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졸중...하지마비 유발
뇌병변장애 2급 판정, 화장실 가는 것조차 어려워
장애인 콜택시 배차 난항...자신 생일조차 못 챙겨
30년 간 시설 옮겨, 장애인 복지 관련 홍보 필요성↑

늦은 오후, 종삼씨가 침대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늦은 오후, 종삼씨가 침대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30년 전 그가 젊었던 시절, 호기로운 청년은 넓디 넓은 삼천포 바다를 거닐었다.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배 위에서 열심히 그물을 던졌다. 그렇게 멸치와 갈치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고된 노동의 시간이 흘러도 그의 일당은 변함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하루 5000원을 꼬박 모아 아버지에게 전했다. 남은 돈은 술을 사마셨다. 이렇게라도 해야 치열한 삶에 자그마한 쉼표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종삼(68)씨가 쓰러졌던 그 날도 역시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평소와 같이 배를 탔고, 그물을 던졌다. 이후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약주 한잔을 했다. 그러고선 갑판 위에서 망치질을 하며 업무를 이어갔다. 망치질을 수차례 하던 도중 갑자기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종삼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뇌졸중. 여위였던 종삼씨의 몸은 고된 노동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뇌졸중은 반신 마비를 동반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하반신은 말을 듣지 않았다. 고작 그의 나이 35살 무렵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하나 뿐인 가족 누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머슴살이부터 엿장사, 이후 고된 어부까지. 평생을 가족을 위해 고생하며 살았던 그지만, 하늘은 이런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런 하늘이 미웠다. 누나와 종삼씨는 그렇게 눈물만 흘렸다.

장애인 10명 중 9명(88.1%)은 질병이나 사고 등 후천적 요인에 의해 장애를 얻는다. 종삼씨도 그 중 한명이다. 장애인은 누구나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흔을 바라보는 종삼씨에게 장애인 복지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종삼씨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종삼씨의 집에 붙어있는 주의문 ⓒ투데이신문
종삼씨의 집에 붙어있는 주의문 ⓒ투데이신문

목숨을 걸고 가야만 하는 화장실

모두가 잠든 늦은 새벽, 종삼씨는 생사를 수어번 넘나들었다. 한번은 집 안 화장실 앞에서 크게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종삼씨 주위에는 도움을 청할 유일한 존재인 활동지원사가 없었다. 오전 6시부터 저녁 7시 까지 종삼씨의 손과 발이 돼주는 활동지원사가 퇴근했기 때문이다.

종삼씨의 방에는 119 직통 전화가 설치돼 있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대처를 위해서다. 하지만 부상을 입은데다 가뜩이나 거동이 불편한 그는 본인의 방까지 필사적으로 기어가야만 했다. 살기위해서. 불행일까, 다행일까. 종삼씨는 119 구조대에 의해 구조됐고, 두 차례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고작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누군가는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종삼씨가 한달에 받는 활동 지원 시간은 451시간 남짓. 종삼씨는 종전에 활동지원서비스를 월 390시간 받았지만, 장애등급제 단계 폐지 이후 최중증 독거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확대돼 더 많은 서비스를 받게 됐다. 이마저도 장애코디네이터가 발로 뛰어준 덕이다. 장애코디네이터가 구, 시 단위의 활동 지원 사업을 추가적으로 신청했기에 451시간이라는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월 451시간을 하루로 나누면 약 13시간 남짓 활동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종삼씨 뿐만 아니라 중증 장애인들은 여전히 밤이 무섭다. 활동지원사가 퇴근하고 없는 밤이 찾아오면  홀로 모든걸 해결해야하는 중증 장애인들에겐 모든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보장법’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종삼씨는 “밤에 넘어졌을 때, 방까지 오는 길이 너무 힘들다. 활동지원사가 밤에도 있으면 좋겠다”며 “장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탓에 지원사가 없는 밤에는 홀로 생활을 해야하는데, 그 사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대처가 어렵다”고 말했다.

언어장애가 있는 종삼씨가 힘겹게 수십 번 반복해서 내뱉은 말은 ‘활동 지원사 24시간 지원’ 단 한가지였다.

[사진출처=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이동지원센터]
[사진출처=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이동지원센터]

생일 축하자리에 참석 못한 생일자

9월30일. 종삼씨의 생일이다. 이날은 장애 코디네이터 관계자들과 함께 생일을 보내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수십년을 홀로 지냈던 종삼씨었기에 더욱이 이번 생일은 중요한 날로 다가왔다. 아쉽게도, 이런 설렘이 슬픔으로 바뀌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종삼씨는 이 슬픈 생일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생일 당사자였던 종삼씨는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를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삼씨는 자신의 생일날 2시간 가량 늦었다. 그의 두 발이 돼주는 ‘나들이콜’의 배차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배차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들이콜은 장애인의 소중한 생일날 까지는 신경써주지 못했다.

