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주 작가ⓒ왕진오 기자

이석주 작가 작품의 전체적인 인상은 대단히 문학적이다. 백마가 어디론가 황망한 들판을 부지런히 질주하는가 하면, 저 멀리 기차가 연기를 뿜으며 달려가고, 그 사이로 빨간 단풍잎 하나가 바람에 날려 하늘을 가로지른다.

10시 30분 혹은 1시를 가리키는 고전적인 시계가 아득한 풍경 속에 흐릿하게 그려져 있다.

때는 언제나 대강 노을이 막 지기 시작한 저녁이거나 모든 것이 정적을 지키는 새벽이다.

생각보다 그의 화실은 비어있다. 그림들은 아래층에 있고, 대부분 화가가 즐겨 그리는 오브제를 광적으로 모으는 컬렉션도 없고, 덕지덕지 그림을 붙이지도 않았다.

물론 모아 놓은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책꽂이 위에 바짝 말라버린 노란 낙엽 한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언젠가 큰 전람회에 출품했던 그림 속의 진짜 모델 장미 한 다발이 식탁 위에 놓여 있다. 옆 모퉁이에는 1998년을 전후해 그의 그림 속에 중점적으로 보이던 아프리카 조각이 이방인처럼 점잖게 앉아 있다.

출입문 근처에는 그가 찍은 사진들이 칸칸이 재여 있다. 인물 사진, 풍경 사진을 항목별로 정리하려 했지만 포기한 듯 뒤섞여 있다.

그 사진들은 더러 볼만했지만, 어떤 것은 초점이 안 맞았고, 대부분은 손때 가득 묻힌 채 구겨져 있었다.

그는 왜 사진을 즐겨 보고 있을까? 그에게서 사진은 왜 필요한 것일까? 이 사진들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그는 있는 사진을 그대로 보고 그리지는 않지만, 그의 빈 캔버스에는 이미 그의 완성된 이미지가 숨겨져 있다. 그 숨겨진 이미지를 우리는 사진 몇 장에서 주울 수 있다.

자신이 지루하다고 느껴질 만큼, 우리는 그가 다음 작품에 집어넣을 것이 무엇인지 서로 잘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이석주 작가는 의외로 부드럽고 친근감 있는 쑥스러움을 잘 타는 화가다. 그의 작품 속 풍경은 어쩌면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그의 풍경은 사진 속에 있지 않고 이석주의 머릿속에 언제나 하나의 이미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화가의 예술세계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기 위해 그가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가야 하는 그것은 필수적이다.

이석주 작품을 이야기하기 위해 평자들은 한결같이 ‘벽’ 연작으로 눈을 돌린다. 그의 벽 작업은 1978년부터 시작하여 1982년에 이르기까지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석주, 벽, 100×80㎝, oil on canvas, 1980ⓒ이석주

변화의 속도가 빨랐던 당시 분위기보다 비교적 오랜 시기까지 지속한 그의 연작은 작품의 완성도와 회화성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받을 만했다. 최근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극사실 기법이나 구성의 원형을 모두 거기서 볼 수 있어 중요성이 높다.

실제 이석주라는 이름은 ‘벽’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그만큼 그의 벽 작품은 많은 사람에게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실제 그의 벽은 매우 단순한 모습이다.

작품 주제는 우리가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벽 일부를 극사실 기법으로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벽돌의 질감은 물론, 태양이 비스듬하게 비쳐 벽돌의 작은 부분까지 미세하게 드러낸 분위기는 미국의 극사실주의 화가 엔드류 와이어드(A. Wyeth)의 풍경 한 부분을 도려낸 듯하다.

특히 빛에 의한 그림자의 표현은 날카로움이나 화면의 대조적인 효과에서 단연 눈길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초기의 작품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눈여겨볼 부분은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그림자’에 관한 놀라운 표현력과 관심이다.

그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그림자’ 표현의 기술처럼 몇 가지의 강렬한 양식과 특징을 보여준다. 1981년도 벽을 주제로 한 작품은 붉은 벽돌 위에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여준다.

그림자에 대한 시각은 작가의 개별적인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물론 작가가 어떤 사물을 선택했을 때 이미 그것은 작가의 감정이 이입됐다.

그러나 70년대 말 당시 우리나라의 미술 상황은 극사실주의가 화단의 중요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때 극사실주의는 철저하게 화면에 번득이는 감각이나 감성을 중시한 시각적인 효과가 돋보이는 작업이 주를 이뤘다.

그의 극사실적인 회화기법은 미국에서 급진적으로 성행했던 사진리얼리즘이나 슈퍼리얼리즘으로 불리는 것과 맥락이 같다. 추상표현주의와 반대되는 이 기법은 미국적 사실주의 또는 구상회화인 서구식 풍경화의 전통에서 시작했다.

표현 양식과 기법으로 볼 때 이석주의 작업은 약간 불투명하지만, 이야기와 서술적인 구성은 독특한 구조를 보인다. 그의 이런 구조는 흔하게 만나는 일상적인 풍경의 재현이나 표현이 아니라, 잘 다듬어지고 엮어진 축복 된 장소로서의 종합적 풍경과 연결돼 있다.

