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위스키 인기 ‘활활’…여기저기서 잘 팔려
‘아재’ 술에서 ‘힙’으로 재탄생…MZ세대 인식변화
‘혼자서 집에서 마셔요’…나만의 레시피대로 대접
업계 관계자 “전담 팀 신설…내년에도 경쟁 지속”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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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조유빈 기자】 연말연시에는 대다수가 지나간 한 해의 고단함을 털어내고, 다가오는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해 술자리를 갖는다. 특히 소주와 맥주는 송년회 때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판도가 바뀌었다. 현재 각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소비자층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개성 강한 술인 ‘위스키’가 새롭게 급부상하고 있는 것.

유통업계에 따르면 20‧30세대를 중심으로 주류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한 잔이라도 의미 있게 마시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특히 위스키는 생산지, 재료, 블렌딩, 숙성 등에 따라 종류가 다양해 최근 취향을 중시하는 소비자 심리에 딱 알맞게 적용되고 있다.

지난 2018년 상영된 영화 <소공녀>에서도 20대 여성인 ‘미소’는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고 말한다. 미소는 의식주보다는 자신만을 위한 작은 사치인 위스키만큼은 끝까지 놓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이를 통해 삶의 가치가 달라진 MZ세대의 면모를 잘 살펴볼 수 있다.

이밖에도 위스키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집에서 혼자 술을 즐기는, 일명 홈술‧혼술 문화가 소셜미디어(SNS)을 중심으로 확산된 것도 한몫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모델이 발베니 위스키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GS리테일]
모델이 발베니 위스키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GS리테일]

위스키의 인기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돼 품귀현상이 발생할 정도다. 이와 관련 지난 8월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은 개인 SNS 계정에 “한국에서 언제부턴가 위스키 품귀현상이 계속 되고 있다”며 “최근 어느 바를 가도 좋아하는 위스키가 없다. 품귀현상의 이유를 아시는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국내 위스키 매출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따르면 위스키 연매출 신장률은 지난 2020년 91.5%, 지난해 140.9%를 기록했다. 올해도 전년보다 80% 이상 증가한 매출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롯데마트 또한 50~100% 신장률을 이어가고 있으며, 홈플러스에서도 올해 위스키 매출이 전년 대비 22% 신장했다.

편의점의 경우 GS25가 최근 3년간 주류 판매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위스키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20년 46.2%, 2021년 60.8%, 2022년 초(2월 누적 기준) 127.5%로 꾸준히 신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CU의 위스키 매출 역시 지난해 동기 대비 137%가량 증가했다.

위스키의 수입량도 비슷한 양상이 보이고 있다. 한국주류수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682만9177리터(ℓ) 수입된 위스키가 올해 같은 기간 1118만9008ℓ가 수입되면서 2배 가량 늘어났다.

관세청 수출입통계를 살펴봐도 올 1월부터 10월까지 스카치·버번·라이 등 위스키류의 수입 금액은 2억1804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억3475만달러 대비 61.8%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란츠 트리플우드를 고르는 고객 [사진제공=BGF리테일]
 

