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자 작가<br>
ⓒ원문자 작가

대중적 화조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 원문자 작가는 어머니이자 정년을 맞은 교수다. 그러나 궁핍한 화가로서 그리 녹록치 않은 시절을 보내왔다.

원 작가는 1964년 아름다움과 정교한 필치로 아카데믹한 화단에 새로운 꽃 그림의 화풍을 선보였다. 당시에는 인물화와 산수화가 주름을 잡던 시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화조는 아름답고 신선하게 대중들에게 다가왔다.

이후 화사한 화조와 여성적인 감성으로 전형적인 채색화의 진수와 아름다운 세계를 표현하는 작가로서 주목을 받게 됐다.

그는 이화여대 미대재학 시절 문공부 주최 신인 예술상에서 수석상을 받았고, 이어 1970년 19회 국전 차석상인 국회의장상을 받았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그도 상을 받고 싶었다. 그는 그런 방정맞은 생각과 욕심을 하였다고 그 마음과 욕심을 취소하고 잘못을 바로 회개했다. 그는 당뇨로 몹시 아팠고 이미 그는 신앙심 좋은 하나님의 자녀가 돼 가고 있었다.

1976 대통령상 수상작품 [사진제공=원문자 작가]
1976 대통령상 수상작품 [사진제공=원문자 작가]

1976년에는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3회에 걸친 개인전을 열었다. 대통령 상을 수상했을 당시 원 작가는 “하나님의 능력과 시험을, 전지전능함을 체험했다”고 말했다.

1980년 후반 그의 화풍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원 작가는 전통 양식에 구애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했다.

학창 시절의 그는 300호 크기 화판에 닭 그림을 15장 그려오라는 스승의 지시에 이를 실제로 다 그려올 정도로 미련하고 고지식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또한 화조를 사실적이고 실제처럼 묘사하기 위해 학교에 닭을 가져가기도 했다. 닭은 아무데나 똥을 싸고 소리를 지르고 오물을 뿌렸고, 이로 인해 그는 친구들에게 구박을 받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원문자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말해주는 아주 단적인 일화다.

그는 종이나 물감도 우리것이 소박하고 자연스럽다고 우리 것을 고집했다.

1988년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기법과 색채의 현대성을 추구하면서 내용과 형식에서 화조를 기본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초창기에 화조화의 부분에서 두각을 보였던 그는 한지의 물성을 직접적인 표현의 매체로 이용해 독자적인 조형성의 미적 세계를 만들어 냈다.

사유공간 한지 Korean paper  2004 [사진제공=원문자 작가]
사유공간 한지 Korean paper 2004 [사진제공=원문자 작가]

화조화를 모티브한 형상과 이미지가 주류를 이뤘던 초기의 작업은 추상적인 조형세계가 확장되면서 부조형태의 입체작업으로 확실한 변모를 가져왔다.

입체적이면서 기하학적이고 구성적인 평면들은 릴리프를 형성하면서 그가 견고하게 이끌고 왔던 채색과 다양한 형상의 이미지로 완결됐다. 그 평면은 장대한 구성과 다채로운 변주를 보여줬고, 시각적 형식을 이룩했다. 그러한 실험적인 형식과 대담한 이미지의 구축은 결코 여성적이지 않고 오히려 남성적인 형식으로 이뤄졌다.

그런 점에서 원 작가의 회화는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것들은 한지의 백색과 깨끗함, 순결함 그 위에 놓여진 기하학적인 화면구성과 여백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먹 작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이 형식을 <사유공간> 이라고 명명했다.

전에 보였던 채색된 종이부조 작업에서 보여줬듯이 그는 입체적인 한지의 화면, 즉 계획적인 구도에 따라 스티로폴의 추상적인 형태를 오리고 그것을 앞이나 뒤로 받쳐 펄프로 떠낸다. 이는 찬란한 색상의 추상화, 또는 종래의 새와 동물 소재를 비사실적으로 도입해 자연적인 정감의 화면으로 조화시키는 조형작업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유공간 2021 [사진제공=원문자 작가]
사유공간 2021 [사진제공=원문자 작가]

실제적으로 그는 치밀한 묘사방법을 버리고 종이가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조형성을 대담하게 살려내는 동시에 입체적 효과와 부피감으로 추상성과 형상의 만남을 극적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이를 스스로의 노력이라고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과 특혜라고 믿었다.

