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작가
ⓒ박성민 작가

그의 작업은 하이퍼 리얼리즘(Hyperrealism·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사진처럼 극명한 사실주의적 화면 구성을 추구하는 예술양식)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는 하이퍼 작가는 아니다. 그래서 박성민의 하이퍼 리얼리스트라는 명칭은 수정돼야 한다.

하이퍼 리얼리즘의 궁극적인 가치와 의미는 실제와 같은 묘사를 통해 이것 또한 허구적인 이미지임을 사람들에게 폭로함으로써 가상과 현실이 바뀌어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박성민은 극사실 풍으로 오브제를 마치 사진처럼 그려 낼 뿐이지, 그것을 전제하거나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2004년을 전후한 초기 박성민의 작품은 세밀하게 투명한 얼음 속에 딸기, 식물의 이파리, 그 덩굴 등을 눈속임처럼 그려내 컬렉터와 애호가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우아하고 담백한 조선백자 그릇에 담긴 얼음과 신선한 과일, 특히 딸기나 수박이 얼려있는 그 모습이란 더 이상의 수식이 불필요할 정도로 보는 순간 눈의 호강과 입맛을 다시게 하는 독특한 정물화 풍경이다.

얼음을 뚫고 뻗어 나온 푸른 잎사귀와 블루베리의 그윽한 상황 풍경은 더욱 생동감이 있었고 유혹적이었다.

그렇게 반쯤 얼린 채 삐져나온 맛깔스러운 딸기는 다양한 도자기와 전통적인 무늬의 격조있는 백자와 어울리며 가히 한국 극사실화와 정물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였다.

그래서 이 작업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극사실주의 화가 로베르토 베르나르디 (Roberto Bernardi)의 <과일이 있는 정물 > 시리즈의 화풍과 대적됐다.

로베르토의 작품이 사진 이상의 사진처럼 그려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박성민은 단순한 재현이나 묘사에 빠지지 않으면서 명확하게 오브제의 의미부여와 과일의 관계성을 드러냈다.

Ice Capsule, 100cmx100cm, Oil on Canvas, 2015  ⓒ박성민 작가
Ice Capsule, 100cmx100cm, Oil on Canvas, 2015  ⓒ박성민 작가

특히 공간의 구성에서도 균형을 고려하면서 세밀한 터치와 치밀한 구도로 여백을 재해석과 대칭으로 확보하는 회화세계를 구축했다.

이전의 딸기라는 고정된 이미지의 화풍에 닫혀 있음이 너무 부담스러운 탓인지 공간 구성이나 배열도 상하 혹은 좌우로 파격적 실험과 변화를 보여줬다.

그 이외에도 이파리가 강조되거나, 도자기의 구성이나 배치에 단조로움을 탈피하면서 시각적 공간 구성에 파격을 가했다. 그것은 박성민 회화의 다양성을 위한 새로움을 향한 예술 의욕이다.

빨갛고 파란 과일들이 원형의 사각 얼음 속에 박혀 층으로 쌓여있거나, 자동차 위에 얼음, 사물을 보는 시선 정면 측면, 위에서 본 시선의 다변화가 그러한 결과물로서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실, 이 모든 것이 그가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치명적인 하나의 장치나 미끼에 불과하다는 점을 스쳐서는 안된다.

근대미술 이전까지 서양미술의 과제는 2차원 화폭에 3차원의 현실 세계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이 근대미술의 한계였다. 더 이상 생각하는 그림이 아닌 보는 그림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박성민은 현대미술에서 그러한 딜레마를 탁월한 그의 묘사력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바로 극사실 풍의 기법으로 여러 형태의 얼음에 딸기와 풀잎들이 가진 강인한 생명력을 함께 각인 시키길 희망한 것이다.

그 은유적이고 내밀한 수사학의 의미나 깊은 사유가 작품 속에서 아주 풍부하게 엿보이진 않지만 말이다.

Watermelon, 80cmx80cm, Oil on Canvas, 2021 ⓒ박성민 작가
Watermelon, 80cmx80cm, Oil on Canvas, 2021 ⓒ박성민 작가

작가는 특히 근작에서 얼음과 얼음 밖의 경계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는 상상의 오브제를 통해 아이스 캡슐(Ice Capsule)로 예술이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만들어내는 도구임을 가열차게 상승시키고 있다.

그러한 열정이나 이념은 마치 “모든 것 속에 들어있는 하나의 생명을 관찰하라”라는 경구와 같은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

일부 평자들이 그것을 ‘생명의 시간’과 ‘소멸의 시간’을 구분 짓는 경계가 바로 ‘냉동’ 또는 ‘얼음’으로 이해하는 것에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진다.

