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원 작가 ⓒ화이트스톤

미국의 신표현주의 작가 줄리앙 슈나벨은 “나는 항상 개인적인 언어는 없다고 말해 왔다. 다만 개인적인 언어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서승원의 작가 인생 속에서도 “개인적인 언어는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지켜온 언어는 무엇인가? 그는 개인적인 언어가 아닌 ‘회화 언어’를 선택해 왔다.

줄리앙 슈나벨이 고뇌한 것처럼 그도 시각예술에 있어 어떤 표현을 할 것인지에 대해 개인적인 선택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는 좀 더 단호하게 기존의 회화운동을 거부했고, 아방가르드적인 태도로 그만의 예술을 시작했다.

아마 그의 가장 큰 회화적 선택은 1950년 후반에서 60년대 초반, 앵포르멜(비정형미술, 재료의 물성과 화가의 행위를 강조한 추상표현회화)의 열기에 휩싸였을 때였을 것이다. 그때 당시 그가 선택한 언어는 의외로 앵포르멜에 관한 진지한 탐구나 동참이 아니라 그에 반대하는 전향적 자세로 만들어진 미술운동의 창설이었다. 그것은 분명 새로움에 대한 그의 예술가적 열망과 욕구였다.

서승원 작가가 지나온 시대는 예술가에게 불행한 시대였고, 역사적으로는 가난과 궁핍함으로 덧칠해진 긍휼의 시대였다. 또한 전후의 찢긴 상처와 질곡 속에서 무수한 예술가들이 방황과 좌절, 고난의 발걸음을 예술에 찍어냈던 시대다. 그런 시대인 만큼 그에게 앵포르멜 시대의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운동에 참여하길 거부했다.

그런 서승원의 개인적인 작업의 선택에 대해 알려면 1963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봐야 된다. 그가 대학 2학년이었던 1963년 때, 그는 한국아방가르드협회(이하 AG 그룹)를 결성했다.

AG그룹은 현재까지 지속된, 어쩌면 비구상 그룹으로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그룹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그는 이 그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그룹의 결성은 우울했던 5-60년대의 앵포르멜의 미술의 그림자를 넘어 새로운 것을 위한 개혁의 이념에서부터 시작했다. 기하학적 구조적 패턴과 밝은 색을 사용해 화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한 노력이었다.

앵포르멜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그들이 만든 AG 그룹은 좀 더 이념적 체계를 갖춰 종합적인 미술운동을 구현하려 한 본격적인 개혁 운동 중 하나였기도 했다.

Simultaneity 77-56, 1977, Oil on canvas, 162 x 130 cm ⓒ서승원 작가

예술에 관한 이념적인 것과의 일체를 추구하는 이들의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로 미술 무크지를 창간한 데 이어 70년대 한국 현대미술에 논쟁거리를 제공하며 한국적 모더니즘의 지평을 열었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당시 미술비평가로 활동하던 이들도 다수 존재했다. 바로 이일, 오광수, 김인환 평론가 등이다. 평면에서 탈피한 입체 및 오브제 도입 등 혁신적인 이념 체계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큰 노력으로 보인다.

이 시절 그의 작품은 회화의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평면에 대한 구성부터 시작했다. 이러한 구성은 평면적이고 입체적인 양면의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 보니 그의 공간구성은 본질상 평면과 입체를 가지게 되며 아울러 공간구성의 미를 구축하게 됐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기하학적 도형을 응용한 그의 작품인 ‘동시성 67’이다. 

그는 화면구성을 할 때 전통적이었던 방식들을 입체적인 형태로 배치해, 또 다른 형태와 색채를 가지게 했다.

이러한 그의 방법론적인 선택은 마치 1960년대 유럽에서 앵포르멜 류의 작품에 대한 반동으로 구성주의적 추상미술이 성행하고, 동시에 차가운 추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때 일어났다.

이처럼 서승원의 회화는 유기적 그리고 부정형의 형상과 이미지를 제거하고 형과 색으로 견고하게 이뤄졌다.

