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조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순조 1년(1801) 10월, 황사영이라는 천주교 신자가 조선 조정에 의해 추포됐다. 천주교 신자가 많은 박해를 받던 와중에 천주교 신자였던 황사영이 제천의 배론이라는 곳에 숨어있다가 발각된 것이다. 그런데 황사영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명주천에 작성한 편지, 즉 백서가 발견됐다.

그 내용은 조선 조정에게는 충격적이었다. 황사영 백서에는 정조 9년(1785) 이후 조선 천주교의 상황과 “신유교옥”의 상세한 내용이 적혀있었다.(참고로 “신유교옥”은 보통 “신유박해”라고 부른다. “박해”는 천주교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천주교 중심적인 묘사고, 조선 조정은 천주교도들의 난리라는 뜻의 “교난”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필자는 가치 중립적인 표현인 “교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조선에 온 최초의 외국인 신부인 주문모(周文謨, 1752-1801) 야고보 신부의 활동과 자수, 그리고 순교에 대하여 소개했다.

황사영은 백서에서 청의 황제인 가경제(嘉慶帝)가 종주권(宗主權)을 행사해 조선이 서양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청의 감독과 보호를 요청하며, 조선을 청나라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켜줄 것도 요청했다. 이것은 조선에서도 북경에서처럼 선교사의 활동을 보장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 조정을 가장 아연실색하게 만든 백서의 내용은 황사영이 외국 군대를 요청했다는 점이었다. 황사영은 백서에서 서구 천주교 국가의 군함 수백 척과 군대 5만-6만명을 조선에 보내서 조선의 천주교 신자가 자유롭게 천주교를 믿을 수 있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대의 조선 조정, 그리고 훗날 학자들은 이것을 “명백한 반란”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황사영은 체포된 뒤 역모를 모의한 죄인에게 가해지는 형벌인 거열형(車裂刑)을 받았다. 또한, 숙부 황석필과 황사영의 부인은 귀양을 갔고, 황사영의 모친은 관노비가 됐다. 역모를 모의한 사람은 그 집안 자체를 멸족시킨다는 당대의 형벌 원칙에 적용된 것이다. 또한 황사영과 인척 관계였던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훗날 신앙을 지키다가 희생당한 정하상(丁夏祥, 1795-1839) 바오로도 황사영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심지어,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샤를르 달레(Claude Charles Dallet, 1829-1878) 신부도 “지나친 상상에서 나온 유치한 계획이며, 저 시대의 몽상(夢想)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다른 한편으로 황사영의 모습은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는 행위로도 평가받는다. 천주교는 처음에 “서학(西學)”, 즉 여러 사상 중 하나로 조선땅에 들어왔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가 신주(神主)를 땅에 묻은 “진산사건” 이후 성리학과 다른 사상은 이단(異端)으로 규정지어지고, 엄격하게 금지됐다. 그 결과 조선조에서 천주교는 자유롭게 신앙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황사영의 백서는 천주교를 믿을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한 황사영의 몸부림이라고도 평가받는 경우도 있다.

한국 땅에 소위 “신앙의 자유”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세기 이후였다. “강화도조약”을 통해 일본과 불평등한 근대적 외교 관계를 맺은 이후 조선은 서구 열강과 불평등한 근대적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이것은 근대 이전의 “사대교린(事大交隣)”, 즉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고, 다른 나라는 오랑캐로 규정하고 하대하는 것을 기반으로 했던 외교 관계와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실제 내용은 불평등했지만, 겉모습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동등한 외교관계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교 관계를 서구 열강과 맺으면서, 기존에 조선 조정이 이단으로 규정했던 천주교, 불교와 새로운 종교였던 개신교는 포교와 신앙의 자유를 획득했다. 이러한 정황은 황사영 백서에 대한 평가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황사영 백서는 당대 탄압받고 있던 종교의 신자가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고, 지금의 상황에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최근 대선 정국에서 여러 종교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각 정당의 후보는 한국의 거대 정교 수장과 만남을 가지고 있다. 또한, 특정 정당 후보와 무속,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선전(신천지)이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이 가운데, 무속, 신천지 등은 특정 종교에게 이단으로 간주 되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인식이 부정적인 종교다. 이 종교들이 연루되었다는 제보들 속에서 그 종교들이 현재 처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황사영 백서 사건 속에서 종교를 유지하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종교 외부의 권력과 결탁하는 것이 자칫 그 종교 자체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