그는 성서의 구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로 화가, 교수, 엄마 노릇 등으로 날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마치 철학자이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가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 시의 첫 구절에 대한 영감을 달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그도 작품을 시작하기 전 기도하면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그림이 풀리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는 기도를 했다. 한결같이 종교적인 자세로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새로운 시각의 사유공간13 200×100cm print and retouch on paper 2021 [사진제공=원문자 작가]
새로운 시각의 사유공간13 200×100cm print and retouch on paper 2021 [사진제공=원문자 작가]

기도를 통해 작업을 하면 거기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작품 속 한지의 깨끗함과 순수함, 부드러움과 고고함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순결하고 지순한 사랑의 표현을 화폭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언제나 기도로서 작품을 준비하고, 고통과 눈물의 십자가 앞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의 십자가로 자신의 짐을 내어놓고 그 십자가 밑에서 그의 예술을 놓아뒀다.

그는 여행길에서 “과연 이런 대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내가 고민하며 온몸을 바쳐 그려낸 그림들이 이 대자연 앞에 왜 그리 초라하게 느껴지는 걸까?” 이렇게 생각하며 신이 창조한 위대한 예술작품에 대해 신과 자연에 대해 경외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한없이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일상의 염려를 하는 그의 작품에서는 우리가 다른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격조가 하나 발견된다. 이는 바로 조상들이 빚어낸 이조백자의 순결하고 청초한 아름다움과 닿아있다.

그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흰색은 어쩌면 이조백자가 가지고 있는 순결한 백색의 여성미를 느끼게 한다. 백자에서 풍기는 우아함과 완벽한 형태를 가지지 않으면서 적당히 일그러진 소박함이 마음에 들어 콜렉션도 했다는 전언이다.

사유공간 한지 Korean paper 2004 [사진제공=원문자 작가]
사유공간 한지 Korean paper 2004 [사진제공=원문자 작가]

작품에 관해 열정과 욕심이 많은 그는 <사유공간> 시리즈의 금호미술관 전시에서 200호에서 900호에 이르는 대작이 중심을 이루는 전시를 해냈다.

어쩌면 원문자는 평생을 한지의 속성에 주목한 작가이다. 오직 한지라는 재료 하나에 충실해 50년 가까운 창작의 열정을 불태웠고 한지의 따뜻함과 깨끗함, 부드러움이 좋아 여태껏 한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일생을 한지 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부드러운 욕망에서 보여지는 파격적인 작품 역시 절제된 구성과 색채 , 부드러운 타원형의 야성적인 구성의 치밀성이 모두 한지 위에 존재한다.

이제 그는 기하학적 도형의 변주와 부드러움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사유공간을 만들고 있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출처 : 투데이신문(http://www.ntoday.co.kr)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원문자는 수직과 수평, 부조와 화면을 뛰어넘는 조화의 세계를 균형있게 정리한다. 이전에 화려하던 색채는 가라앉고 먹색과 형태도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는다. 단순성을 바탕으로 한 기하학적 배열의 아름다움과 그 구성으로 화면에 펼쳐지는 긴장감이 팽팽하면서 절대 순수미를 풀어낸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더 이상 전통회화로 분류하기 어렵다고 한 평론가 서성록씨의 지적처럼, 그는 전통적인 회화를 현대적으로 만들어내는 선구자적 작가로 불릴 만하다.

그는 꿈을 꾸고 있다. 에곤쉴레와 클림트의 작품이 주는 다른 감동을 좋아 한다고 한다.

아울러 예술은 작가가 살고 있던 사회와 시대를 넘어, 작가와의 대화를 가능케 해줄 수 있다는 느낌을 받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작품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도 한다.

기하학적인 도형의 변주 속에서도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품은 작가 원문자는 말한다.

“작품이란 마치 아기를 낳는 일과 같다. 아이를 낳을 때는 너무 괴로워서 다시는 낳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픔을 모두 잊고 또 아이를 낳게 되는 그런 중독 같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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