위스키 열풍의 비밀은?MZ세대 술=즐긴다

이처럼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 유통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위스키 열풍에 힘을 싣는 것은 주로 20대와 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위스키를 구매한 고객 가운데 대형마트에서 위스키를 구매하는 20‧30대의 비율이 절반 수준이었고, 편의점에서는 70%를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재(아저씨)’ 술로 여겨졌던 위스키가 ‘힙’한 술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일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 공개한 ‘올해의 MZ세대 데이터 총결산’에 따르면 MZ세대에게 위스키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에는 술 고유의 맛과 향이 강하고 알콜 도수가 높아 접근하기 어려운 술이었다면, 현재에는 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인상이 강해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위스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된 배경으로는 MZ세대가 생각하는 고급술에 대한 정의와 조건에서 살펴볼 수 있다. MZ세대에게 있어 고급스러움은 단순히 가격이 비싸다는 의미가 아니라 희소성‧다양성‧디테일 등이 확보된 제품과 서비스를 의미한다. 즉 위스키는 이러한 측면이 충족되는 제품인 셈이다. 또 새로운 술에 대한 경험과 함께 관련 지식 또는 견해를 넓이는 과정을 ‘술을 즐긴다’는 영역에 포함시키는 MZ세대의 경향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MZ세대의 인식변화와 소비성향만이 위스키의 품귀현상을 이끌어냈을까. 종합커뮤니케이션그룹 KPR 부설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이하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가 매스미디어‧SNS‧웹 등 빅데이터 약 155만건을 대상으로 위스키과 관련된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소비자들은 ‘하이볼’ 등과 같은 칵테일 제조를 위해서도 위스키를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이볼은 위스키에 탄산수나 토닉워터 등을 섞어 마시는 칵테일이다. 이 같은 ‘믹솔로지(Mixology·여러 술과 음료를 섞어 마시는 것)’ 트렌드가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다양한 하이볼 레시피가 온라인상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자기 취향에 맞게 위스키와 탄산수를 골라 칵테일을 만들어 사진을 찍고, 이를 SNS에 공유하는 문화가 위스키가 인기를 끌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이는 ‘트렌드코리아 2023’에서 내년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평균실종’을 꼽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 평균실종은 개인의 취향이 수도 없이 많은 갈래로 나뉘는 현상으로,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평균값이 이제는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소주‧맥주를 마시던 평균적인 술자리가 이젠 자기만의 취향 따라 골라 마시는 자리로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위스키를 골라 하이볼을 직접 제조하게 된 경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홈술‧혼술 문화 확산이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업계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홈술‧혼술 문화가 전파되면서 개인의 특성에 맞춰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 위스키를 선호하는 소비층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에 따르면 소주‧맥주‧위스키‧와인에 대한 언급량을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비교한 결과, 코로나19 이전 2019년에는 ▲맥주(230만2968건) ▲소주(120만6604건) ▲와인(101만9296건) ▲위스키(15만1395건) 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인 올해에는 ▲맥주(163만1670건) ▲소주(113만7728건) ▲와인(112만5466건) ▲위스키(43만1275건) 등으로 조사됐다. 특히 와인과 위스키에 대한 언급량이 이전에 비해 각각 10%, 185% 이상 증가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br><br>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취하는 음주 거부…이제는 취미의 영역으로

이와 관련 안양에 거주하는 이모(28‧여)씨는 “취향에 맞게 제조해서 마시는 것을 좋아하며 평소에도 즐기고 있다”며 “이왕 술을 마실 거면 의미 있고, 맛있게 먹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최모(27‧여)씨의 경우 “SNS을 하다가 특이하거나 맛있어 보이는 술이 있으면 시도해보려고 한다”며 “다양한 술을 도전하면 내 취향이 어떤지 알 수 있는 한편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하남에 거주하는 김모(26·남)씨도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혼자있는 시간이 늘면서 종종 하이볼이나 소주 칵테일을 만들게 됐다”며 “나만의 레시피가 생기면 나중에 친구들에게 대접할 때도 뿌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는 코로나19로 인해 환경이 변화되면서 MZ세대 소비자들이 느끼던 위스키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을 배경으로 짚었다.

주류칼럼니스트 명욱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교수는 “시장의 패러다임 자체가 마시고 취하는 문화를 거부하고 있는 반면 고급 위스키 등과 같은 맛과 향을 음미하는 문화가 커졌다”며 “특히 젊은 층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홈술‧홈테일 등을 하는 이들이 늘면서 하이볼 등과 같은 술을 마시는 시도가 증가했고, 이를 SNS에 업로드하면서 문화가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또 MZ세대들의 소비성향이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 나가며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특성이 있는 만큼 단순한 음주에서 취미의 영역으로 확장됐다”며 “이러한 취미가 이제는 소장의 영역으로 이어가고, 소장에서 재테크의 영역까지 뻗으면서 위스키 시장에도 변화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주류 유통업계 관계자 또한 “현재 20‧30대 중심으로 주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트렌드 또한 빨리 변화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유통업계에서도 다양한 주류를 선보이거나 역량 집중을 위해 전담팀을 신설하는 등 여러 전략들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고객 취향을 사로잡기 위해 업계간 차별화된 상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만큼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내년까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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