이제 얼음에 박힌 딸기와 블루베리, 청미래 줄기, 그리고 상하로 정면과 후면에 배치한 박성민의 작품들은 싱싱함을 넘어 시각적 즐거움의 절정을 과시한다.

이러한 작업방식에 대해 작가는 “얼음같이 차가운 현실이지만 자유를 염원하고 원초적 희망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상상의 위로를 건네는 작업”이라고 내면의 욕망을 토로한바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작품 옆에 “죽음을 바라보며 사는 삶, 사(死)는 부서진 뼈를 사람이 받치고 있는 형상, 인간은 머리에 죽음을 이고 사는 존재이며, 삶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유에민준(중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 작품의 예술적 동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박성민 작품의 표현기법에 대해서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섬세한 붓질이 보여주는 농담과 색채의 대비, 구성의 대립적, 상반된 이미지도 중요한 관계성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도자기를 배치하고 나열하는 감각, 그릇의 문양표현에서 돋보이는 여백과 창조성과 은은함은 그가 평소에 지녔던 전통적인 미감을 얼마나 민감하게 체득하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Something Great, 170cmx120cm, Oil on Canvas, 2021 ⓒ박성민 작가

이러한 실증적 사실들이 그가 단순히 사진에 매달려 작업하는 포토 리얼리즘 작가가 아님을 증명하는 충분한 하나의 물증이 된다.

비평가들이 박성민의 작업을 ‘단순한 사실주의 화가’가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화가’로 부르자는 시각은 그래서 높은 설득력을 지닌다.

작가 또한 ‘아이스 캡슐’이라는 시리즈 연작으로 ‘얼음같이 차가운 현실이지만 자유에로의 원초적 희망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를 상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고백은 솔직하고 진지하다.

최근 박성민의 작업은 두드러지게 공간에 대한 새로운 확장을 통해 모노톤 바탕에 다양한 색채의 얼음 조각을 전면회화 패턴으로 풀어내는 작품을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화면을 전면으로 확장시키며 아이스 캡슐에서 보여준 탐미적, 시각적 미감을 의도적으로 감축시키며 블루와 핑크등의 올오버 페인팅(전면회화) 양식의 확산은 그의 회화에 전환기 과정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런 작가의 변모는 이것으로 볼 때 더욱 섬세하고 공간을 탁월하게 바라보는 해석자의 입장에 서 있으며 얼음이 품은 상큼한 딸기와 청미래 줄기들의 유혹에서 벗어나 생명의 푸른 절정을 충분하게 과시하는 듯하다.

우리가 이렇게 박성민을 하이퍼 리얼리스트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를 그의 회화가 가진 깊이와 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성민은 기존의 오브제와 시각적 감성을 넘어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중간 메신저로서 ‘아이스 캡슐’ 시리즈를 다양한 형식으로 배열하고 채워내는 것에 몰입해 있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나는 그러한 양식으로의 그의 이행에 동의하면서도 미술이 결국은 시각적 대상의 기능을 어떻게 풀어 낼 것인가를 마지막으로 묻는다. 육면체 형태의 수많은 아이스 캡슐 덩어리를 화폭에 바둑판처럼 늘어놓는 전면회화의 회화성과 철학, 잃어버린 그 시각적 아름다움의 인상과 상실감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말이다.

물론 이 작품들에는 잠재된 여러 개의 비밀스러운 코드가 존재할 것이다. 회화공간에 늘어선 얼음들이 부대끼며 나누고 공유하는 커뮤니티로서의 온도가 그러한 코드가 될 것이다.

또한, 작가가 리얼리스트로서의 차원을 넘어 주관적이고 독자적인 상상력의 개입이 담긴 회화의 실현, 그런 작가의 시선과 감성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에 이런 박성민의 극사실의 정물화는 눈속임이라는 트롱프뢰유(Tromp-L.Oeil)의 차원을 넘어서 존재론적인 철학적인 감정으로 피어나야 하는 당위성을 지닌다.

그럴 수 있을 때 주목할 만한 박성민의 작품들을 경박한 손재주로 치부 될 수 없는 사색적인 작품으로 평가하는 근거가 된다.

미국 최고의 하이퍼 리얼리스트 척 클로즈는 추상표현주의와의 결합을 시도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실물에 근접한 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인간의 내면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회화의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이제 박성민의 회화는, 그림은 결코 현실 사물의 재현이 아니라 독립적인 색채 배열의 단계를 넘어 극사실에 철학을 부여한다.

마치 샤르댕의 정물화에 살바드로 달리의 상상력을 부여한 작가, 그 그림자를 나는 박성민에게서 또 그의 작품에서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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