만약 영국 어디에나 있는 시골 풍경이 풍경화가 존 콘스터블(John Constable)이 갖는 행복감의 원천이면, 이석주 예술에 있어 행복의 원천은 그가 직조(織造)해놓은 강렬한 이미지의 편린(片鱗, 사물의 극히 작은 한 부분)이 풍경의 원천이다.

이석주, 사유적 공간, Oil on canvas, 2009ⓒ이석주<br>
이석주, 사유적 공간, Oil on canvas, 2009ⓒ이석주

1984년, 그는 일상의 다양한 표정 묘사를 시도했다. 초기에는 분위기나 표정을 통해서 상황을 암시하는 기법으로 처리되었다. 걸어가는 모습, 둘이서 마주한 모습, 뒤돌아 어딘가를 응시하는 자세 등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그런 풍경은 대체로 배경이 없는 풍경 속에 의도적으로 지워진 채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1984년 개인전 서문에서 자신의 그림에 대한 견해를 명확하게 밝혔다.

현대인의 도시 생활을 미래에 대한 불안, 타산, 스트레스, 고립과 파괴, 집단 노예 모습 등으로 정의하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철저한 아웃사이더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의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특별히 구체적인 인물의 모습을 그리기보다 익명의 뒷모습을 그리는 익명성이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열어두고 있다. 거리 또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범상치 않은 상황을 부분 포착해 환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뒷배경으로 물러나고 한 사람이 뒤돌아 그림자와 함께 운동화를 신은 부분만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곳에서 외로움, 소외 혹은 따돌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감지된다.

이 시기를 그는 ‘까뮈적 우주의 장대한 무관심’, ‘현실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심경을 피력했다.

이석주는 “극사실적 표현은 사물에 대해 차가운 중립적인 거리를 취한 것이기보다는 개인의 존재에 대한 질문과 인간적 방황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것은 철저한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관심의 역설적 표현이다.

1987년 개인전을 계기로 그의 작품은 기존에 해오던 작업과 다소 변형된 콜라주와 조합한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그가 인용하고 있는 물체들은 숫자가 있는 회전판, 계기판, 우산, 컵 등 특별히 화면의 내용과 연결되지 않는 오브제와 합성된 형태를 보여줌으로써 작품의 방향을 간접적으로 지시한다.

그는 이런 작품을 ‘조형적으로 중요한 나의 전환은 모티브 하나하나가 조립∙재구성’ 된 것이라고 회상한다.

이석수, Routine, 227x363cm, Oil on canvas, 1991ⓒ이석주
이석수, Routine, 227x363cm, Oil on canvas, 1991ⓒ이석주

이후 이석주는 집요하리만큼 일관되게 2000년대까지 동일한 풍경의 구성 이미지를 화면에 끌어들였다. 여전히 스프레이에 의한 작업과 사실적인 형상을 가지면서 열린 시각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후의 대작에서 그는 조형적으로 완벽한 구성과 원숙한 표현의 배치로 인간 내면의 심경을 단순하게 드러냈다.

이전 작품이 다양한 이미지를 조립하거나 콜라주처럼 서술적인 엮는 방법을 취했다면, 이 시기의 작품은 간략한 이미지만으로 하나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생략과 단순성 차이를 보일 뿐 아니라 새로운 초현실적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새롭게 시도된 화풍이란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화면과 특별한 관계가 없이 ‘그림자’를 끌어들여 화면의 풍경 이야기를 또 다른 차원의 지시 공간으로 전이시킨다.

그래서 좀 더 깊이 있게 논의될 이석주의 회화에서 ‘그림자’는 마치 알레고리(allegory, 하나의 사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물에 의해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같은 상황을 연출하며, 시간과 나 또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있음과 없음’이라는 화면에서 허상을 보인다.

이러한 형식은 형이상학적 회화 구성기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때로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는 의자, 들판 아니면 바닷가를 달리는 기차, 변함없이 그림자가 늘어진 시계, 언제나 화면 위를 뒹구는 포플러 잎사귀 등이 멀리 또는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이 모든 풍경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극사실적인 표현의 풍경에서 비로소 새로운 세계로 자리를 옮겨가는 환상적인 분위기의 풍경과 시계들, 멀리 보이는 기차 등에서 이석주는 이미지를 조립하는 미술 양식을 가진 극사실주의 작가임이 분명하다.

마치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번지는 극사실 열풍에서 많은 미술 평론가가 그들에게 던졌던 질문처럼 이석주에게 ‘당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진실된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사진술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하이퍼리얼리즘의 본질이며, 그는 이미 그림 속에서 모든 것을 답하고 있다.

이석주는 어디론가 정처 없이 또는 용기 있게 가고 싶어 하는 말처럼 자신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나는 되물었다. ‘왜 당신의 말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가?’, ‘왜 당신의 시간은 늘 고요하고, 왜 당신의 의자는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고 덮인 채 침묵’하냐고.

그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내게 샴페인 한잔을 더 권했다. 거기서 나는 모든 예술가가 갖는 인간적 방황과 우수를 보았다. 꼭 그래서가 아니라 나는 더 따지거나 되묻지 않았다.

돌아오면서 새삼스럽게 이석주 회화의 하이퍼 리얼리즘을 생각한다. 인간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진실한 감정과 그림의 힘은 이석주 회화의 본질이고, 심장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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