 중입니다.
▲ 임승수 작가글 써서 먹고삽니다.
와인으로 가산 탕진 중입니다.

십여 년 전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마르크스 <자본론> 강의를 했다. 독서 동아리 담당 교사가 학생들에게 마르크스 <자본론>에 대한 강의를 들려주고 싶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인 나를 초청한 것이다. 비평준화 고등학교여서 그런지 꽤 어려운 내용인데도 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느껴졌다.

강의를 마치고 귀가한 후 습관처럼 싸이월드에 접속하니 마침 친구 신청 팝업창이 뜨는데, 살펴보니 <자본론> 강의를 들은 고등학생이다. 그런데 신청한 일촌명이 무려 ‘공산스승’과 ‘공산제자’ 아닌가. 아마도 강의 내용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자라 일촌명을 그렇게 신청하지 않았나 싶었다. 예상치 못한 단어와 마주치고 살짝 고민했지만 거절하기는 뭣해 일촌명을 ‘친구’로 바꿔서 다시 신청했다.

그런데 하루는 이 학생이 미니홈피 방명록에 비밀 글을 남겼다. <자본론> 강의를 들은 후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학교 공부가 손에 안 잡힌다는 내용이었다. 식겁한 나는 ‘우선 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런 문제는 졸업 후에 고민하면 어떻겠냐’고 다급하게 댓글을 남겼다.

이 일 후로 청소년 대상 강연은 발언 하나하나를 더욱 조심한다. 그 나이대 아이들은 지식과 사상을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여과 없이 흡수한다는 것을, 싸이월드 일촌명 사건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세상을 보는 다른 관점도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 정도이지 그 이상은 주제넘은 짓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특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은 꼭 빼먹지 않는다.

작년 10월에 청소년 도서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를 출간했다. 책에는 자본주의자 나소유와 사회주의자 오평등이 등장해 서로 논쟁을 펼친다. 출간 이후 여러 고등학교에서 이 책을 주제 도서로 강의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나소유와 오평등 양측의 상반되는 주장이 모두 설득력 있어서, 이걸 어떻게 한 사람이 썼는지 신기하다는 게다. 어떤 학생은 대놓고 내 정치 성향을 묻는데, 책 읽고 강의를 들어봐도 저자가 자본주의자인지 사회주의자인지 판단이 안 되어 너무 궁금하단다.

원래 출판사는 나에게 ‘사회주의’에 대한 청소년 교양서를 써 달라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자고 역제안했다. 심지어 책 담당 편집자가 초고를 읽으며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나소유의 의견이 다소 우세하게 느껴진다며 우려를 표명할 정도였다.

사회주의자인 내가 원고를 쓰면서 가혹할 정도로 기어를 중립에 박은 이유는 그것이 청소년 독자에게 취해야 할 저자로서의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이 올바르다고 확신하더라도,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억지로 주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권리도 없고 말이다. 양측의 의견을 왜곡 없이 성실하게 전달하고 판단은 학생 스스로가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이 공평하고 정당하게 대중과 만날 접촉면과 기회를 박탈당해왔다.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에서 나소유와 오평등을 등장시켜 두 진영의 목소리를 동일한 비중으로 담은 또 다른 이유는, 이러한 형식을 취했을 때야 비로소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의 목소리를 간신히 전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주장만 담은 청소년 교양서를 썼다면 과연 그 누가 관심이나 가졌겠는가. 양쪽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어느 쪽 편을 들지 않는 태도가 더욱 큰 신뢰를 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경희대학교에서 마르크스주의 강의할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내 수업을 수강 신청한 이유를 물어봤는데, 한 고학번 복학생이 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신청했다는 게다. 친구가 아마도 좌파 운동권이겠구나 싶었는데, 들어보니 예상 밖의 얘기가 흘러나왔다.

수업을 추천한 친구는 처음에 강의를 들으며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마르크스주의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과제물 제출 때에도 일부러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했다. 그 학생은 졸업 후 남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막연하게 기대한 것과 직장생활이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내내 마르크스주의 수업에서 배운 내용이 떠올랐다고 한다. 노동자가 되어 자본주의의 민낯을 경험하고, 뒤늦게 마르크스주의를 재평가하게 된 것이다.

인생의 진로와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는데, 바로 그 친구가 복학생에게 꼭 수강 신청하라고 신신당부했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듣고는 마음이 복잡했다. 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대기업을 그만두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으니, 뭔가 그 학생의 부모님에게까지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나 역시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후 더욱 행복해졌으니, 좋아하는 일을 찾아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응원할 뿐이다.

지금으로서는 대학이든 고등학교든 노동조합이든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대중에게 전할 기회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다. 이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유연해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마르크스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시민권을 얻을수록 개인이 행복해지고 사회가 진보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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