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숙 작가<br>
ⓒ김원숙 작가

1978년 어느날 회사를 마치고 들른 명동화랑에서 난 김원숙 작가의 그림을 처음 만났다. 그림은 이쁘지도 않고. 색채도 없이 야외에 두 젊은 남녀가 누워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런데 왜 이 그림이 매력적인 걸까. 현실과 이상이 만들어 놓은 풍경과 서정적 붓질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의 붓질은 신비한 스토리와 시추에이션(situation)을 그림 속에 춤추듯 빚어낸다. 남녀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사람, 하늘을 나는 사람 등 김원숙 작가의 그림은 이러한 구성을 거침없는 목소리와 붓질을 통해 보여준다.

김원숙 작가의 그림은 단순한 스토리, 심플한 주제가 특징이다. 그는 <달 그림자 춤> 작품 속에 아주 단순한 춤사위를 화폭으로 담아냈다. 그림 속 모두가 흰옷을 입고 한국적인 춤을 추고 있다. 그 몸짓들은 우리와 나의 삶처럼 느끼게 해주며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이는 김원숙 작가가 얼마나 한국적인가를 보여준다.

Winter Tree, 101.6x76cm, Oil on Canvas, 2019 [사진제공=김원숙 작가]
Winter Tree, 101.6x76cm, Oil on Canvas, 2019 [사진제공=김원숙 작가]

그녀의 그림에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화폭 속에 담긴 사랑을 살펴보면 남녀의 뜨거운 사랑, 뱃전에서 포옹하는 남녀, 때로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잠을 자는 모습에서 남녀, 부부의 미움 등 삶 속에서 보여지는 애증의 스토리가 그대로 솔직하게 담겨있다. 마치 이웃의 이야기처럼. 그것도 아주 담백하고 솔직하게 담겨있어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그림에서 담고 있는 이야기는 자전적인 한편, 그림의 무대는 드라마적인 공간으로 이뤄졌다. 이는 눈 오는 야밤의 홀로 있는 빈집의 불빛처럼 쓸쓸하다. 그러나 아름답고 치명적이며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무만 한그루 서 있는 고즈넉한 풍경, 겨울밤의 물 흐르는 풍경, 부러진 나무, 산 물길에 외롭고 쓸쓸한 배 한척 등.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쓸쓸함과 그리움의 감정이 마치 고향을 떠나 사는 이방인의 삶처럼 그대로 그림 속에 보석처럼 박혀있다.

그러나 1978년 전후의 그림 속 이야기는 <지젤>처럼 연극적 공간에서 펼쳐진다. 라인강변에서 춤을 추고 사랑하고 돌아누운 모습들을 표현한 <지젤>은 1841년 6월 28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됐고 이후 낭만 발레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다.

1990년, woman,  캔버스에 유채, 50.5  x 51cm [사진제공=김원숙 작가]
 

이 발레의 기원은 당대 최고 발레리나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카를로타 그리지(Carlotta Grisi)를 향한 프랑스 시인 고띠에의 찬미에서 출발했다. 그리지의 춤을 보고 숭배하게 된 고띠에는 그녀를 위해 새로운 역할을 구상하던 중,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가 쓴 한 시구에서 빌리(Wili)라는 처녀 귀신들의 이야기를 읽고 영감을 받았다.

<지젤>의 줄거리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젊은 귀족 알베르(Albert)는 신분을 숨기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활발하고 명랑한 마을 아가씨 지젤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김원숙 작가의 그림 또한 코믹과 아이러니, 그리고 짠한 슬픔이 묻어나온다. 생활과 삶 속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김원숙 작가 작품 중 한 여자가 강물 위에서 남자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그림이 있다. 아슬아슬하게 연기를 하는 부부의 숨 막히는 인생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Evening Swim II, 101.5×101.5cm, Oil on Canvas, 2020 [사진제공=김원숙 작가]
 

<밤길 드라이브>도 그러한 삶의 밤 풍경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컬러나 색채로 쓰지않고 모든 풍경들을 흑백으로 그려냈다. 이렇게 흑백으로 그린 이유는 상황을 더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서다. 이는 김원숙 작가만의 탁월한 스킬이며, 서정적 붓질이다.

김원숙 작가의 그림 속 무대는 집인 경우가 많다. 그의 많은 그림 속 배경은 집에서 시작된다. 부부가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모든 작은 섬세한 이야기가 여기서 일어난다.

빨래를 너는 모습,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풍경, 그리고 사랑과 갈등 등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품고 있다. 함께 울고 웃고, 외롭고, 좌절하고, 기뻐하며 환희하는 이 모든 풍경들을 이처럼 집약시킨 예술가는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김원숙 작가는 한국의 여자 샤갈(Marc Chagall, 러시아 화가)이자 마지막 샤갈인지도 모른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류 화가 샤갈답게 그가 그려낸 풍경은 꿈과 사랑을 쫓는다. 아름답고 슬픈 영혼을 가진 여자의 서정적인 빛깔을 검은 먹빛으로 되살려내고 그 꿈을 아름답게 색칠한다. 

Forest Lights I, 196×174cm, Oil on Canvas, 2016 [사진제공=김원숙 작가]
Forest Lights I, 196×174cm, Oil on Canvas, 2016 [사진제공=김원숙 작가]

특히 이 모든 이야기들이 때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때로는 창문처럼, 평면과 입체로 우리의 삶 속 모든 이야기들을 낮은 목소리와 숨결로 우리들을 감동 시킨다.

특히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을 담은 그림은 환상적이고 정겹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그림은 한편의 아름다운 서정시, 연정의 시다.

그래서 시적인 그림을 보면 중독처럼 오랫동안 보게 된다. 그의 그림을 계속 시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질리지 않는다.

마침 연애 할 때처럼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하고 생각나게 하며 그때의 감정을 되살린다. 이는 내가 그림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림이란 그런 것일 수도 있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br>(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쉬운 그림, 너무 쉬워 그대로 그림 속에 달려들고 가슴에 안겨 한 폭의 사랑을 위한 세레나데가 된다. 그곳에는 연인들의 작은 행복의 이야기가 봄바람처럼 흔들리고 있다. 그것들이 모여 사랑이 되고, 행복이 되고, 그리움도, 시도 된다. 그림도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너무나 편안하고 소박해서 그림 속에 가서 한참동안 놀다오고 싶다.

어렵게 언어를 풀어내는 기술은 미술이 아니다. 진정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미술이란 이런 것이다. 이런 그림을 보면 나는 언제나 행복하고 그것은 또 나의 삶처럼 절대적으로 공감하기도 한다.

그의 모든 그림들이 매일 밤 나의 방 침실 천정에 어른거린다. 내가 잠을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게 잔 날들은 놀랍게도 그의 그림을 본 날들이었다.

이는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아니, 내겐 피할 수 없는 마약인 이유다.

“예술이란 결국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옷이나 가구를 하나 사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고, 미술 작품도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김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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