이러한 그의 작품의 흐름과 배경 뒤에는 한국 현대미술이 전환됐던 시점이기도 한 1970년 때, AG 그룹이 주제로 내건 ‘환원과 확산의 역학’이란 전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나는 서승원 작가의 작업인 ‘동시성’이, 그가 평면성에 대한 극복으로 지칭되는 ‘확산과 환원”이라는 이일 평론가의 관점과 그의 바뀐 작품의 흔적을 중심으로 직관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견해에 동의한다.

마치 산책하는 것 같은 자신의 걸음걸이를 보여준 그는 이제 훨씬 정제된 언어와 방법으로 ‘형태’와 ‘이미지’를 풀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의 작업의 인상은 경쾌한 화면 속에 당당하게 떠 있는 명료한 사각형 혹은 마름모꼴의 형태를 분방한 붓 터치로 완결 짓는 모습일 것이다.

그는 전면적으로 붓을 행사하지도 않고, 빠른 붓질로 반복적인 테크닉을 구사한다. 작업 속에 보이는 붓질은 서구의 어떤 화가에게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터치다.

그렇지만 90년대 중반까지 그는 동양 정서보다는 서구 회화의 문법이나 형태적 속성에 다가가 있음을 보여줬다. 일체의 여백을 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화면을 전면적인 공간으로 사용하는 구성법이 이를 말해준다.

그래서 요즘 명확하게 나타나는 형태의 이미지에 관한 출현은 기하학적 회화의 전선에 섰던 작가 자신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작품세계에 익숙해 있던 우리에게도 가히 이성적 측면에서 혁명적 무게를 가진다.

Simultaneity 98-1031, 1998, Silkscreen, 60 × 77 cm ⓒ서승원 작가

서승원 작가에게 있어, 90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현재까지도 그가 발표한 ‘동시성’ 시리즈는 회화의 평면의 해체성의 변모에서 충분히 열린 지평이 됐다.

그의 최근 작품은 전보다 더 순화되고 온화하게 변했다. 이전의 작품들을 비교해보면 그는 네모꼴의 형태와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자유로운 드로잉류의 색채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서히 공간의 여백을 두면서 부드러운 색채와 형태를 갖추었다. 그가 차가운 화면을 더욱 풍부하게 순화시킬 수 있게 변했다는 것이 더욱 극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어쩌면 그의 흔적이자 얼룩, 마음의 표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형태를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억제된 그의 구성, 거대한 빈 공간에 차분히 정좌를 하고 마음을 다잡아 내려 긁듯이 가로로 세로로 덧칠해진 형태를 보라. 그것들은 마치 잘 보관해 둔 종이 또는 캔버스 위에 오랜 시간의 흔적을 비추기도 한다.

우리는 그가 불분명하게 처리한 점이나 그가 더 이상 강렬한 색채나 예각적인 형태로 화면을 채우지 않으려는 의지들을 논의해보고 규명해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업은 여전히 역사적 문맥 속에 있다.

분명 이러한 변화는 좀 더 이념적 체계를 갖추게 되고, 화단의 종합적 미술운동을 구현하기 위해 본격적인 개혁에 앞장 섰던 그의 70년대에 비해 그의 2000년대의 붓질이 훨씬 자유롭고, 분방하게 덧칠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표현양식은 우리에게 ‘최초의 기하학주의’(이일)로 불리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의 이런 미술형식은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미술사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서승원의 작품 경향을 명확히 볼 수 있는 ‘동시성 67’(130X 162cm )을 보면 당시에 AG그룹이 지향했던 기하학 주의가 어떤 경향이었는지 알 수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1970년대 그의 회화는 형태상에서 약간의 변화를 가지면서 이전에 기하학적 형태에서 크게 보이지 않는 삼각형들이 등장하면서 구성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90년 초반까지 화면에 부유하는 선 그리고 기하학적 도형들과 공존시켰던 점들을 상기했다면, 90년 중반부터 2020년에는 무채색의 배경에다가 겨우 가까스로 보이는 변형된 도형과 붓질로 정적인 회화 양식에 도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양식은 그가 술회한 바처럼 상충된 결과적 표징(標徵)으로 보이는 타당성을 가진다. 아울러 그의 변화는 그 흐름에 변증법적 정반합으로 보인다.

