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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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들었던 기묘한 이야기 하나. 최근 출판계의 불황은 팬데믹 기간 동안 외국인의 입국이 제한되면서 외국인 노동자 위주로 돌아가던 인쇄소가 하나둘 문을 닫게 되어 벌어진 일이라는 것. 얼마 전 보았던 기묘한 풍경 하나. 택시를 타고 광주 시내를 지나는데 길 한복판 공사장에 안전에 유의하라는 문구가 한국어, 태국어, 아랍어로 적혀 있었던 것. 책이라는 가장 추상적인 상품의 생산라인에 외국인 노동자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도심 한복판에서 상점 간판이 아닌 공사장 현수막에서 외국어와 마주치니 낯설었다. 사무노동은 점점 더 세련되어가는 한편 육체노동은 저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되어가는 이곳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세계화, 지구화는 유저가 사용하기 편하게 고안된 세계의 표면, 즉 세계의 인터페이스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를 떠받치는 하방에서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용훈의 시집 『근무일지』(창비 2022)는 그런 세계의 깊숙한 곳에서 뒤엉키며 울려 퍼지는 언어의 향연을 시로 부려놓는다. 공사판에 잡부를 연결해주는 화자를 향해 방글라데시 사내들은 ‘그르모’(포주)라고 부르고(「오산 스타렉스」), 화물차에 짐을 싣고 나르는 이국의 청년들은 ‘안취엔’(안전)을 읊는다(「신수동 수화물 터미널」). “쌀은 미국산 김치는 중국산 삼겹살은 독일산”이듯이 작업장에서도 “국산은 원래 그래 어째, 하겠다고 달라붙는 애들도 없고 버티는 애들도 없고” 하며 연수생인 베트남 청년에게 작업을 지시한다(「콜레라 시대의 노동」).

인부들의 국적이 다양해지기 전부터 공사판의 언어에는 이국의 풍취가 깃들어 있었다. “가다와꾸 가도(는) 가리고야, 가이당 가랑(은) 가라(고), 함마 (든) 함바(의) 한빠 (간다)”와 같이 설명 없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들이 난무하는 현장은 언어의 장벽 못지않게 어린 신입을 향한 텃세가 기승인 곳이다. “삼촌들에게 개새끼라고 짖었더니, 단박에 공사장서 호로새끼 한마리 태어”나는 이곳은 “좁고 일할 노인네는 많”다(「당신의 외국어」). “반생이를 엮어서 렝가를 쌓고 다시 쌓고 아까렝가를 쌓”아 만든 “단꼬 케이크”는 하염없이 쌓다 보면 입구와 출구까지 막아버린다(「단꼬 케이크」).

시인이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결코 전달될 수 없을 작업장의 현장감이 언어의 리듬과 음색을 통해 생생하게 시로 복원된다. “힘드냐? 고작 이거 했다 힘든 건 아니지? 탕바리 이곳서 무너지면 너는 어디서도 쓰레기 인생으로 살 거”(「밀가루 시멘트」)라는 고참의 타박과, “야 시발놈아 못났지요 바닥만 보고 있습니다 그거 가져오라면 이거 들이밀고 저거 가져오라면 구정물에 휩쓸려서 발만 구르고 있습니다”(「다시 한번 말씀해주세요」) 하는 신참의 넋두리가 고스란히 시에 박힌다. “섞이는 콘크리트 노릿물, 줄줄이 들어가는 레미콘 차량 행렬, 터널 속 울려 퍼지는 물방울 떨어지는, 흔들리는 트럭 전조등에 비치는 흙먼지 알갱이 하나하나”(「점입가경」)가 절로 운율을 형성한다.

노동자들이 밑바닥부터 다져 올려세우는 온갖 건물들은 도시화된 우리네 삶의 근간을 이루는 셈인데, 건물만 세워지고 나면 정작 그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건설되는 모든 형태보다 먼저 서야 하고 먼저 쓰러져야 하는” “아시바 쇠파이프”처럼, “온전한 형태를 가져본 적 없는 우리”는 건설하기 위해 해체되는 숙명을 안고 산다(「해체되기 위한 쇼」). “세워지는 모든 존재들은 당신들의 두 손에서 체결되는데”(「미안한 노동」) 정작 당신들에게 합당한 대우가 돌아가지는 않는다. “연장 챙겨 담고 다리 끝 각반 풀면 사람들은 해체되겠지 흩어지겠지 철거되면 기억나는 사람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는 영 묘연하다(「잡역부」).

인력사무소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 ‘숙련공 한명’으로 간신히 정의되어 모였다가 이내 흩어지는 이들을 마주치게 되는 순간도 더러 있다. 백혈병을 앓다가 근무현장에서 숨을 거둔 백두영씨를 거두는 자리, 찾아온 몇몇 지인들도 백씨를 띄엄띄엄 알고 지낸 터라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이다. 그가 남긴 수첩에는 “현장 주소들과 인력 사무소의 연락처, 오가며 만났던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있을 뿐 가족에게 연락할 방도는 없다. 그의 유품인 낡은 배낭에는 “작업복과 안전화, 바닥이 드러난 스킨로션, 손톱깎이와 날이 무뎌진 일회용 면도기가 전부”다(「오함마 백씨 행장」). “나는 스스로 걸어 들어온 거 맞”다고 “어느 누구도 나를 떠밀지 않았”(「다비(茶毘)」)다고 자조적으로 되뇌어 보지만, 영원히 해체되기를 반복하는 삶 위에 건설된 도시는 정작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매끄럽고 화려한 도심의 표면 아래 위태롭게 명멸하는 그들의 생존 신호를 오직 시만이 사력을 다하여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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