각 지자체에서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 콜택시를 2003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원하는 곳에서 승하차와 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졌다. 그 중 나드리콜은 대구광역시의 장애인, 노약자등 대중교통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위해 마련된 장애인 콜택시다. 

이렇듯 장애인의 발이 되기 위해 출범한 장애인 콜택시지만, 서울을 비롯한 15개 시도는 그 수가 장애인 콜택시 확보 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주소다.

현행법상 보행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150명당 1대꼴로 장애인 콜택시를 마련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180명에 한 대가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며, 경기(112.8%), 경남(105.9%)를 제외하면 서울을 비롯한 15개 시도는 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서울·수도권 밖 지역 이동지원센터 사정은 더욱 참담하다. 보급 대수 자체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콜택시를 운전할 인력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2020년 특별교통수단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부산광역시의 경우 장애인콜택시 보급 대수는 181대다. 하지만 운전 인력이 부족해 한달 이상 연속으로 운행 실적이 없는 차량 대수는 34대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경기도 이천시와 화성시 역시 운전 인력 부족으로 각각 24대 중 3대, 58대 중 6대가 한달 이상 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은 장애인 콜택시 법정대수 100% 도입을 내년 즉각 요구했으나, 인수위는 2027년까지 시한을 정했다.

종삼씨가 지팡이에 의지해 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종삼씨가 지팡이에 의지해 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정작 수요자는 몰랐던 복지 제도 

가난했던 남매는 서로를 도울 형편이 못됐다. 살아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던 종삼씨의 누나는 그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결국, 종삼씨는 서울에 위치한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한 거주시설에 입소했다. 하나 남은 혈육이 자신과 고단한 삶의 무게에 지쳐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삼씨에게 시설은 창살 없는 감옥 같게만 느껴졌다. 답답했다. 도저히 이곳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결국, 종삼씨는 시설에서 진료 차 방문한 병원에서 택시를 타고 탈출을 감행했다. 새벽 4시. 어둑어둑한 새벽이었다. 오갈 곳 없는 종삼씨가 다시 돌아간 곳은 결국 누나의 품, 가족의 품이었다.

이후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누나의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 모습을 지켜본 종삼씨는 죄책감에 희망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의 사정은 그나마 나았다. ‘정 세베로’라는 세례명을 받고 주기적으로 성당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허함과 답답함은 채워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2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왔다. ‘자립생활 체험홈’이다. 이는 주위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제도다.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종삼씨는 자립생활주택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후 장애코디네이터의 도움으로 신청서를 작성하고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시설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종삼씨는 본인 이름 정도는 쓸 수 있지만, 글자를 읽지 못한다. 또, 1인 가구다 보니 장애인 복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란 더욱 쉽지 않다. 복지 제도가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 방법조차 없어 긴 세월을 홀로 시설에서 보냈다. 이는 복지 제도 부재의 수준을 넘어선다. 장애인을 위한 좋은 제도를 마련해 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수요자는 이를 알지조차 못하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종삼씨의 모습 ⓒ투데이신문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종삼씨의 모습 ⓒ투데이신문

장애인·비장애인의 삶을 모두 살아본 그의 부탁

장애인의 삶과 비장애인의 삶, 두 가지의 삶을 모두 살아본 종삼씨는 홍보와, 안전한 밤에 대해 간절히 부탁했다. 관련 복지 제도의 홍보가 잘 이뤄졌다면 긴 세월동안 시설을 전전하지 않았을 것이며, 특히 화장실을 가다 위험에 처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장애인이 안전하게 밤을 보낼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종삼씨는 “나와 같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장애인들을 선제적으로 발견하는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규칙과 규율로 가득찬 각종 시설을 떠돌아 다니다 온전히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자립생활주택에 정착한지 3년이라는 기간이 지났는데, 지금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젊었을 적 사진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는데, 자립생활주택에서 생활하며 활동보조인과 지원사, 장애코디네이터 분들과 지내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며 “나는 지원사가 없으면 꼼작도 못하는 몸이다.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 관련 지원사들에 대한 예산이나 처우가 개선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를 도와주는 지원사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전했다.

종삼씨가 고이 간직해온 사진속에는 종삼씨와 지원사 분들이 아주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하염없이 흘러 지나간 세월동안 자신을 담은 사진이 단 한 장 없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남몰래 차곡차곡 미소 띈 사진을 모을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가족 같은 지원사들의 숨은 노력 덕이었다.

끝으로 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종삼씨가 활동지원사와 장애코디네이터의 힘을 빌려  겨우 뱉은 마지막 말은 단 한가지다.

“무엇보다 장애인이 안전한 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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