이제 서승원 작가를 대표하는 것은 더 이상 두 세 개의 기하학적 도형과 입체적이었던 ‘동시성’의 공간이 아니다. 그를 상징했던 요소들이 해체되고, 통합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그의 흔적은 1967년의 ‘동시성 67’을 지나, 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과정들을 관찰하면 우리가 오늘날 문제 삼고 주목하고 있는 세계관이 얼마만큼 변증법적 맥락에 닿아 있는지 투명하게 보인다.

그의 작품의 변화는 형태와 색채가 형태를 명백하고 결정적이게 드러나지 않게 됐다는 점을 들어볼 수 있다.

그것은 희미한 형태로 얼룩진 듯 평면 위에 가지런하게 붓질을 한 모습으로, 분할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평면을 덮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이념을 덜어내는 성찰의 시간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Simultaneity 19-952, 2019, Acrylic on canvas, 162 × 130.3 cm ⓒ서승원 작가

그래서 이전보다 훨씬 고요하고 부드럽고 기품과 색면성을 띠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는 일체의 조형적인 어휘를 기하학적 조형의 문맥 속에서 걸어 나와 감성의 영역으로 풀어내려는 열정에 충만해 있다.

이에 대해 이일은 “오히려 스스로를 개방하고 여백의 공간과 상호 침투함으로써, 네모꼴의 면과 바탕을 동질적인 평면 속에 통합시킴으로써 그의 회화는 더욱 자유롭고 확산적인 공간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의 회화 속에서 바넷트 뉴만(미국의 색면추상 화가)이 소망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것보다는 신비로운 숭고함을 표현할 수 있는 미술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보면 기하학적 추상에서 시작해, 절제되고 비개성적인 속성이 두드러진 형태의 추상 표현주의를 거쳐 독창적이고 격조 높은 동양의 추상 경지에 젖어 들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그의 회화에서 이전에 차갑고 논리적인 이성의 행위가 적절하게 절제돼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아마도 이것은 평면에 대한, 그리고 회화에 대한 논리보다 무념의 상태에서 그 참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자유로움의 세계를 그가 끊임없이 동경하고 있을 때 비로소 빛나는 ‘동시성’의 결정체가 틀림없다.

이제 그의 회화는 비록 억제돼 있으며, 결코 차갑지 않은 색면으로 진동하고, 형태 또한 그 진동 속에 잠긴다. 선묘도 단순히 형태적 구성적 요소로써 기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서의 표현성이 스스로 삶의 표정을 획득하고 공간을 창출한다.

이들 모든 요소가 어울려 하나의 독자적인 회화공간으로 숨 쉬고 있으니 이를 ‘통제된 감성적 내재율의 세계’ 라 부를 수 있을 듯 싶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평면에 대한 정착된 견해에서 다양한 형태로의 전이를 통해 기하학적 공간을 넘어 색면추상의 이행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의 절대 평범하지 않은 화면의 해체와 종합에 이르는 감성이다. 여전히 그의 회화 속에는 선과 면이 만들어내는 형태의 흔적이 숨어 있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다분히 고정된 형태의 이미지에서 정태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서승원 작가는 본질적으로 입체적인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 작가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마치 마크 로스코(러시아 출신의 추상표현주의 선구자)가 이 땅에서 태어나 그림을 했다면 서승원 작가처럼 작업을 했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하나의 색채로 채운 배경에서 두 세 개의 색으로 칠해진 직사각형들이 층층이 떠도는 특유의 회화 양식을 선보였다. 특히 색채는 분명하고 결정적인 것이 없이 부드러운 너울 같고, 다른 색채를 뚫고 지나가거나 아니면 희미한 윤곽선 주변으로 스며들어 나오는 듯하다. 바탕의 색채도 거의 지각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를 보인다.

또한 서승원의 회화의 평면에 대한 지각성과 시각은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정적의 형태를 유지한다.

오히려 나는 모든 예술의 근본이자 조형 요소인 형태의 크기와 색채의 배치가 신성한 동양 회화의 중용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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