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자 작가
ⓒ조춘자 작가

미술의 역사 속에서 ‘미적인 대상으로서의 누드’는 중세 때 잠시 제약을 받기는 했지만, 그리스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예술가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주제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누드가 생명력과 아름다움의 절대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드는 벌거벗은 여체의 그림이란 이유로 곧잘 천박한 에로티시즘으로 폄하돼 왔다. 특히 동양 쪽에서는 관련된 그림 대부분이 춘화라는 양식으로 남아있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체화는 그리 풍요롭지 못하고 궁핍한 편이다.

이처럼 한국화의 열악한 전통 속에서도 조춘자 작가는 20여 년 이상 누드화를 그려왔다. 최근 그는 월전 미술상이나 춘추 미술상을 통해 누드화의 채색과 예술적인 면에서 상징적 평가를 받았다.

여인 (woman) 한지에채색 (natural pigment on korean paper) 116.8x91cm 2020년 [사진제공=조춘자 작가]
여인 (woman) 한지에채색 (natural pigment on korean paper) 116.8x91cm 2020년 [사진제공=조춘자 작가]

조춘자 작가의 전체적인 테마는 누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전신상이나 군상 혹은 좌상 등은 직선과 곡선이 화폭 속에서 적절히 이뤄져 누드화의 특성을 풍부하게 살려내고 있다. 또한 여체의 단정한 이미지와 자세의 다양한 구성이 여체 묘사의 정직함과 탄탄함을 받쳐준다.

특히 조춘자 작가의 회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색채 표현의 아름다움이다. 그가 그린 누드의 특성은 색채의 대비에서 회화의 강렬한 대조적 효과를 보여준다.

또한 그는 한국 채색화의 전통을 이어 온 천경자 작가 이후로 그 정통성을 누드를 통해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쪽물을 들인 것처럼 은은하고 우아한 색채가 천과 실루엣으로 가꿔진 여체의 선들과 만나 채색화 누드의 정통성을 확보했다. 전통적 미인을 섬세하고 깔끔한 선으로 묘사한 그의 누드는 노랑색과 검정, 빨강의 강렬한 색상으로 서양의 누드화가 가질 수 없는 단아함을 선보이면서 누드화의 지평을 열었다.

조형적인 측면에서는 단순한 구성으로 간결한 선묘 풍의 비례와 조화가 화면 전체에 균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누드는 기본적으로 청초한 감정을 보여주는 편이며, 미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두지 않았다. 그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律動(율동)(Rhythm) 한지에채색(natural pigment on korean paper) 55x45.5cm 2017
律動(율동)(Rhythm) 한지에채색(natural pigment on korean paper) 55x45.5cm 2017 [사진제공=조춘자 작가]

조춘자 작가는 화려한 붓놀림보다는 담백하고 고집스러울 만큼 절제된 색채로 일관된 흐름의 작업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다소곳한 여인의 표정, 고개를 숙이거나 무표정한 얼굴에 가느다랗고 긴 눈, 치켜 올린 눈썹에 달걀형 형태가 그의 누드 인물화 속 특징적인 얼굴 형상이다.

또한 앞의 가슴에 손을 다소곳이 얹은 모습, 치맛자락을 여미거나 머리를 묶는 모습 등 그림의 인물들은 전체적으로 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침묵적인 여인의 내면을 추구하고 응시하려고 한 그의 정신과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누드를 즐겨 그린 오퀴스트 르누아르는 “가슴이나 허리를 애무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느끼는 그림을 그리려 노력”했다고 한 반면 조 작가는 담백하고 인간의 삶으로서의 순수한 누드화를 위한 충동을 그림으로 그리고자 노력했다.

그렇기에 그의 누드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분 냄새를 풍기는 에로틱한 표정이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신 여인들이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순결하고 단아함이 그득하게 풍기는 누드를 담아냈다.

여인(woman) 한지에채색 (natural pigment on korean paper) 72.7x53cm 2020 [사진제공=조춘자 작가]
여인(woman) 한지에채색 (natural pigment on korean paper) 72.7x53cm 2020 [사진제공=조춘자 작가]

본질적으로 조 작가는 여전히 인물 중심의 누드를 다루면서, 이전에 그가 보여줬던 전통적인 호분과 석채를 섞어가며 전통적인 화법의 계승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그는 응정취상(凝情取象)의 이념으로 “마음을 집중해 형상을 취하는 힘”을 느끼게 하는 화풍에 집중했다. 그는 화가가 그리고자 하는 인물형상을 옮기기 위해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집중해 쏟아 넣어야 생기가 살아 움직인다는 이치를 보여준다.

그의 누드화에서 좀 더 특별한 시각으로 관심 있게 봐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단신상이나 군상에서 보이는 독특한 눈빛의 시선이다. 그 작고 가느다란 눈은 일정한 방향으로 시선을 내려놓고 있다. 그림에는 무심한 듯 무표정한 시선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들의 방향은 대부분 아래로 향하고 있다.

그 시선은 두말할 여지없이 작가의 감정과 내면의 의식을 드러내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한 시선의 응집력과 결심이야말로 그가 누드만을 고집하는 강렬한 원인과 배경이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표현들은 그가 단순한 누드의 묘사로써 여체를 향하는 것이 아닌, 그의 닫힌 의식을 반영하는 대상으로 한 것이 명확해진다.

여인(woman) 한지에채색 (natural pigment on korean paper) 72.7x 53cm 2020년  [사진제공=조춘자 작가]
여인(woman) 한지에채색 (natural pigment on korean paper) 72.7x 53cm 2020년  [사진제공=조춘자 작가]

이는 미술평론가 김영순이 지적한 ‘고독하게 소외된 인간상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속에 여인들의 표정들은 이러한 것에서 기인했다.

케네드 클라크는 “옷을 벗었다는 상태의 단순한 알몸은 보는 사람에게 당혹감을 주지만, <누드>라는 낱말은 교양 있게 쓰일 경우 균형 잡힌 육체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조춘자 작가의 누드는 기본적으로 건강하고 신선한 여체의 미를 가진 대상으로 표현된다. 그런 시각에서 살펴보면 그의 누드화는 통속적 사실주의를 넘어선 전통적 미인의 표현으로 혜원 신윤복 작가의 여인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만의 고집과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밖에도 그의 독창적이고 강한 매력은 주제를 끈기있게 추구하는 일관성과 추진력이다. 그의 누드는 더 이상 벗은 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소재표현에 있어 침묵적인 인상을 돋보이게 한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몸을 부끄러워하고 감추려는 구태에서 벗어나 인간 육체의 근원적인 아름다움과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대상으로서 누드화, 그런 정통성을 조춘자 작가가 잇고 있는 것에서 그는 한국 회화사에서 의미 있는 지점에 서있는 작가다.

조춘자 작가는 “저는 우리만의 정서를 은은한 선과 색상으로 담아내려고 했다. 제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편안함, 안정감을 느끼면 좋겠다”며 “제가 어떠한 감정을 갖고 그린 그림을 관람객들이 그대로 읽어주는 것을 경험한 후 추상적인 감정을 선으로 담아내기 위해 늘 감정선을 유지하고 그린다”고 말했다.

작가의 이러한 발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쉬운 길을 마다하고, 어렵고 힘든 채색화의 기법을 고집하는 한결 같은 채색 예술가, 조춘자 작가. 그와 같은 작가들이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